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없이도, 둘은 함께 살았다. 나와 아내가 준비한 집을 그냥 받는건 부담스럽다고 안된다고 하자, 둘이 모은 돈을 전세금 형식으로 주는 걸로 대신했다. 거실에는 빛이 잘 들었고, 겨울 아침이면 커튼 위로 햇빛이 레이스처럼 펼쳐졌다. 밥솥에서 김이 나올 때, 딸의 웃음소리는 더 잘 울렸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 나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손을 비볐다. 병원 복도에서 소독약 냄새가 길게 이어졌다. “아빠.” 딸이 나를 불렀다. 눈가가 젖어 있었지만, 표정은 단단했다. 내 손을 잡던 작고 따뜻한 손이, 이제 누군가의 손을 다시 잡고 있었다.
손주가 울음을 터뜨렸던 첫 순간, 내 귀는 오랜만에 완전히 열렸다. 울음이 아니라, 시작의 소리였다. 아이의 손가락이 내 엄지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사위는 울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지만, 눈물은 끝내 올라왔다. “축하한다.” 나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아내와 소주를 한 잔 따랐다. 창밖에는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눈 위에 발자국을 내고 싶어 문을 열까 하다가, 그냥 앉아 있었다. 새 생명이 들어오면, 집 안의 시간들이 새로 분류된다. 그건 장식이 아니라 구조였다.
행복은 생각보다 빨리 그림자를 끌고 왔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어정쩡한 계절, 병원 진료실의 문이 닫히는 소리는 유난히 무겁다. 모니터에 비친 딸의 사진—희뿌연 얼룩 같은 그림이 의사의 손가락 끝에 따라 움직였다. “진행이 빠릅니다.” 담담하게, 그러나 단칼처럼. 나는 그 말이 나를 지나치길 바랐다. 내 뒤 벽에 박혀 남고, 나에게는 닿지 않기를.
진료실 밖, 긴 복도에서 나는 벽에 등을 붙였다. 마스크 속 입술이 말라 들러붙었다. 사위는 고개를 숙인 채 의자의 나무 팔걸이를 양손으로 감쌌다. 그의 손등 위로 핏줄이 섰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울음은 나중에, 각각의 방에서, 밤과 밤 사이에서 흘렀다.
딸은 웃었다. “아빠, 나 행복했어. 진짜로.” 나는 그 말이 너무 빨라서 무서웠다. 아직 과거형으로 말하지 말아 달라고, 입안에서만 웅얼거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신호 대기 중인 내 무릎 위로 햇빛이 조각조각 쏟아졌다. 사위는 뒷좌석에서 말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데, 끈이 자꾸 엉켰다. 그날 밤, 나는 차 안에서 혼자 울었다. 손을 운전대에 얹고, 핸들 중앙의 간판을 주먹으로 한 번 내리쳤다. 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끝까지의 하루들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긴 의자, 차갑게 닦아 놓은 바닥, 분당마다 울리는 기계음. 우리는 이 시간을 견디기 위해 작은 의식을 만들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병원 가는 날, 나는 도시락통에 딸아이가 먹고 싶다고 말한 잘게 썬 김치를 넣었다. 사위는 보온병에 미지근한 보리차를 챙겼다. 아마 또 먹지 못할 것이다. 손주는 내 아내와 집에서 그림책을 읽었다. 딸은 가끔 몸이 조금 나아지는 날이면 화실에 내려갔다. 나도 사위도 처음엔 말렸다. “버겁다. 쉬어라.” 딸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쉬는 거야, 아빠. 나,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게.”
그 말의 뜻을 나는 뒤늦게 알았다. 화실에 함께 내려간 어느 오후, 빛이 비스듬히 기울어 캔버스 표면에 긴 원을 그렸다. 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붓 끝을 움직였다. 밑그림은 아이의 뒷모습이었다. 자전거를 처음 타던 날의 흔들리는 어깨, 비에 젖어 무거워진 우산의 각도, 꽃가루가 날리는 길목에서 하품을 하며 눈을 가리는 손.
그림은 기록이면서, 장래의 메모였다.
“여섯 살의 너는 자주 오른쪽으로 넘어졌어.”
“여덟 살의 너는 라면을 먹고는 맵다며 울음을 터뜨렸지”
“열 살의 너는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웃었어.”
그림 옆에 작은 글씨가 하나씩 붙었다. 나는 그 글씨를 읽다가 숨이 가빠졌다. 딸은 내 시선을 감지했는지 붓을 내려놓고 말했다.
“아빠, 이건 그 애를 위해서만은 아니고, 나를 위해서이기도 해.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붓을 씻느라 물감이 번져 나가는 세숫대야 물 표면을 오래 내려다봤다. 색이 겹치는 순간의 무늬가 소리 없이 생겼다 사라졌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고, 겨울이 다시 올 즈음, 딸의 몸은 가볍고 투명해졌다. 겨울밤, 창문을 조금 열면 머리카락이 바람과 함께 흔들렸다. 나는 그 바람을 막으려고 커튼을 잡아당겼다가, 딸의 눈짓에 커튼을 놓았다. “바람 소리 듣고 싶어.” 침대 머리맡에서 나는 붓을 닦아 둥근 유리병에 꽂았다. 딸은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아빠, 나는 괜찮아. 진짜로. 여길 지나가서 다시 우리 모두가 만나는 날이 올 거야.”
그날 새벽, 딸은 아주 조용히 내 손을 눌렀다. 그 눌림은 ‘지금’이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나는 고개를 숙여 딸의 이마에 입을 댔다. 이마의 열이 내 입술로 옮겨 붙었다. 사위가 딸의 반대편 손을 잡고 있었다. 그의 어깨가 울었다. 그러나 울음소리는 끝내 새어 나오지 않았다. 손주의 잠든 숨소리가 방문 너머에서 아주 작게 들려왔다.
장례식장 복도에서 문상객들의 발자국이 관통하는 소리가 들렸다. 국화 냄새, 절하는 사람들의 허리에서 나는 천의 마찰음, 형광등의 허밍. 나는 빈소 구석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사위가 조문객들을 맞았다. 그의 고개 숙임은 매번 같았다.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았다. 누군가 내 옆에 앉았다. 친구였다. 그는 내 무릎 위에 손을 얹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날 밤, 치워지지 않은 종이컵과 과일 접시 사이로, 사위가 내 옆에 와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말이 되던 밤이었다.
딸을 떠나보낸 뒤에도 사위는 일터에 나왔다. 핸들에 손을 얹은 그의 손등은 더 어두워졌다. 새벽 다섯 시 반 야적장, 그가 없는 날은 없었다. 일하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도 다니고, 장모와 장인의 집에 아이를 맡기고, 다시 일터로 돌아왔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마음속에 작은 빚이 자라났다. 받아들이지 못했던 어떤 순간들, 믿지 못했던 말들, 의심해 버린 표정들.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미안하다’는 문장으로 응고됐다. 그러나 그 말을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어느 날 말하면 울 것 같아서. 울면 말이 흩어질 것 같아서.
나는 대신 작은 걸 더 했다. 야적장의 냉장고를 새로 들이고, 라면 대신 삶은 달걀을 넣어 두었다. 트럭 정비를 미리 해 두고, 내비게이션에 안전 경로를 저장했다. 말 대신 동선을 바꿨다. 그건 내 방식이었다.
손주는 자라났다. 열 살이 되었을 땐 앞니 하나가 없었다.
“외할아버지, 나 웃을 때 이상해?”
하고 물으면, 나는 일부러 더 크게 웃어 보였다. “아주 멋있어.”
눈 오는 날이면 손주는 장갑을 벗고 눈송이를 맨손으로 받았다. 손바닥 위에 내린 눈이 금세 녹아 물방울을 만들었다.
“엄마도 눈 좋아했어?”
어느 오후, 창가에서 손주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엄마는 눈 오는 날마다 웃었지. 첫눈 오면 꼭 창문에 김 불어서 동그라미 그렸어.”
손주는 유리창에 입김을 불었다.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그 원 바깥으로 겨울 오후의 해가 기울었다. 그 장면은 오래전 언덕 위의 원, 딸이 그렸던 작은 원과 겹쳤다. 나는 등 뒤로 깊이 숨을 쉬었다. 내 폐 속에도 작은 원 하나가 그려지는 소리가 났다.
밤이면 나는 딸이 독립하기 전 사용 했던 방을 가본다. 딸아이는 떠난 지 오래지만, 냄새는 여전히 겨울 공기 속 어딘가 떠 있다. 문턱에 걸터앉아 숨을 고른다. 멀리서 트럭 브레이크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산 너머로 바람이 내려온다. 그 바람은 예전과 같은 길을 타고 이 집의 처마를 스친다. 나는 그 바람 속에서 약속을 꺼낸다.
딸에게 했던 약속. “네 편이 되어 주겠다.”
사위에게 하지 못했던 말. “미안하다. 고맙다.”
손주에게 앞으로 건넬 문장들. “사람은 가끔 무너져도, 다시 서는 법을 배운다.”
언덕에서 본 그 아이의 뺨, 미지근한 캔의 온기, 야적장에서 들리던 철의 마찰음, 병실의 소독약 냄새, 화실의 물감 냄새, 장례식장의 형광등 소리—모든 장면이 내 안에서 겹쳐 칠해졌다. 색과 색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새로운 색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나는 그 색을 이름 붙일 수 없지만, 알아볼 수 있다. 우리 가족의 색이다.
어느 밤, 사위가 일을 마치고 집에 들렀다. 문턱에서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를 붙잡아 세우지도, 등을 두드리지도 못했다. 대신 말했다.
“따뜻한 국 끓였다. 먹고 가라.”
그는 “네” 하고 웃었다. 식탁 위에 김이 올랐다. 우리는 아주 오래, 국을 먹었다. 말은 적었지만, 젓가락과 숟가락이 그 대신 장면을 만들었다. 창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커튼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나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바람아, 가는 길에 좀 전해다오.
너는 애썼다고. 정말 수고했다고.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같은 곳을 향해 불고 있다고.
그 밤이 깊어갈수록 창문엔 김이 끼었다가, 다시 맑아졌다. 바람은 멎었다가, 다시 불었다. 우리는 각자의 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남겨지는 자의 방식으로. 떠난 이를 품은 방식으로. 바람에 남은 약속 하나를 더해 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