창고의 밤, 손의 기억

by 네로

집에서는 여전히 같은 말들이 오갔다.

“집 빚이...”

“네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그 말이 나올 때면, 아버지는 화를 덜 냈다. 대신 공기가 조금 더 무거워졌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물었다.

“엄마는, 어떻게 웃었어요?”

아버지는 의외의 질문을 받은 사람처럼 내 얼굴을 봤다.

“...꽃처럼.”

그 한 단어는 길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울었어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떨구었다.

답이 없는 자리에 오래 있으면, 마음이 자라거나 줄었다. 그날의 마음은 약간 자랐다.


며칠 뒤, 아버지는 내 지갑에 아무 말 없이 장갑 값보다 조금 더 많은 지폐를 넣어 주었다.

나는 그 돈을 창고 하역 알바 첫날의 간식값으로 썼다. 삼키는 동안 내 입안엔 멍울이 하나 있었다. 밥알이 아니라, 감정의 작은 응어리. 삼킬 때마다 조금씩 작아졌다.


창고의 밤은 냄새로 기억됐다.

플라스틱 랩의 매끈한 냄새, 목재 팔레트의 거친 결, 습기 먹은 골판지의 꿉꿉함. 손바닥은 점점 단단해졌다. 처음엔 물집이 생겼고, 다음엔 굳은살이 자리 잡았다. 장갑을 두 겹 끼면 물건을 덜 놓쳤다. 그래도 가끔은 떨어뜨렸다. 떨어뜨릴 때마다 목줄 없는 금속 소리가 바닥을 맴돌았다.


쉬는 시간,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 몇 글자씩 남겼다.

"손이 익어 간다.

익는 동안엔 아프다.

아픈 만큼 깊이 잡을 수 있다.

씨름은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밤으로 한다."


퇴근길, 손바닥에서 나는 냄새를 코끝에 대고 잠깐 맡았다.

그 냄새는 이상하게도 도서관 냄새와 닮아 있었다. 오래 쌓아 둔 것들 사이를 손끝으로 정리하는 냄새. 내가 오늘 정리한 것은 박스였지만, 내가 실제로 붙잡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붙잡는 법.


처음으로 그녀의 집에 들어섰던 날, 손끝이 무겁게 떨렸다.

현관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겨울의 공기가 바깥에 그대로 남아 있는 듯, 집 안쪽은 마치 계절이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유자차 향이 공기 사이사이에 얇게 깔려 있었고, 식탁 위에는 잘린 과일과 작은 찻잔들이 놓여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검은 모직 코트를 입은 채 앉아 있었다.

말수는 적었지만, 방 안의 중심은 분명히 그였다. 움직임이 적은 사람에게선, 오히려 묵직한 울림 같은 게 생긴다. 내가 인사할 때, 그는 아주 천천히 눈을 들었고, 잠깐의 고개 끄덕임으로 답했다.


“앉으렴”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먼저 웃었다. 긴장된 공기를 조금이라도 풀어주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미소 대신 시선을 천천히 옮겼다. 내 손, 손끝의 굳은살까지 차례로 훑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화물운송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창고에서 일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힘들진 않고?”

잠깐 멈칫하다가, 나는 단어를 고쳤다.

“힘든데... 괜찮습니다.”


그 말에 그의 입술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한쪽 끝이 아주 작게 올라갔다가 금방 제자리로 돌아왔다.

“힘든 건 괜찮다.”

짧게, 그러나 묵직한 인정을 담은 말이었다.

식탁에 앉아 있는 동안, 공기는 묘하게 층을 이루고 있었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유자향의 얇은 층, 그녀의 숨결이 닿는 옆자리의 온기,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와 나 사이에 있는 무겁고 투명한 층. 그 층을 뚫을 수는 없었지만, 손끝으로 살짝 닿는 정도는 가능했다.


그때, 그녀가 조용히 내 손목을 툭 건드렸다. 작은 힘.

나는 그 힘을 따라 숨을 고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는 컵을 집어 들었다.


“좋네.”

짧은 단어 속에, 긴 허락 같은 것이 스며 있었다.



두 집안의 공기


그녀의 집은 따뜻한 목재의 냄새가 났다.

반대로 우리 집은 차가운 시멘트 냄새가 있었다. 그 차이는 집안 공기를 나누는 데도 이어졌다.

우리 집 식탁 위엔 늘 두세 개의 말이 얹혀 있었다.


“빚.”

“농협.”

“네 엄마.”

아버지는 오래된 꿈처럼 단어를 짧게 꺼내고, 금세 다시 넣어두었다.


반대로 그녀의 집은 다정한 단어가 많았다.

“차 마셨니?”

“오늘은 덜 추웠지?”

“저녁 같이 먹자.”

말의 길이가 다르고, 무게가 달랐다.


처음엔 그 차이가 나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서로 다른 공기 속에서 자랐다는 건, 숨 쉬는 방식이 다르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두 공기가 섞일 자리를 찾는 게 우리의 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