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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동문학가 강인석 Oct 31. 2017

팥죽은 곧 백성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팥죽 ’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추창민)’는 닮은 외모 덕분에 신분이 바뀌는 ‘왕자와 거지’의 구조를 우리 역사로

역사에 '만약'을 넣어 만들어낸 이야기, 광해 

 가져온 영화이다. 왕이 될 운명으로 태어나 당연히 왕이 된 남자, 광대로 태어나 광대로 살아갈 운명에서 한시적으로 왕으로 살게 된 남자, 이 두 사람의 대비는 영화 전체의 스토리만큼이나 중요하다. 그 대비 속에 묵직한 메시지가 숨어 있고, 관객들은 두 남자의 묘한 대비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다. 이 두 남자의 대비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음식이 있다.   



  만약이 들어간 역사 속 광해군

 

  ‘광해’는 왕(王)이 아닌 군(君)으로 역사에 기록될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영화는 그의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if)을 불어넣어, 군왕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백성이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임금, 광해군은 폭군도, 성군도 아닌 치열한 이해관계 속에서 불안해하는 정치인일 뿐이다. 정치적 정적들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자신의 목숨과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어떻게 처신하고 대적해야 할지 늘 고민한다. 그에게서 다른 사람을 살피고 둘러볼 자비나 여유는 없다. 궁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궁궐 밖의 백성들에게도 진짜 임금은 마음을 주지도, 마음을 얻지도 못한다. 그게게 최고의 가치는 ‘자신’이다. 이상적으로 ‘왕은 백성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 영화 속의 광해군은 백성을 위한 왕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닮은 두 사람, 임금과 광대는 '왕자와 거지'의 모티브를 가져왔다.

  실제로 광해군이 그런 왕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 속에서 정작 백성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한 사람은 가짜 임금, 임금의 대역을 맡았던 천민 ‘하선’이었다. 왕의 대역을 하게 된 천민 광대는 어린 나인의 아픔을 알고, 백성의 눈물을 이해한다.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면서, 그들의 마음 또한 얻게 된다. 궁궐 내에서 살아가는 나인과 내시들에게 대역은 진짜 임금보다 더 좋은 임금이다. 나아가 왕비의 깊은 마음까지 헤아리는 것 역시 대역의 몫이다. 진짜 왕에게는 마음을 열지 않던 궁궐 안 사람들이 가짜 왕에게는 마음을 열고 반응하기 시작한다. 비록 가짜이지만 백성을 위한 왕의 모습을 발견하기에 그렇다. 



  ‘백성’이라는 의미를 담아낸 팥죽

     

  ‘광해’에는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음식이 있다. 다름 아닌 팥죽이다. 화려한 궁중음식 틈에서 광대 출신의 입맛에 맞는 유일한 음식이 팥죽이다. 야식으로 팥죽을 즐겨먹는 가짜 왕은 어린 기미나인 사월이의 아픔을 알게 되고, 진짜 왕이 보여주지 못했던 따뜻한 왕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짜 임금 '하선'은 나인들의 배를 채우도록 궁중 음식을 남기고, 팥죽을 찾는다.


   영화 속 팥죽은 곧 백성이다. 천민도 쉽게 즐길 수 있는 평범한 음식이다. 팥죽을 먹는 임금에게 마음이 열리는 것은 백성과 같은 것을 먹고, 즐기고, 나눌 줄 아는 임금이기 때문이다. 팥죽에 관심이 없는 진짜 왕은 결국 백성에게 관심이 없고, 백성의 삶을 살필 마음도 노력도 없었다. 백성과는 동떨어진 화려한 궁중음식에만 관심을 갖는 임금이나 신하들은 백성의 아픔을 살필 줄 모른다. 그러므로 팥죽에는 백성, 사람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담겨있다.


  팥죽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음식이다.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군주의 중요한 덕목이며, 최종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눈여겨 볼만한 장면들이 몇 있다. 

  임금을 호위하는 올곧은 신하인 도부장은 어느 순간 임금이 가짜라는 의심을 하게 되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명백한 증거를 확인하고 ‘하선’에게 칼을 겨눈다. 하선의 순발력에 가짜의 정체를 밝히는데 실패한 그는 호되게 치도곤을 당하고 앓아눕는다. 그런 그에게 가짜 임금이 보내준 음식이 팥죽이다. 그 팥죽을 받아 들고 도부장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훗날 도망가는 하선의 길을 터 주기 위해 도부장은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다, 그가 가짜 임금인 것을 알면서도. 

팥죽을 먹이고, "살아야 팥죽도 달다"는 말을 듣고 감격하는 도부장. 

  조정의 권세를 잡은 이들에게 오빠를 잃을 위기에 몰린 중전을 위해 가짜 임금은 사월이를 통해 팥죽을 보낸다. 이 팥죽을 의아해하는 중전에게 사월이는 “식기 전에 먹는 것을 보고 꼭 그릇을 가져오라”는 당부를 전달한다. 중전은 평소에 먹지 않던 팥죽을 비워낸다. 그리고 임금에게 마음이 열린다.

중전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팥죽, 사월이는 빈그릇을 기다린다.


  이런 과정을 통해, 왕을 둘러싸고 있던 주위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늘 존재하던 거리감도 사라지기 시작한다. 팥죽은 백성이기에, 그 백성의 마음을 아는 임금의 존재를 확인한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팥죽은 왕이 신경써야 할 것이 정적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바로 백성이라고 말해주는 음식이다. 


  백성이 안중에도 없는 정치꾼들은 오히려 이 팥죽으로 왕을 죽이려 한다. 그들에게는 백성들도 늘 그렇게 팥죽처럼 이용할 대상일 뿐이다. 결국 어린 나인은 사약이 담긴 줄 알면서도 백성의 마음을 아는 임금(가짜 임금)을 위해 팥죽을 먹고 죽는다. 팥죽 같은 백성은 그렇게 높은 이들에게는 하찮은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팥죽을 귀히 여길 줄 모르는 그들, 결국 백성을 귀히 여길 줄 모르는 엉터리 정치꾼들인 셈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기에 영화 속 울림은 크다. 


     

“팥죽 맛이 어떻더냐?”

“달고 맛났사옵나이다.”

“그래, 살아있어야 팥죽도 맛난 거야. 이 칼은 날 위해서만 뽑는 것이다 꼭 기억해 두거라.”


스스로 목숨을 거두려는 도부장에게 팥죽을 보낸 왕의 마음, 사람을 사랑하고,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 진짜 임금의 마음이고,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무거운 메시지이다. 그 메시는 팥죽에 잘 녹아서 영화 속을 흐른다. 

<영화가 맛있다 / 강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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