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편지들

by 네로

집에 들어서면 국은 대체로 식어 있었다.

아버지는 숟가락을 들었다 놓는 데도 규칙이 있었다. 세 번은 빠르게, 한 번은 오래. 반찬 젓가락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만 움직였다. TV 소리는 낮았고, 뉴스 앵커의 자음이 식탁 목재에 부딪혔다가 사라졌다.


“오늘은 늦냐?”

아버지가 물으면, 나는 대답 대신 빈 그릇을 싱크대에 넣었다.

“도서관.”

짧은 단어로 하루를 건넸다.

“돈은?”

“아르바이트해서, 괜찮아요.”

“무슨 알바를 한다고...”

아버지의 말끝은 늘 공중에 맺혔다. 내려오지 못하는 낙엽처럼.


그날, 나는 조금 길게 말했다.

“창고 하역. 열두 시까지요.”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내 손등을 봤다. 굳은살과 얕은 상처들.

“... 장갑 두 겹 껴라.”

조언은 명령보다 늦게 오지만, 더 멀리 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서랍에서 두툼한 장갑을 꺼내 주었다.

양말처럼 두꺼운, 손가락이 잘 굽혀지지 않는 장갑.

“추우면 이게 낫다.”

그때 알았다. 사랑은 때로는 말이 끊긴 자리에서 자란다. 도착하지 못한 말의 체온으로.



밤의 도서관 냄새는 교실 냄새와 달랐다.

젖은 나무와 오래 묵힌 종이, 그리고 먼 길을 돌아온 사람의 코트에서 나는 겨울 냄새가 섞였다. 창가 좌석의 소리는 다소 느렸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분에 한 번, 누군가가 기침을 참는 소리가 몇 분에 한 번. 그녀는 내 앞쪽 왼편, 한 칸 건너 앉아 있었다.


나는 문제를 풀다가, 세모 모양으로 막힌 곳에 조용히 표시했다.

종이에 작게 적었다. "여기부터"

그리고 그녀가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마실 때, 내 자리 가장자리로 노트를 밀어 놓았다. 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문제를 훑었다. 해설이 되지 않는 해설이 돌아왔다. 여백에 작은 그림들. 두 가지 조건을 살짝 비틀어 오게 한 화살표, 같아 보이지만 거리가 먼 두 점, “여기선 한 번 더 숨.” 하고 적힌 얇은 글씨.

그녀가 내 자리 옆을 지나며 속삭였다

.

“달릴 때도, 여기서 한 번 쉬잖아.”

나는 고개를 들었다.

“반 바퀴 남았을 때.”

그녀는 웃었다. “그 리듬으로 가.”


도서관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우리는 말수가 늘었다.

버스가 올 때까지의 짧은 겨울, 그 시간은 늘 무슨 말이든 시작하기에 좋았다.


“넌 대학 가서 뭐 하고 싶어?”

“글.”

“왜?”

“말보다 오래 남을 것 같아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림.”

“왜?”

“말보다 먼저 남아있어서.”


우리는 자주 서로의 ‘왜’를 물었고, 각자의 ‘왜’를 조금씩 바꾸어 들려주었다.

내 ‘왜’에 그녀의 색이, 그녀의 ‘왜’에 내 호흡이 조금씩 섞였다. 겹쳐 칠했다. 얇게 칠하면 쉽게 번졌고, 겹쳐 칠하면 늦게 마르지만 오래 남았다.


말로 건네지 못한 것들을 작은 종이에 붙였다. 문제집 여백, 도시락 밑, 참고서 맨 뒤, 사물함 문 안쪽—

다음이 없으면 읽히지 않을 장소들.


"오늘은 언덕이 조금 덜 가팔랐어.

너랑 말하고 난 뒤엔 도서관 공기가 덜 춥다.

사라지는 동안 예쁜 것들의 목록을 만들자.

눈, 입김, 버스 창 서리, 분필가루, 라디오 잡음."


그녀는 때로 더 짧은 답을 남겼다.

"응."

"봄에도 목록 만들자."


짧은 단어들은 길게 울렸다.

도착하고서야 의미가 생기는 말도 있었고, 떠난 뒤에야 의미가 커지는 말도 있었다.


어느 날, 우리는 본관 계단 아래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그녀의 도시락에는 정성스러운 반찬들이 가지런했고, 내 도시락엔 어제저녁의 연장선이 깔려 있었다. 그녀는 반찬 몇 가지를 내 칸으로 옮겨 담았다. 나는 “괜찮아”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녀는 젓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이건 네 거야.”

“왜?”

“네가 끝까지 가는 거 볼 때마다, 나도 힘이 나서.”

그녀가 말하고 젓가락으로 김을 잘라 내 밥 위에 얹었다. 김은 금방 눅눅해졌다. 눅눅함은 이상하게도 밥과 잘 어울렸다. 물을 조금 더 부은 밥처럼, 목으로 잘 넘어갔다.


“우리, 한강에 가보지 않을래?”

그녀가 먼저 말했다.

“겨울에?”

“겨울엔 강이 느려.”

“느린 게 좋아?”

“빨라지는 사이를 오래 볼 수 있으니까.”


그날, 나는 처음으로 느린 것도 좋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느리게 가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오래 보는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

그녀가 가르쳐 준 것들은 대체로, 나에게 새로운 문장을 만들게 했다.



우리는 같은 도서관 다른 책상에 앉아 있었다.

나는 글을 쓰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적어 보고, 그녀는 그림을 계속하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적어 보았다. 필요한 것의 목록은 길었고, 버려야 하는 것의 목록은 더 길었다.

“넌, 왜 글이야?”

그녀가 물었다.

“누군가의 숨을 같이 쉬고 싶어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왜 그림일까?”

“누군가의 빛을 같이 보고 싶어서.”

그녀가 멈칫했다.

“누가 누구를 닮아가는 걸까.”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닮아가는 일은 흔히 두려움으로 끝나는데, 그날만은 이상하게도 안심으로 끝났다. 닮아간다고 해서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겹쳐 칠한다고 해서 본래의 색이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가끔 그녀의 집 방향으로 몇 정거장 더 갔다.

내려서 골목을 한 블록만 걸었다가,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돌아오는 날들이 있었다. 전혀 쓸모없는 경로였다. 하지만 그런 날에만 냄새와 색이 새로웠다. 과일 가게 앞 겨울 귤의 바깥 껍질 냄새, 유리문을 연 국밥집에서 흘러나온 김, 세탁소에서 막 꺼낸 셔츠의 뜨끈한 수증기. 그녀가 사는 동네의 겨울은 내 동네보다 덜 거칠었다. 다만 그런 생각은 오래 하지 않으려 애썼다. 누구의 겨울도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와 마주쳤다.

그는 검은 코트를 입고, 전화기를 귀에 댄 채 급히 걸어가고 있었다. 무심히 스친 눈빛, 그 눈빛은 바쁘고 예의 바르며, 동시에 어딘가 단단했다. 내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그는 잠깐 멈췄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느림이 어색하지 않았다. 바쁜 사람의 느림은 보통 무례로 읽히는데, 그날의 느림은 오히려 예의 같았다. 나중에 알았다. 그의 느림은 대체로 중요한 단어가 지나갈 때 생겼다.

그녀는 그날 아버지와의 대화를 짧게 들려주었다.

“아빠가 물었어. ‘그 친구, 이름이 뭐야?’”

“뭐라고 했어?”

“네 이름.”

그녀는 웃으며 내 발끝을 슬쩍 보았다.

“발, 안 떤다.”

“원래 떨어?”

“긴장하면 자주 떨던데?”

그녀는 장난처럼 말했지만,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