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초입이었다. 새벽 공기가 바늘처럼 살갗을 찌르던 아침, 나는 딸을 태우고 학교 앞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히터를 켰지만 유리창 아래 모서리에는 성에가 하얗게 남아 있었다.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온 바람이 차창을 쓸며 지나가자, 실내에 남은 커피 냄새마저 금세 옅어졌다.
언덕 아래쪽, 횡단보도 앞에서 두 사람이 맞서 서 있었다. 교복 차림의 소년과, 중년의 남자. 그 둘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지나가더니, 손바닥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꽝 하고 들렸다. 소년의 얼굴이 옆으로 꺾이며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울음은 터지지 않았다. 대신, 어금니 사이로 숨을 끌어당기는 소리가 창문을 뚫고 내 귀에 들어왔다. 내 옆에서 딸이 숨을 삼켰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아빠, 저 저기서 내려 주세요.”
“학교 거의 다 왔는데.”
“준비물 사야 해요. 꼭 필요한 건데 제가 잊고 있었나 봐요.”
나는 브레이크에 발을 얹었다. 툭—, 차가 부드럽게 멈췄다. 딸은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챙겨 썼다. 차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물러선 온기를 밀어냈다. 딸은 문을 닫고 언덕 위에 섰다. 룸미러에는 딸의 뒷모습과, 멀리 언덕 아래의 아이가 동시에 들어왔다. 둘 사이에 아침 해가 비스듬히 궤적을 그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언덕이라는 건 원래 올라가면 숨이 차고, 내려가면 무릎이 시큰한 법인데, 그날은 기울기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바람이 불고, 사람들이 지나가고, 학교 종소리가 멀리서 울렸지만, 두 아이를 둘러싼 시간만은 얼어붙어 있었다.
소년의 뺨에 붉은 자국이 서서히 번졌다. 그는 울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한 번 꽉 쥐었다가, 아주 천천히 폈다. 그 동작이 어쩐지 오래된 나의 기억을 자극했다. 딸이 내 차에서 내려 서성이는 동안, 소년은 언덕 아래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발끝으로 작은 돌을 차며,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 했다. 결국 그는 올라오기 시작했다. 허벅지 근육이 바짓단으로 미세하게 떨려 나왔다. 숨소리가 언덕의 공기를 깔았다. 딸은 언덕 위에서 그를 기다렸다가, 어디선가 캔 음료를 꺼내 내밀었다. 그 캔을 그는 양손으로 받았다. 알루미늄 표면 위로 김이 서리지 않았다. 미지근했다. 오래 기다렸다는 증거였다.
나는 그때, 그 아이를 마음속에 표시해 두었다. 위험하다는 뜻이 아니라, 기억해야 한다는 뜻으로. 언덕의 바람이 두 아이의 어깨 위를 번갈아 쓸고 지나갔다. 그 바람 속에 섞인 조그마한 따뜻함을, 나는 멀찍이 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를 다음에 본 건 회사 야적장이었다. 겨울 햇살이 철골 구조물 사이로 들어와 바닥에 성긴 사각형을 만들던 오후였다. 디젤 냄새, 쇠를 갈아낸 분진 냄새, 젖은 자갈에서 올라오는 흙냄새가 뒤섞여 도장을 칠한 듯 코 안쪽에 눌어붙었다.
“조심해, 그건 혼자 들다간 허리 나간다.”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그 아이—딸의 곁에 서 있던 그 소년—이 컨테이너 안쪽에서 박스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박스마다 무게 중심이 달라 팔 근육이 불규칙하게 떨렸다. 손목엔 갈라진 자국이 있고, 굳은살이 잡석처럼 박여 있었다.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놀람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스친 얼굴이었다.
“괜찮아요. 버틸 만해요.”
한 구절이었지만, 그 말은 내 귀에서 오래 머물렀다. 버틴다는 말. 나는 그 단어를 낮게 입 안에서 굴려 보았다. 버틴다는 건, 버텨야만 하는 무게가 있다는 뜻이고, 버티기로 결심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런 종류의 결심을 한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현장에서 오래 남는 사람, 앞으로 더 멀리 가는 사람은 대개 한 번쯤 크게 무너진 뒤, 버티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그날 아이는 스패너를 들고, 묵묵히 내가 시키지도 않은 정리를 했다. 운반용 패널을 세워 고정하고, 들쭉날쭉한 팔레트를 다시 포개고, 흘린 볼트를 하나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 바닥을 기어 다녔다. 해가 길게 기울 무렵, 나는 일부러 실마리를 줬다.
“내일 새벽 다섯 시 반, 야적장. 가능하면 나와 봐라. 컨테이너 들어오는 날이다.”
아이는 단 한 박자 늦게, 그러나 또렷하게 대답했다. “네.”
다음 날 새벽, 나는 어둠 속 야적장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숨이 하얗게 길을 냈다. 5시 20분, 금속장갑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5시 23분, 아이가 뛰어 들어왔다. 이마에 서리 같은 땀이 맺혀 있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도 말없이 허리를 숙였다. 컨테이너 문을 열자 먼지와 바다 냄새가 동시에 밀려 나왔다. 두 사람이 밀면 한 사람이 쉬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쉬지를 않았다. 부러 쉬는 척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그날 해가 떠오를 때, 그의 손등에 얼어붙은 상처들이 밝게 드러났다. 나는 그 손을 보다가 내 손등을 봤다. 오래전에 굳어 그대로 남은 흉터 자국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는 내 딸 옆에서 어떤 사람으로 남을까.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무거울수록, 의심은 더 자주 고개를 든다. 나는 그 의심을 가라앉히고자 더 많은 장면을 보려 했다.
며칠 뒤,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밤이었다. 복도 끝, 딸 방 아래쪽으로 노란 불빛이 길게 새어 나왔다. 나는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가다, 방 문턱 앞에서 발이 멈췄다. 문틈 너머로 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 힘들면 말해도 돼. 나만 쉬면 싫어.”
잠시 침묵. 전화기 너머에서 낮게 진동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딸이 다시 말했다.
“우리 둘이잖아. 같이 쉬고, 같이 뛰자.”
나는 문턱에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문 안쪽 공기의 결이 달랐다. 공부하는 아이들 방의 공기와는 다른, 살짝 따뜻하고 묽은 공기. 누군가 누군가의 마음을 안으로 끌어들일 때 생기는 기압. 나는 그 압력에 등줄기가 뻣뻣해지면서도 이상하게 어깨가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내 아내가 젊은 날 내게 했던 말들이 소금처럼 입 안에서 녹아났다. “함께”라는 건 때때로 말보다 숨의 길이로 측정되는 것이었다.
나는 문턱에서 물러났다. 그들의 ‘함께’ 앞에 오래 서 있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주방등을 켜지 않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물을 마셨다. 컵 표면이 차가웠다. 나는 컵을 입술에 댄 채 잠시 눈을 감았다. 나와 딸, 그리고 저 아이. 셋의 숨이 어딘가 같은 박자를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부터 나는 의도적으로 시험을 만들었다. 납품 시간에 맞춰 트럭 고정끈을 일부러 덜 고정해 두고, 아이가 알아챌지 지켜봤다. 그는 출발 전, 손으로 모두 한 번씩 당겨 보았다. 느슨한 한 끈에서 작은 삐걱 소리가 났다. 그 아이는 내 눈치를 보지 않고 스패너를 찾아 단단히 고정했다. 그 손놀림엔 잘 보여야 한다는 초조함보다, ‘안전하게 해야 한다’는 태도가 묻어 있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우리는 비닐 포장을 씌운 팔레트를 내렸다. 바닥이 미끄러워졌다. 나는 몸이 앞으로 쏠렸고, 그 순간 그 아이가 내 팔꿈치를 붙잡았다. 손에 남은 그의 체온이 잠시 뜨거웠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먼저 사과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 말의 방향이 나를 향해 오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안도했다.
저녁 무렵, 컵라면에 물을 붓고 버스 정류장 비가림막 아래 앉은 날도 있었다. 아이는 국물을 반쯤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남기지 마라.” 내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그는 웃었다. “내일을 위해 남겨 둘게요.” 무심한 농담의 궤도를 타고, 긴장감이 아주 조금 풀렸다.
며칠 후, 아이가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문고리를 잡던 손이 잠깐 떨렸다. 나는 일부러 서류를 정리하는 척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가 먼저 말을 꺼내도록. 결국 아이가 입을 열었다.
“허락해 주신다면, 진주를 평생 지키겠습니다.”
그 말에는 세련됨도, 화려함도 없었다. 그러나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는 밀도가 있었다. 나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가까스로 표정을 숨겼다.
“네가 우리 딸을 지킬 수 있겠어?”
그 아이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아주 천천히 내뱉었다.
“할 수 있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하겠습니다.”
서투른 문장. 그 서투름 때문에 믿을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이 내 손을 감쌌다. 거칠었지만, 떨림이 잦아드는 손.
“결혼식은 조금만 미루고 싶습니다. 제가 아버지와의 문제를 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 너희 원하는 데로 하렴”
그 아이가 고개를 숙였다. 그가 방을 나간 뒤, 나는 잠시 서랍을 열었다. 오래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서류들—내 젊은 날, 해외에 나가고 싶어 모아 두었던 학교 팸플릿과, 가지 못한 공장의 지원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종이에서 습기가 올라왔다. 나는 그 종이들을 다시 넣었다. 사람은 자기 젊은 날에 묶인 채로 다른 사람의 젊은 날을 심사하기 쉽다. 나는 그 함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