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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동문학가 강인석 Sep 12. 2017

평범한 삶에 대한 소망이 담긴
평범한 음식

‘푸른소금’의 ‘북엇국’

 영화는 늘 삶의 단면을 표현하기에 음식이 등장하는 것이 흔한 장면이겠지만, 어떤 영화에서는 음식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영화를 지탱하는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음식이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의미 부여되는 영화적 선택이 된다는 말이다. 송강호와 신세경이 주연한 영화 ‘푸른소금(2011)’을 조금 다른 세밀함으로 감상하다 보면 음식이라는 도구들이 꽤 큰 의미 덩어리를 만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푸른소금'은 평범한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는 영화다.

     


평범하지 않은 남과 여, 

평범한 소망을 담은 음식

  푸른소금은 어둑어둑한 영화의 분위기처럼 전체적으로 거친 영화다. 조직의 암투와 권력 싸움, 야합과 배신, 청부와 암살 등의 이야기들은 거친 남성들의 세계를 다룬다. 평범한 삶과는 동떨어진 거친 세상 속 거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는 그 세상에서 벗어나 평범함을 소망하는 두 사람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그 속에 음식이 있다.  

   평범하지 않은 세계에서 살아가다가 조직을 떠나 부산에 정착한 남자, 윤두헌(송강호). 더 이상 그들의 세계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어 식당을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요리를 배운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다. 요리도 녹록치  않지만, 조직의 상황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모든 상황의 중심에 그가 놓이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도 다른 사람들 것처럼 맛이 나지 않는 그의 요리 솜씨처럼 평범한 삶과는 여전히 거리감이 존재한다. 
   그녀 조세빈(신세경)도 평범한 삶은 아니다. 사격선수라는 과거를 갖고 뒷골목 양아치들에게 뜯기며 심부름하는, 그리고 어둠 속 킬러의 길을 걸어야 하는 그녀의 삶도 평범하지는 않다.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남자는 평범함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지만 그녀는 그와의 관계 속에서 평범한 행복을 꿈꾼다.


'조폭 이인자였던 그, 그를 죽여야 하는 킬러로 살아가는 그녀', 두 사람 모두 평범하지 않은 삶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이렇듯 평범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가 꿈꾸는 평범함에 대한 소망을 담아내는 도구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음식이다. 그가 요리학원을 다니는 것이나 음식을 배우는 소소한 과정에 집중하는 것은 모두 평범한 삶에 대한 소망을 담고 있다. 음식이야 어느 세계에 속해 있어도 먹을 수 있지만 그것을 준비하고, 만들고, 맛을 내고, 간을 보는 과정은 평범한 이들의 일상에서나 가능하다. 요리학원은 그런 평범함으로 가는 관문과도 같다. 어설프게 흉내만 내는 것에 불과해도 꿋꿋하게 요리학원을 나오는 것은 평범하게 살고 싶은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요리학원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선택이며, 거기서 끓이는 북엇국 역시 평범한 삶의 상징과도 같은 음식이다.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북엇국이다. 요리학원에서 그와 그녀가 교감을 시작하는 것도 북엇국을 끓이면서부터이고, 그를 찾아온 부하와 친구들에게 도미 라면을 내놓으면서도 북엇국을 끓여주지 못해 미안해한다. 그가 사는 오피스텔에 며칠 머무른 그녀가 끓인 것도 북엇국이다. 그녀가 떠난 빈 공간에서 식어버린 북엇국을 버리지 못하고, 데워 먹기도 한다.


  남자들에게 북엇국은 평범한 가정에서 얻을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을 의미한다.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은 아침, 식탁에서 만나는 아내의 북엇국은 행복 그 자체다. 시원한 국물과 개운한 뒷맛으로 텁텁한 아침 뱃속을 청소해 주는 느낌의 북엇국은 일에 지치고 사람에 시달리며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가장 소박하면서도 소중한 음식이다.

그는 여전히 거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후배들에게도 북엇국을 끓여준다. 

 평범한 삶을 꿈꾸는 그에게도 북엇국은 그가 얻고자 하는 평범하고 소박한 삶의 행복을 담고 있는 상징이다. 요리학원에서 자신과는 다른 맛을 내는 그녀의 북엇국을 처음 맛보았던 그에게 북엇국은 평범한 삶에 대한 1차 목표가 된다. 거친 세계에서 찾아온 후배와 친구에게 끓여주고 싶어 하는 것도 북엇국이고, 제대로 맛을 내보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것도 북엇국이다. 북엇국은 시늉이라도 좋을 만큼 그가 그렇게 바라던 평범한 삶의 대표 아이콘이다. 



     

남과 여, 

관계에 집중하게 하는 음식

  어두운 세계에서 시작한 푸른소금. 사람들도, 사건들도 그 세계 이야기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세계 이야기보다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조직의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영화적 재미는 반감되었지만, 음식의 역할을 더욱더 탄탄해진다.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음식은 두 사람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잘 감당한다. 요리 학원을 넘어서 그와 그녀가 처음으로 함께 음식을 먹었던 바닷가 셀프 해물탕집. 아무거나 집어서 알아서 끓여먹는 해물탕은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에 제시된 것과 달리 그들의 의지와 선택에 의해 바뀔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그리고 다시 찾은 해물탕집에서 그와 그녀는 제 각각 결심을 굳힌다. 또 달달한 것을 먹여야 한다며 처음으로 찾아간 커피 전문점에서 사간 카라멜 마키아토. 그녀를 위해 준비한 원피스만큼이나 어색하지만 둘의 관계는 그런 소소함으로 채워질 만큼 가깝고 평범해졌다. 

위험한 관계, 그것을 넘어서게 하는 힘이 이 영화 속에 흐르고 있다. 그것이 음식으로 나타나든, 풍경으로 보여지든, 그와 그녀는 평범이라는 이상향을 향해 나아간다.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역시 북엇국이다.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그녀가 끓여준 북엇국에 행복해하고, 습격을 받고 상처가 난 상황 속에서도 식어버린 그 북엇국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 다시 데워먹으면서 천진스럽게 “맛있지?”라고 물으며 웃는다. 


 “넌, 모르지? 네가 끓여준 북엇국이 얼마나 시원한지, 네가 요리할 때 얼마나 예쁜지.” 

잠든 그녀를 보며 그가 흘리는 독백. 그녀의 진짜 존재를 알았을 때도 그는 그녀를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진한 연민을 느낄 뿐이다. 결국 북엇국을 잘 끓이는 그녀는 평범한 삶으로 가는 비상구였다. 그녀의 존재가 킬러라도 그녀를 놓치면 그 소박한 꿈마저 놓칠 것 같으니까.  [영화가 맛있다/강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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