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남긴 말들

by 네로

내 자신이 가장 밉던 시절이 있다. 아이가 학교 학예회에서 그림을 전시한다는 공지를 주었는데, 그날 나는 급송 화물을 잡았다.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안 된다’는 말이 입술을 떠나지 못했다. 나는 일을 택했다. 일은 늘 내 편인 척 다가왔다. 정시, 정량, 정가—정해진 것들 속에 몸을 넣으면, 마음이 덜 아팠다. 아픔은 불규칙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날 밤늦게 집에 돌아와, 아이의 방에 들어갔다. 책상 위에 초대장이 놓여 있었다.

“아빠, 올 수 있어요?”라는 글씨 아래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그 동그라미는 너무 선명해서, 나는 그것을 지우고 싶었다. 지우면 내 부재도 지워질 것 같아서. 그러나 나는 지우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처럼. 아이는 그날 저녁 내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많은 동그라미, 그 안에 작은 선들, 색들이 겹치는 곳.

“선생님이 칭찬했어.” 아이는 말했고, 나는 손뼉 쳤다. 내 박수 소리는 낡은 장롱문 같았다. 그러나 아이는 웃었다. 그 웃음은 내 박수를 박수로 만들었다.


잠들기 전, 나는 오래된 서랍을 뒤졌다. 그리고 아주 낡은 노트를 꺼냈다. 그녀가 살아 있을 때 내가 그녀에게 선물했던 노트. 현장에서 잠깐 쉬는 틈마다 적었던 문장들, 스티커처럼 붙여 넣은 영수증, 말려 들어간 네 잎클로버. ‘행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너무 일상적인,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너무 오래 찾은. 나는 그 노트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 장 한 장 넘겼다. 페이지마다 그녀가 있었다. 어떤 날은 잔소리를 하는 그녀, 어떤 날은 묵묵히 내 말을 들어주는 그녀, 어떤 날은 잠든 아이를 보며 작은 소리로 기도하는 그녀. ‘기도’라는 말이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우리가 늘 작은 사람이라서였다.


아이에게 그 노트를 보여주었다. 아이는 신중히 넘겼다. 낡은 테이프가 붙은 종이를 조심스레 떼고, 말린 클로버를 손가락 끝으로 들어 올렸다. 아이의 손끝에, 내가 살던 계절이 살짝 묻어났다.

“아빠, 이거... 예쁘다.”

아이가 말했다. 그 말은 내게도 처음이었다. 나는 노트가 예쁘다고 말해 본 적이 없다. 기록은 늘 쓸모를 먼저 가지고, 미는 나중에 얻는 것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그날, 나는 기록이 먼저 ‘미’의 편에 서기도 한다는 걸 배웠다. 누군가를 오래 사랑한 증거는, 아름답다. 설령 그 누군가가 떠났을지라도.


한밤중, 나는 주방 창문을 열었다. 겨울이 끝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이 덜 단단한 쪽으로 무너지는 소리, 지붕 끝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먼발치에서 트럭이 기어를 낮추는 소리. 소리들은 불완전했고, 그 불완전함이 이상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완벽했던 것은 병실의 흰색뿐이었다. 완벽한 것들은 가끔 사람을 죽인다.


테이블에 종이를 놓고, 펜을 들었다. 손이 떨리지는 않았다. 대신,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천천히 다시 쓰는 법을 배웠다. 빠르게 쓰던 시절엔 못 보던 것들이 보였다. 글자와 글자 사이에 들어가는 숨,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생기는 고요, 한 줄을 마치고 다음 줄로 내려가기 전 꼭 필요한 망설임. 예전의 나는 망설임을 미숙이라 불렀다. 그러나 망설임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예절이었다. 나는 망설였다. 오래.


첫 문장은 오래 머물렀지만, 결국 나왔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글을 쓰는 법과 그림을 보는 법을 잃었다. 그러나 숨을 쉬는 법은 잊지 않았다. 다만 오래 잊은 척했을 뿐이다.


쓰고 나서, 나는 한참 동안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문장은 내게서 나왔지만, 나를 건너서 갔다. 나보다 오래 살 문장. 문장을 보다가, 아이의 방문을 살짝 열었다. 아이는 옆으로 누워 잤다.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아이의 잠은 개울 같았다. 돌을 만나면 잠깐 부서지고, 다시 이어지는. 나는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제가 알아서 조심스러웠다. 어떤 문들은 우리 대신 예의를 알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아이가 자기 그림을 내게 보여주었다. 동그라미가 줄었다. 대신 길이 늘었다. 어제까지 빙글빙글 돌던 선들이, 오늘은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었다.

“선생님이 그러셨어. 겹치는 데가 예쁘다고.”

아이가 말했다. 겹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상처가 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르게 흘러가던 두 가지가 한 점에서 만나는 사건. 우리도 그랬다. 그녀와 나, 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오다 어느 날 겹치고, 그 겹침 속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이는 어깨를 조금 내어주었다. 아이의 어깨는 그녀의 어깨와 닮았다. 생각보다 넓고, 의외로 여렸다.


도로는 봄이 오면 냄새가 달라진다. 눈 녹은 물이 흙과 섞여 남기는 냄새, 먼 거리에 아직 얼음이 남아 있을 때 그 얼음이 내는 소리, 공사장 비닐이 바람에 움푹움푹 들어가며 내는 얇은 북소리. 나는 그 모든 것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듣는 것은 곧 사는 일이었다. 사는 동안에는 최소한 한 가지는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말이든, 기계의 숨이든, 봄의 무게든.


아이와의 길도 달라졌다. 숙제를 보고, 함께 밥을 만들어 먹고, 가끔은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싸우기도 했다. 싸운 날 밤, 아이는 방문을 쾅 닫았고, 나는 그 소리에 오래 앉아 있었다. 누군가의 닫힘은 언제나 소리로 온다. 그러나 잠시 후 아이가 방문을 다시 열었다.

“아빠, 미안.” 그 한마디에, 문 쪽으로 달려가 끌어안고 싶었다. 대신 내가 말했다.

“아빠가 미안.” 누군가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일은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첫걸음이었다. 방향이 바뀌면, 길은 길을 다시 만든다.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 길이 생긴다. 우리는 그 길을 걸었다. 천천히.


나는 다시 글을 썼다. 자주가 아니라, 꾸준히. 트럭의 오도독거리는 진동 위에서도, 휴게소의 둔탁한 테이블 위에서도, 아이가 숙제를 하는 옆자리에서도. 아이는 내 글씨를 가끔 구경했다. “아빠 글씨는,” 아이가 말했다, “달리기 같아.” 뛸 때처럼, 크고 작고 빠르고 느린 것들이 섞여 있다고. 나는 웃었다. 아이는 내 웃음을 보고 더 크게 웃었다. 웃음은 불처럼 번졌다. 그날 밤 집은 밝았다.



그녀가 떠난 후, 한동안 화실에는 내려가지 못했다.

계단 앞에만 서면, 발끝이 돌처럼 굳었다. 그곳을 지나면, 그녀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다시 겹칠 것 같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오래된 물감 냄새와 희미한 테레빈유의 향이 공기 속에 배어 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냄새였는데, 내겐 죽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장모님이 대신 화실을 관리해 주셨다. 먼지를 털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붓과 캔버스에 살짝 기름칠을 해 두셨다. “곰팡이가 피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나는 내려가지 않았다. 계단은 늘 거기 있었고, 나는 계단을 모르는 사람처럼 살았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문을 열었다.

처음 내려간 그날, 화실은 내 기억보다 작았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햇빛이 흰 천 위에 고여 있었다. 물감 냄새는 여전히 강했고, 붓은 말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수십 장의 그림들이 있었다.


벽에 기대어 있던 캔버스들을 하나씩 꺼냈다. 첫 번째 그림은 아이가 두 살쯤 되었을 때였다. 작은 손으로 쥐었던 딸랑이를 쥔 모습, 볼에 붙은 작은 빵가루까지 그려져 있었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캔버스 안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그림은 순서대로 쌓여 있었다. 세 살, 네 살, 다섯 살. 각각의 생일마다, 계절마다, 성장의 순간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멀리 갈 수 있어.”

“넘어지면, 무릎에 묻은 흙을 탓하지 말고 바람을 먼저 느껴.”

“아직 작아서 괜찮아. 커서도 괜찮으려면, 작은 걸 오래 기억해.”


나는 그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고, 바닥에 번진 물방울이 종이 위의 낡은 연필 선을 조금 번지게 했다. 그녀는 병든 몸으로도 그림을 그렸고, 붓을 쥔 손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날부터 화실에 내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그림마다 설명을 달기 시작했다. 아이가 혹시 알아보지 못할까 봐, 그림의 색과 선이 전하는 이야기를 단어로 남겨 두었다. 그녀는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의 여정을 그리며 그림으로 그려내었다.


“봄의 웃음” — 세 번째 생일날, 케이크보다 손에 묻은 생크림을 더 자랑스러워하던 얼굴.

“여름의 숨” — 다섯 살, 계곡에서 물장구치던 날. 작은 발목에 부딪히던 물방울의 빛깔까지.

“가을의 눈” — 일곱 살, 단풍잎을 두 손에 가득 모아 “엄마, 이거 예뻐”라고 말하던 목소리.


나는 썼다.

내 손은 멈추지 않았고, 내 눈물도 멈추지 않았다.

글씨가 번질까 봐 눈을 닦다가도, 다시 울었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이 그림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전시회의 테마는 정해 두었다.


“겹쳐 칠하는 계절”.


그녀가 남긴 시간과 아이가 살아가는 시간을 한 공간에 겹쳐 놓고 싶었다. 아이가 커서 화실을 내려오게 되면, 엄마의 숨결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전시장 한가운데, 작은 책상 위에 내 글을 놓을 계획이었다. 그림을 보는 방법, 엄마가 말하지 못한 이야기, 그녀가 사랑했던 색의 이름들.


나는 아이와 함께 전시장에 들어가서, 그녀의 계절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지켜 온 것들을, 다시 아이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밤의 집. 창문에 봄벌레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먼저 잠들었다. 최근 중학생이 되면서 아이는 부쩍 자라곤 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손이 문장을 알고 있었다. 손이 먼저 쓰고, 내가 읽었다.


나는 오늘도 그 길을 간다. 잃어버린 것들의 길,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의 길. 사라질 동안 예쁘기 위해, 남아 있을 동안 더듬기 위해. 내 아이의 시간이 나를 밀어준다. 그녀의 부재가 나를 빛으로 남긴다. 나는 끝까지 가겠다.


문장을 덮고 불을 껐다. 어둠은 예전 같지 않았다. 어둠은 더 이상 구덩이가 아니었다. 어둠은 길이었다. 길이란, 가면 길이고, 서 있으면 밤이다. 나는 가기로 했다. 겨우, 조금, 그러나 분명히. 잠들기 전, 나는 아이의 방문을 열었다. 아이는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잤다. 아이의 손가락 사이로 봄이 스며들었다. 나는 속삭였다.


“잘 자, 우리 아가.”


그 말은 곧 그녀의 목소리가 되었다. 나는 내 목소리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겹쳐 칠하는 계절. 두 개의 색이 만나 새로운 빛이 되는 순간. 그녀와 나, 그리고 아이. 우리는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서로 다른 방, 그러나 같은 지붕. 비가 오면 같은 소리를 듣고, 해가 뜨면 같은 빛을 본다. 그 사실이 나를 살게 했다.


다음 날 아침, 도로 위. 라디오는 오늘도 잘 잡히지 않았다. 대신 파란 하늘이 또렷했다. 전방에 느리게 가는 트레일러가 보였다. 나는 속도를 줄였다. 습관처럼, 거리에 여백을 두었다. 여백은 안전을 낳는다. 나는 여백을 배웠다. 살다 보니, 여백이야말로 우리가 사랑을 보관하는 방법이라는 걸. 너무 꽉 채우면 금세 상하고, 조금 비워 두면 오래간다.


창가에 붙인 아이의 사진이 햇빛을 받았다. 사진 속 아이가 ‘아빠, 봐!’라고 외친다. 나는 대답했다. “보고 있어.” 그 말은 사진에게만 한 것이 아니었다. 지나가 버린 모든 것들에게, 아직 오지 않은 모든 것들에게,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것들에게.


나는 그 길 위에서 브레이크를 가볍게 밟았다. 브레이크등이 뒤차의 얼굴에 작은 붉은 점을 찍었다. 그것이 신호였다. 너도 살아라. 나도 살겠다. 우리는 오늘도 서로의 길을 살짝, 그러나 확실히 지켜 준다. 그리고 새삼 알았다. 지킨다는 건, 붙드는 일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걸. 때로는 비켜 주는 일, 멈춰 주는 일, 기다려 주는 일. 사랑의 대부분은 그런 일들로 되어 있다.


나는 알았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글을 쓰는 법과 그림을 보는 법을 잃었다. 그러나 숨을 쉬는 법을 다시 배웠다. 숨을 쉬면, 언젠가는 단어가 오고, 색이 온다. 오늘은 단어가 더디다면, 내일은 색이 먼저 올 것이다. 어느 날은 둘 다 오지 않더라도, 괜찮다. 그날은 그냥 숨만 쉬면 된다. 숨은 모든 날의 토대니까.


길이 길어도 좋았다. 오래 걸리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었다. 오래 걸리는 동안, 나는 아이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아이가 놓치면 다시 잡아 줄 수 있었다. 아이가 앞서가면 한 발 뒤에서 불러 줄 수 있었다. “조심해.” 그것은 내가 그녀에게 배운 말이고, 내가 아이에게 주는 말이다. 결국 말은 이어지고, 숨은 이어진다. 우리는 이어져 산다. 이어진다는 건, 사라지지 않는 또 다른 방식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쓴다.

나는 다시 본다.

나는 다시 숨 쉰다.


어느덧, 아이는 열여덟 살이 되었다. 계획은 단단했고, 날짜도 대략 잡았다. 아버지의 협조도 받았다. 아이의 생일 즈음, 봄비가 그친 뒤의 어느 주말. 작은 바다 여행을 다녀온 뒤, 돌아오며 전시 일정표를 확정하려 했다.

돌아오는 길, 내비게이션은 집까지 60km라고 말했다. 도로는 얇은 얼음막 위에서 천천히 호흡했다. 히터는 미지근했고, 라디오는 오래된 노래를 틀어주었다.


그때, 앞차들이 붉은 브레이크등을 한꺼번에 켰다. 1차선에서 거대한 트레일러 하나가 비틀렸다.

졸음의 파동이 차체를 뒤틀었다. 나는 경적을 길게 울리고, 상향등을 두 번 터뜨렸다. 눈발이 헤드라이트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졌다.


앞서 말했던 모든 것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이의 이름, 그녀의 이름, 전시장 가운데 작은 책상, 팔레트에 남은 말라붙은 초록. 나는 브레이크와 엔진브레이크, 리타더를 겹쳐 물고, 2차선에서 1차선으로 몸을 틀었다.

강철이 강철을 밀어붙이는 둔탁한 충격. 앞유리 가장자리가 거미줄처럼 번졌다. 벨트가 어깨를 사납게 끌어당겼다. 빛들이, 눈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적막함.


대시보드에 붙여둔 아이의 사진이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사진을 보며 속삭였다.


“미안하다...”


어둠 속에서 오래된 문 하나가 열렸다. 열려 있던 바로 그 문. 눈이 내리던 아침의 교실, 언덕길, 미지근한 캔 음료, 창틀 위의 작은 원. 모든 것이 한 번에 돌아왔다. 나는, 그 문턱을 조용히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