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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동문학가 강인석 Oct 11. 2017

그에게는 염원,
그녀에겐 행복한 일상

영화 '회사원'의 '짜장면과 짬뽕'


  이사하는 날, 초등학교 졸업식, 야근할 때, 밥하기 귀찮을 때 쉽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짜장면과 짬뽕. 특별한 날에도, 아주 평범한 날에도 언제라도 큰 고민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 콤비가 바로 짜장면과 짬뽕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흔한 음식인 이 콤비를 통해서도 영화를 읽어낼 수 있다. 



  평범하지 않은 평범,

  더 선명해지는 음식의 의미

     

  영화 ‘아저씨’의 원빈처럼 또 한 명의 히어로를 꿈꿨던 소지섭 주연의 영화, 하지만 흥행에 실패하면서 제2의 아저씨가 되지 못했던 영화 ‘회사원(2012)’. 이 영화는 ‘평범함’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거대한 기업형 청부살인 회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액션 게임 같은 이 영화가 평범할 리 없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은 평범하지 못한 사람이 갖는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 평범함을 가장한 특별한 삶의 이야기, 그리고 너무 평범한 이들이 꿈꾸는 작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최고의 살인청부업자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동경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회사원'은 제목에서도 그런 의지가 드러난다. 

  영화는 제목부터 평범하다. 우리 사회의 성인 남자들을 부르는 가장 평범하고 흔한 호칭, 특징 없는 단어 중 하나가 ‘회사원’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 속 미연(이미연)이 형도(소지섭)에 대해 물어보는 친구에게, “그냥…, 회사원”이라고 답변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주인공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환경은 지극히 평범하다. 회사에서 만나는 동료들도 서대리, 지주임, 권이사 등 평범한 회사의 직함들이다. 회식도 나가고, 결재도 올리고, 승진도 하고, 출장도 간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이다. 일을 하는 현장에서 주고받는 대화나, 은퇴한 선배를 찾아가서 풀어놓는 회사에 대한 넋두리와 선배로부터 충고를 듣는 장면도 모두 평범한 우리네 모습들이다.


   “넌 뭐가 되고 싶냐?” “과장님은 스무 살 때 어떠셨어요?” “형도야, 버티라. 퇴직금까지 받고 나오는기라, 월급쟁이는 그래야 한다.” 평범한 직장인들의 삶처럼 보이는 이들의 대화는 사실 평범하지 못함을 위장하는 장치들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평범하지 못한, 특별한 삶을 부각시키는 보이지 않는 장치들이다.  어찌 보면 영화의 소재로 그들이 선택한 ‘살인 기업과 그 속의 사람들’을 돋보이게 하려는 반어법적인 설정이기도 하다. 아울러 주인공이 특별함을 벗어버리고 그렇게 찾고 싶은 ‘평범한 삶’을 더욱더 가치 있게 보이도록 해 주는 역할도 담당한다. 가짜 평범함에 둘러싸여 진짜 평범한 삶을 갈망하는 인물의 설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듯 위장된 평범함 때문에 툭 던져진 음식, 짜장면과 짬뽕은 더욱더 선명한 의미부여가 가능해진다.


평범한 출근, 평범한 직함, 평범한 복장은 평범하지 않은 그의 직업과 삶을 더 돋보이게 하는 숨은 장치이다. 

     

 

한 번 꺾였던 꿈을 가진 그녀도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가면서 작은 행복이라도 느껴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평범한 삶과 사랑의 연결고리,

  꿈꾸기만 해도 좋을


  이 영화에서 짜장면과 짬뽕은 영화의 제목인 ‘회사원’과 같은 음식이다. 가장 흔한 호칭과 마찬가지로 쉽게 먹을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음식이 바로 짜장면과 짬뽕이다. 이 두 음식은 너무 다른 세계 속에 살아가는 그(형도)와 그녀(미연)가 마주 보고 앉은 테이블 위에 등장한다. 그는 짜장면, 그녀는 짬뽕. 

  그는 그녀를 알게 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따로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는다. 평범하게 살면서, 평범하게 사랑하고,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을 누리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지금껏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여 온 그에게 생긴 소망이다. 
   그런 그가 그녀와의 특별한 관계가 처음으로 맺어지게 되는 자리에서 선택한 음식은 짜장면이다. 이 짜장면은 그가 갈망하는 평범한 삶을 열어주고, 자신의 염원으로 가는 연결 고리이다. 첫 데이트인데도,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라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는다는 것은 그가 그렇게 소소한 행복을 얼마나 염원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짜장면을 통해 그녀와 가까워지고, 평범함 삶 속에서 누리는 작은 행복들을 조금씩 체험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짤뽕, 다시 돌아가고 싶은, 다시 회복하고 싶은 평범한 행복을 상징한다. 
그의 짜장면은 살인청부를 벗어버리고 그가 선택하고 싶은 소소한 삶의 행복을 상징한다. 

 




 일상이 너무 평범한 그녀(미연). 아니 평범함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그녀 역시도 작고 평온한 행복을 꿈꾼다. 한 번 꿈이 꺾인 경험이 있는 그녀 앞에 나타난 그(형도)는 그녀를 다시금 평범한 행복 속으로 이끌어줄 구세주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손을 내밀어 줄 것 같지 않던 그녀의 삶에 손을 내밀어주고, 그녀가 짊어지고 있던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그와 함께 마주 보면서 먹은 짬뽕은 그녀의 삶에 행복을 꿈꾸게 하는 또 다른 고리이다.



  짜장면과 짬뽕 이후, 그와 그녀의 삶은 달라진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공간을 열고, 자신의 삶 속에 그를 초대한다. 그도 새로운 삶을 설계하기 시작한다. 

그에게는 염원이었던 평범한 삶으로 가기 위한 입구그녀에겐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찾고 싶었던 행복의 입구짜장면과 짬뽕을 선택하지 않고서는 이 영화에서 그런 의미를 부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영화가 맛있다/강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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