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CT를 보여주며 의사는 그녀의 몸속 곳곳에 암이 전이되어 있음을 말해주었다. 이제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퇴원하라고 했다.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투약 일정표가 냉장고 문에 붙었다. 우리는 복도 끝 창틀에 앉아 바람을 맞았다. 바람은 편지처럼 들락날락했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법을 조금 배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살피는 법.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도 화실에 내려갔다.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니, 알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그녀가 붓을 쥐면, 손등의 핏줄이 선명해졌다. 아프면 손이 먼저 떨려야 하는데, 이상하게 붓끝은 더 안정적이었다. 그녀는 색을 섞고, 천을 깔고, 빛을 기다렸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과 아이의 시간을 그렸다.
나는 그때 화실 문턱을 맴돌 뿐, 끝내 들어가지 못했다. 그녀가 떠나고 나면, 그 시간들이 한꺼번에 나를 덮칠 것 같아서. 겁이 났다.
여덟과 아홉의 사이에 여름이 지나고, 그녀의 기력이 급속히 떨어졌다. 입맛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잠이라는 동사가 늘어났다. 아이의 숙제를 봐주던 시간이 줄었고, 아이는 스스로 문제를 풀어 엄마에게 가져갔다.
“엄마, 이거 맞았어?”
그녀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연필을 들어 체크 표시를 했다. 그 체크는 세계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그어지는 선 같았다. 그러나 정확했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그녀의 목소리는 얇아졌다.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목소리가 휘청했다. 나는 밤마다 트럭을 새워 두고, 낡은 노트를 펼쳐 무언가를 끄적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펜을 내려놓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나는 글을 쓰는 법을 잃어버렸다. 문장에 들어가 앉아 있던 무아의 마음이, 어느 날 통째로 사라졌다.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캔버스 앞에 앉으면, 눈앞이 하얘졌다.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관절이, 하나씩 빠지는 느낌. 나는 쓰지 못했고, 보지 못했다.
여름의 끝. 병실 커튼 아래로 햇빛이 물결처럼 흔들리던 날, 의사는 말을 조심스레 골랐고, 나는 그 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야.”
그녀는 아이를 바라보며 평소처럼 웃었다. 그 웃음은 여름 저녁의 수박처럼 밝았지만, 씨앗이 많았다. 씹으면 씹을수록 쓴맛이 올라왔다.
냄새가 먼저 달라졌다. 병실 특유의 소독약 냄새 사이로, 오래된 종이 냄새 같은 것이 섞여 들어왔다. 그녀가 손을 뻗어 내 손등을 쓰다듬을 때마다, 피부 아래에서 먼지 같은 것들이 은근히 일어나는 느낌. 체온은 살아 있었지만, 그 온기가 머무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손을 놓으면 금세 공기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아이는 처음엔 그것을 못 알아챘다. 병실 창틀에 턱을 괴고, 밖에서 비둘기를 쫓는 아이를 보고 깔깔 웃었다. 아이의 웃음은 방 안의 모든 기계를 잠시 멈추게 했다. 모니터의 초록 선도, 주사기 안의 방울들도, 숨을 죽이며 아이의 리듬을 따라갔다. 그녀는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고 조용히 말했다.
“더 크게 되면, 여름 한가운데 있는 나무 그늘이 되렴”
아이도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했겠지만,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시간’이 우리 편이라고 믿고 있었다. 병실 창문이 열릴 때마다 드나드는 바람의 양처럼, 아픈 날과 좋아지는 날이 교대로 올 거라고. 그러나 가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바람이 얇아졌고, 그녀의 숨도 얇아졌다. 돌아가기가 아니라, 조금 덜 오는 쪽으로.
어느 날, 의사는 더 이상 단어들을 고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의 입술을 꽉 깨물며, 회색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는 가벼웠지만 손에 얹히자 바위처럼 무거웠다. 나는 읽지 않았다. 읽지 못했다고 쓰는 편이 더 정확하다. 손끝으로 종이 결만 쓸어내렸다.
그녀는 내 눈빛을 읽고 있었다. “괜찮아.” 그 말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짜로 괜찮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았지만, 나는 내 손가락 힘이 점점 세지기만 하는 걸 멈추지 못했다. 마치 더 꽉 쥐면, 더 오래 붙들어둘 수 있을 것처럼. 그녀가 말했다. “아프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조금만 더’라는 뜻이었다. 조금만 더 함께 있자. 이 문장은 우리 사이에서 오랫동안 사용되던 암호였지만, 그날은 유난히 부서지기 쉬워 보였다.
겨울이 오기 전에, 그녀는 세 번의 수술을 받았다. 바늘이 들어갈 때마다 나는 같은 기도를 했다.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할 말이 그것뿐이어서, 나는 그 문장을 수없이 되뇌었다.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었지만 그 말이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노동 같았다. 미세한 전류가 흘러가는 기계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의 무력함을 채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매번 낙제점을 받았다.
어느 비 오는 오후, 그녀는 내 손바닥에 얼굴을 댔다. 살결을 지나, 얼굴뼈의 모서리가 만져졌다.
“당신은,” 그녀가 말했다, “오래 살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없어도” 그녀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동화 속 검은 숲 같아서, 들어가면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겨울이 왔다. 새벽마다 병실 창틀에 얇게 얼이 맺혔다. 간호사가 스팀을 올리고 커튼을 정리할 때마다, 공기는 잠시 깨끗해졌다가 이내 같은 냄새로 돌아왔다. 그녀의 턱선은 점점 가벼워졌고, 웃을 때마다 심장이 아닌 어딘가에서 울림이 났다. 그녀의 몸은 섬세한 악기가 되어 있었다. 어떤 음을 건드려도, 오래 울렸다. 아이는 병실에서 책을 읽었다. 조금씩 또박또박. “엄마, 다 나으면 봄 소풍 가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봄, 소풍, 그 단어들은 마치 우리가 빌린 말 같았다. 우리 것이 아니라, 잠시 맡아 쓰는.
눈이 처음 내리던 날 그녀는 갔다. 병실 형광등에 튀어 오른 눈빛이 벽과 천장에 흰 점을 만들었고, 나는 그 점들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녀의 손이 내 손 안에서 가볍게 식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울지 못했다. 울지 않은 사람처럼, 오래도록.
집에는 우리가 모아 둔 사소한 것들이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던 머그컵, 물감 냄새가 스민 앞치마, 아이가 유치원에서 만들어 온 종이꽃, 그리고 내 노트. 그런 물건들이 내 눈앞에서 천천히 빛을 잃었다. 하나하나의 자리가 비어 가는 걸 보면서도, 나는 치우지 못했다. 치우는 건 두 번의 작별이라 믿었다. 첫 번째는 병실, 두 번째는 이곳. 두 번의 작별은 사람을 속수무책으로 만든다.
노트를 꺼내어 앉았다. 예전에는 단어가 먼저 왔다. 먼저 단어가 내게로 찾아와, 문장을 만들고, 문장이 나를 끌고 갔다. 나는 종종 내가 쓴 글을 읽지 못할 때가 있었다. 무아의 마음이라는 말이 있다면, 아마 그게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를 내려놓고, 말을 따라가던 시절. 이제는 그 시절이 전설처럼 멀었다.
한 글자를 쓰려 펜을 들면, 펜 끝이 종이를 긁지 못했다. 종이는 모래 같아서, 글자가 심지로 내려가다가 부러졌다. 단어는 문턱에서 돌아섰고, 문장은 한 걸음도 나오지 않았다. 문 밖에는 겨울바람이 불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살갗을 때리는 동안, 나는 한 글자도 적지 못했다.
그림을 보는 법도 잃었다. 거실에 걸린 그녀의 작은 습작들—겹쳐 칠하다가 의도치 않게 생긴 빛의 복판, 번진 선의 경계, 의자 다리와 그림자 사이의 틈새 같은 것들—을 한참 들여다보았지만, 그게 왜 아름다웠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미술관에 가면 색이 내게 말을 걸어오곤 했는데, 이제는 그 색들이 모두 병실의 흰색과 똑같아 보였다. 방금까지 생명이 있었던 자리의 흰색.
어느 밤엔 전시를 보러 가다가 발길을 돌렸다. 매표소 유리창에 내 얼굴이 비쳤다. 수염은 고르지 않았고, 눈 밑은 오래된 멍처럼 짙었다. 유리 너머 조명이 밝았다. 그 밝음이 내 생을 책망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길로 나왔다. 전시장 벽을 스치는 사람들, 그들의 소곤거림, 구두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아주 멀리’는 거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내 몸을 안에 둘 수 없었다. 그 밤, 나는 내 밖에 서 있었다.
장례가 끝난 밤, 아이는 내 무릎 위에서 잠들었다.
나는 아이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이제 정말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뭘까.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
아이의 하루를, 내 하루를,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더 늦게까지 일하고, 더 일찍 일어났다. 아이를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낮에는 운전했고, 밤엔 트럭 안에서 책을 펼쳤다.
읽어지지 않는 문장들을 한 줄씩 베어 먹듯 넘어갔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글자들이 언젠가 뜨거운 국물처럼 내려가 내 안을 데워주리라는 믿음 하나로
도로의 겨울
아침 네 시에 출근했다. 히터가 늦게 데워지는 겨울의 운전석, 그 냄새는 석유와 합성섬유, 그리고 커피와 금속이 적당히 섞인, 말하자면 살아 있는 기계의 냄새였다. 계기판 불빛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고, 바깥은 늘 다른 어둠이었다. 나는 장갑을 끼고, 안전벨트를 채우고, 오늘의 종착지를 머릿속으로 한 번 외웠다. 외운다고 해서 길이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외우지 않으면 내가 더 멀어졌다.
라디오는 자주 잡히지 않았다. 대신 엔진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음악 같았고, 리듬 같았다. 가끔씩 내비게이션이 말했다. “2차선, 전방 3km 정체. 진입 주의.” 누군가의 목소리가 깊은 새벽의 물밑처럼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을 접었다. 생각을 접는 일은 때론 살려 두는 일보다 어렵지 않았다. 접다 보면 아주 작은 사각형이 되는데, 그 모서리를 다치지 않게 주머니에 넣어 두는 법을 익히면 된다. 나는 그 법을 배웠다.
휴게소의 불빛은 언제나 약간 흔들렸다. 그 불빛 아래 멈춘 차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숨을 쉬었다. 종이컵 커피의 맛은 매번 달랐다. 커피가 아니어도 되는 맛. 나는 그 맛들로 하루를 버텼다. 동전 거슬러 주는 직원의 손끝이 빨갛게 터 있었다. 누군가의 손이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손등의 색으로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나는 내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어떤 계절도 지나지 않는 색이었다.
가끔 졸음이 몰려오면 창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들이닥치고, 눈이 시렸다. 그때 유리 위로 아침이 붙었다. 한 겹 두 겹, 빛이 켜졌다. 차창 오른쪽 위에는 아이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초등학교 앞 눈밭에서 웃고 있는 얼굴. 뺨이 분홍색이었다. ‘아빠, 봐!’ 하고 외치던 순간의 입 모양. 그 사진을 보면, 나는 가끔 숨을 참았다. 참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은 대개 길이었고, 길은 대개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아이의 시간
아이의 발은 빠르게 커졌다. 신발 사이즈를 한 달 만에 바꾸기도 했다. 아이의 목소리는 낮아지기도 하고, 어떤 날엔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지기도 했다. 감정이 키를 먼저 크게 하는 시기였다. 내가 아이를 못 따라가는 것인지, 아이가 내 시간을 지나치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종종 ‘엄마’를 데려왔다. 종이학의 날개에, 색종이 배의 작은 깃발에, 선생님이 숙제로 내준 독후감의 마지막 줄에. 어느 날 아이는 연필로 아주 작은 별을 몇십 개 그려 온 종이를 내게 보여주었다. 별은 모두 선이 미세하게 흔들려 있었다.
“엄마한테 가져가면 좋을 텐데.”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내 눈을 봤다. 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날만은.
“우리 같이 가자.”
우리는 꽃집에서 흰 카라와 분홍 프리지어를 한 단씩 샀다. 그리고 그녀에게 갔다. 아이는 종이 별을 비석 앞에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한 개씩 튕기듯 짚었다.
“여기 하나, 여기 둘, 여기 셋...”
아이가 숫자를 셀 때, 바람이 그 숫자를 흩트렸다. 그러나 아이는 다시 셌다. 흩어져도 다시, 다시. 나는 그날, 아이에게 배웠다. 흩어짐을 세는 법.
어느 날은 숙제 공책을 펴다가 우연히 보았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빠가 웃을 때 우리 집이 환해져요.”
나는 그 문장을 읽고 오래 울었다. 아이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 했지만, 그날만큼은 참지 못했다. 아이는 나를 안았다. 어깨뼈가 내 가슴에 닿았다. 작고 단단한 뼈. 아이는 죽 이어서 말했다. “아빠, 내가 그림 그려줄게. 엄마처럼은 못 그려도, 내가 그릴게.” ‘못’과 ‘그려도’ 사이에 아이의 숨이 끼었다. 나는 그 사이에 얼굴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 사이를 스스로 넓히며 말했다. “나, 그리고 싶어.”
그날부터 아이의 책상에는 늘 종이와 연필이 있었다. 아이는 동그라미를 많이 그렸다. 커다란 동그라미 하나 안에 작은 동그라미들—달걀 프라이 같은, 해바라기 같은, 독수리 눈 같은 동그라미들. 나는 동그라미가 그녀의 말처럼 들렸다.
“사라지는 동안은 예쁘지.”
그 말을 했던 그녀의 겨울 목소리. 아이는 사라지는 것의 예의를 배웠다.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