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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동문학가 강인석 Sep 07. 2017

아빠와 아들 사이의 거리감,
극복하기

‘리얼스틸’의 ‘햄버거’

  음식이 전혀 등장하지 않거나 직접적으로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 영화. 그래서 영화를 끌고 가는 여러 장치들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는 음식을 만나보는 것, 크지는 않지만 음식이 영화에서 풀어주는 의미와 기능을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다. 거친 로봇의 세계를 소재로 아빠와 아들의 관계를 그린 영화 ‘리얼스틸’에는 음식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음식은 분명히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회복에 대한 특별한 영화, 리얼스틸



툭 내뱉은 말처럼 두 번 던져진 음식

  격투기 영화 ‘리얼스틸’(2011)은 사람이 아닌 로봇의 격투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격투기 영화와 다소 이질적이다. 영화는 머지않은 미래에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로봇 격투기와 그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아빠와 아들 간의 갈등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복서 출신으로 삼류가 된 아빠가 삶을 극복하는 과정이나 처음 만나는 아빠와의 관계에 익숙해져야 하는 아들의 갈등 해소를 다뤄가기 위해 영화는 많은 설정들을 한다. 시대가 지난 낡고 쓸모없는 로봇의 등장, 복싱 기대주 출신이었다는 아빠의 과거, 아들을 미끼로 금전적 흥정을 하는 아빠의 모습,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최첨단 로봇 제우스의 존재 등은 영화를 끌어가기 위한 성공적인 설정들이다. 

  이 영화에서 음식은 그런 설정 중 하나다. 오히려 다른 여타 설정들에 비해 힘이 떨어지는 아주 평범한 영화적 장치로 봐도 무방하다. 

  주인공인 찰리가 마시는 캔 맥주 외에는 딱히 제대로 된 먹을거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주인공의 대화 속에 딱 두 번 등장할 뿐, 보이지 않는 음식이 있다. 그것이 햄버거이다. 찰리와 아들 맥스와의 대화에 등장하는 햄버거는 그 실체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툭’ 내뱉는 말처럼 툭하니 던져진 상황일 뿐이다.  

  이렇듯 음식을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음식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의미 없는 단순한 제시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간단할 설정이 알아채기 쉽지는 않지만 아주 깊은 울림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 속 음식을 찾는 작업이 더욱더 재미있을 수 있다. 리얼스틸 속 햄버거는 그런 재미를 제공한다. 



아빠와 아들의 햄버거, 존재하는 거리감과 극복

  리얼스틸에서 햄버거는 아빠 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 같은 맥락을 가진 음식이다. 맥주 캔이 굴러다니는 트럭 안에서 생활하며, 로봇을 싣고 대륙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길 위의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살아온 그의 삶은 결국 공들여지고 잘 짜이고 계획적인 어떤 요소도 갖추지 못한 인스턴트 같은 삶이다. 인스턴트 삶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인스턴트식품, 그게 바로 햄버거다. 어쩌면 햄버거는 찰리의 삶 자체다. 그리고 햄버거를 던져주는 아빠는 아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인스턴트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 성장한 아들을 처음만 아빠는 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알지 못한다. 아들이 먹지 않는 햄버거를 건네 줄 뿐. 


 화면에는 한 번도 모습이 비치지 않는 햄버거. 그만큼 보지 않아도 이름만으로도 뻔한 음식, 앞 뒤 고민해보지 않아도 너무나 쉽게 예측이 가능한 찰리의 인생이다. 햄버거는 찰리를 대신해 맥스에게 던져지지만, 거부되어 곧바로 자기에게 돌아온다. 아빠로서의 아들 맥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거리감 느껴지는 찰리 자신과 같은 존재다. 햄버거는 찰리에게 아들 맥스와의 현실적인 거리감을 절감하게 하는 도구이다.  


  하지만 햄버거는 아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빠가 진짜 아빠로 거듭나기 위한 전환점에 존재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햄버거는 평생 길거리 인생을 살아온 아빠가 아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햄버거를 건넨 것은 아직은 낯설고 어색한 아빠로서의 역할에 대한 나름대로의 노력이 담겨 있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이 거절당했을 때 그는 아빠라는 존재감의 무게를  더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아들은 자신의 삶 속에 점점 더 확실한 존재로 자리 잡히게 된다. 햄버거는 찰리가 남자에서 아버지로의 삶의 전환을 가져가는 출발점에 위치하고 있다.

관계가 회복되어 가는 아빠와 아들, 햄버거 안먹는 아들에게 아빠가 건넨 것은 '브리또'였다.

  실제로 햄버거라는 단어가 두 번째로 등장하는 장면을 살펴보면 첫 번째 등장과는 사뭇 다르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로 툭 던져지는 봉지 속에는 햄버거가 아니라 ‘브리또’가 들어있다. 근사한 식사는 아니어도, 아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메뉴를 바꾼 것이다. 그가 아빠로서 아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햄버거의 소멸, 브리또의 등장으로 그려진다.     

  아들 맥스의 입장에서도 처음에 햄버거는 거부해야 할 대상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황당한 아빠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맥스에게 햄버거는 받아들이기 싫은 아빠이다. 하지만 햄버거인 줄 알고 거부의 뜻을 표시한 두 번째 상황 속에서 봉투 속의 브리또를 확인하고선 서서히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다른 곳에서 열린 마음이 이 브리또로도 표현되고 있다는 표현이 맞겠다. 맥스에게 아빠는 훌륭한 존재는 아니어도 적어도 단박에 거절하는 햄버거는 아닌 존재로 바뀌고 있다. 



  ‘리얼스틸’은 모든 것이 잘 버무려져 먹기 좋은 음식 같은 영화다. 미래의 소재를 다루면서도 전혀 미래적이지 않은 관계와 갈등의 이야기에 감동이 있다. 아빠와 아들, 남자와 여자, 그리고 격투기의 링 안에 오늘날 우리의 모습에 투영되는 쉬운 감동이 존재한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음식 ‘햄버거’는 이 영화를 더욱 맛깔나게 해주는 잘 드러나지 않는 첨가제다. 그래서 아빠와 아들 사이가 더 진하게 다가온다.  [영화 맛있다 / 강인석]

     

     

     

     

     

     "햄버거는 아버지 찰리와 아들 맥스 사이의 현실적인 거리감을 제대로  표현해주는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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