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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동문학가 강인석 Sep 13. 2017

일상,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정한 가치

‘소림축구’의 ‘만두’

  주성치의 영화에는 독특한 색깔이 있다. 홍콩영화의 인기가 좀처럼 회복될 기색이 보이지 않지만 소위 ‘주성치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그의 영화는 여전히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소림축구’는 너무 유치해서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영화라는 기분 나쁜 평을 듣기도 하지만, 주성치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다. 소림 쿵후와 축구의 황당한 만남, 이 영화에도 음식은 있다. 


엉뚱한 상상과 황당한 이야기, 주성치 영화의 매력을 보여주는 소림축구


  황당하고 뻔한 이야기 속  ‘만두’

  소림축구는 황당한 전개와 함께 뻔한 이야기 구조를 갖는다. 소림 무공을 생활 속에 접목시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자 하는 주인공 씽씽(주성치)은 절룩거리는 다리로 퇴물 취급받는 왕년의 스타플레이어 황금발 명봉을 만나고, 축구와 소림무공을 결합한 소림축구팀을 만들게 된다. 전국 축구대회 우승을 향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들에게 어김없이 등장하는 악의 세력이 있었으니. 축구협회 위원장 강웅, 그는 약물로 사이보그 수준까지 업그레이드된 악마팀으로 소림 후예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이 황당한 영화 속에서 음식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은 아니지만, 영화 속 에피소드로 무시할 수 없는 깊은 의미를 갖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 중 눈에 띄는 것은 ‘만두’,  하나밖에 없다.

구박을 받아가며 만두를 빚는 소녀 아매, 만두는 아매와 씽씽의 연결고리다. 그녀의 심리를 읽을 수 있는 기호이기도 하다. 

  만두는 우선 주인공과 여인, 두 사람을 이어주는 매파 역할을 한다. 골목 어귀에서 만두를 만드는 초라한 소녀 ‘아매’(조미)와 씽씽의 만남은 시끄럽고 요란한 에피소드들 속에서 가장 이질적이다. 태극권을 이용해 만두를 만드는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씽씽은 만두를 매개로 인연을 시작한다. 그가 집어먹은 만두와 부족한 50센트, 그리고 다 떨어진 운동화로 이어지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또한 만두는 씽씽에게 아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기호이기도 하다. 아매에게 ‘영원한 친구’라는 말로 마음을 아프게 했던 씽씽은 얼마 후 만두집을 찾아가 그녀가 그만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가 만든 짜고 쓴 만두를 먹고 씽씽은 눈물이 섞여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가 느꼈을 슬픔을 알아낸다. 만두만으로 그는 그녀의 감정 상태를 읽어내고, 그 감정에 반응할 수 있게 될 정도로 만두는 교감의 도구가 되어 있다.  



  만두의 평범함 속에 힘이 있다

   만두의 의미는 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만두는 권선징악의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악을 이길 수 있는 약자들의 힘의 근원이 바로 평범함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이콘이다. 특별한 초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우리에게 진정한 힘이 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일상의 평범함 속에 숨어 있다. 그 가치가 만두에 담겨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두 가게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이들의 삶은 평범해도 제각각 의미가 있다. 

  소림축구에 등장하는 만두는 우리나라의 만두와는 완전히 다르다. 만두는 중국어로 ‘만토우’라고 하는데, 속이 없는 찐빵 모양으로 밀가루를 얇게 여러 번 겹쳐서 쪄낸 음식이다.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에서 나오는 ‘꽃빵’과 거의 비슷하다. 이 만두(만토우)는 중국사람들에게 쌀밥과도 같은 음식이다. 우리가 쌀밥을 먹듯이 그들은 만두를 여러 다른 음식과 함께 먹는다. 그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이렇듯 가장 평범한 음식인 만두에 힘이 있다. 꿈을 잃어버렸던 사람들로 하여금 노래하고, 춤을 추게 만든다. 만두가게 앞에서 모든 행인들이 함께 모여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것은 바로 가장 평범한 음식, 귀하지는 않지만 식사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음식인 만두가 그들의 꿈을 다시 깨워주고, 자신들의 삶의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정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만난 가장 큰 위기 속에서 소림축구단을 구한 것도 만두를 빚었던 아매의 손길이다. 골키퍼가 두 명이나 경기장을 떠나고 난 뒤 몰수패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등장한 아매. 그녀는 모두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대포와도 같은 상대의 슛을 태극권의 원리로 무마시킨다. 만두를 빚던 그 손이다. 씽씽의 강철 다리나 철두공, 철사장 등의 특별한 무술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만두를 빚던 연약한 그녀의 손끝에서 문제가 해결된다. 

만두를 빚던 평범한 그녀의 손이, 말도 안되는 위기를 극복하는 해결책이 된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의 수많은 장벽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일상 속에 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항상 거대한 벽처럼 존재하는 불합리와 부조리를 뚫고 나갈 가능성도 길거리에서 편하게 만들고, 밥처럼 먹는 만두와 같이 일상 속에 존재한다. 우리가 삶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림축구는 비현실적인 소재로 구성된 영화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사실적인 설정에 매력이 있다. 장면과 에피소드들의 비현실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아주 간결한 대립 구도인 선과 악, 착함과 나쁨은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기본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주성치는 아주 간단한 구도로 간단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너무 분명한 구도 속에서 결국 권선징악의 결론을 내린다. 약자들의 힘으로. 거기에 웃음이 있다. 살만한 세상.   [영화가 맛있다 / 강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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