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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동문학가 강인석 Sep 14. 2017

희망 범벅,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4월 이야기’의  ‘카레’

  ‘러브레터’의 감독 이와이 슌지의 또 다른 영화 ‘4월 이야기(1998)’는 가벼운 단막극 같은 영화다. 러브레터와 같이 풍성한 로맨스도 없고 깊은 상징도 찾아보기 어렵다. 소소한 에피소드의 흐름으로 만들어지는 단순한 구조만이 존재한다.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들춰보는 듯 가벼운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감정은 소중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벚꽃 날리는 4월의 도쿄 변두리에서 펼쳐지는 맑디맑은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음식을 만나보자.


짧은 단막극 같은 영화. 여운이 남는 멋진 영화, 4월 이야기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여자의 일기장 같은 영화이다. 


  서툴지만 꿋꿋하게

  낯선 공간 낯선 관계들

  그녀는 낯선 도시에 홀로 던져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인근의 대학으로 진학하는 ‘니레노 우츠키’는 방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짐 더미와 함께 낯선 공간에 남겨졌다. 그녀를 반기는 것은 비처럼 떨어지는 벚꽃밖에 없다. 짐을 싣고 온 버스가 떠난 자리에는 그녀만 남아있을 뿐, 아무도 없다. 낯선 공간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낯선 공간, 낯선 관계 속에 던져진 우츠키. 쉬운 것은 없다.

  공간만큼이나 사람들도 낯설다. 같은 과 친구들과의 첫 만남도 어색하고, 다른 사람들은 쉽게 넘어가는 자기소개에서 우츠키만 힘겹다. 북쪽 지역인 홋카이도에서는 익숙한 사월의 스웨터도 친구들에겐 이질적인 요소로 다가간다. 유일하게 그녀에게 다가온 친구인 ‘소노 사에코’도 평범하진 않다. 친구지만 뭔가 가깝지 않은 관계가 지속되고, 그 사에코 때문에 얼떨결에 가입하게 동아리도 생소하기만 한 플라잉 낚시 동아리. 이렇듯 낯선 공간과 낯선 관계들 속에서 혼자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녹록잖아 보인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낯선 공간, 낯선 관계들은 우츠키가 바라보며 찾아 나선 사랑에 막막함을 더한다. ‘그’는 자신을 알지도 못하는데, 그가 진학한 대학을 선택하고, 그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하고, 그리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를 찾아온 그녀. 원래도 막연한 그녀의 사랑을 더욱더 가능성 없도록 느껴지게 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곳에서 만난 ‘낯섦’이다.



  사랑의 가능성으로 돌아서는 전환점, 카레 

  낯선 환경에서 삶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녀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그녀의 사랑 ‘야마자키’ 선배를 찾는 일이다. 선배가 일한다는 소문만 갖고서 물어물어 찾아간 무사시노 서점. 아쉽게도 선배는 없다. 막연한 기대만으로 동경까지 찾아왔건만 선배를 만날 수 없다. 그녀의 사랑은 여전히 낯섦 속에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사랑 야마자키 선배를 찾는 우츠키. 서점에서 서성이는 그녀의 사랑은 풋풋하다. 

  두 번째 서점을 찾았을 때 그녀 앞에 나타난 선배, 하지만 선배가 그녀를 알아보지를 못한다. 당연한 이치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앞에 두고 돌아설 수밖에 없다. 사랑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선배와 이 낯선 공간 속에서 어떻게 사랑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선배도 역시 낯선 사람 중 한 명일 뿐인 것을. 


선배는 그녀를 잘 기억못하지만.... 가능성은??

  이런 상황 속에서 등장하는 것이 카레다. 선배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그날, 그녀는 카레를 만들어 앞집 문을 두드린다. “카레 같이 드실래요?” 이사 온 첫날 관계 맺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앞집 여인에게 다시 한번 더 다가간 것이다. 한 번의 거절 후 그 여인은 우츠키의 카레를 받아들인다. 처음으로 관계 맺기에 성공한 것은 다름 아닌 카레 덕분이다. 

  어찌 보면 앞집 여인은 우츠키에게 앞으로 펼쳐질 사랑의 성패, 혹은 관계의 성패 여부를 짐작케 하는 아이콘과도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낯선 도시 속에서 그녀와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앞집 여인. 어둠 속 철문 너머에 존재하는 그 여인과의 어색한 관계는 우츠키에게 미래의 불분명함으로 다가갔었다. 그런 그 여인과 카레를 전환점으로 관계 맺기에 성공한 것은 불분명한 상황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늘 혼자 먹던 식탁에 카레가 올라오고, 우츠키는 옆집과의 관계를 여는 것부터 시작한다. 카레는 관계가 열리는 가능성의 시작이다.


  야마자키 선배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어도 이제 우츠키는 낙심하지 않을 수 있다. 카레가 만들어준 새로운 가능성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감자와 양파, 돼지고기와 여러 재료들이 버무려진 카레는 이제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과 막연한 사랑에 대한 불확실성을 깨고 희망을 갖게 하는 전환점이다. 희망 범벅. 그래서 그녀는 ‘다 잘 될 거야’라는 사랑의 희망을 갖고 선배가 일하는 서점을 다시 찾는다. 


  4월은 푸른 5월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꽃이 지고, 어수선한 풍경들이 지나고 나면 눈부시게 푸른 신록이 찾아온다. 4월 이야기는 분명 5월이 되면 신록으로 푸를 것이라는 것을 예고한다. 카레는 4월을 지나 낯선 시간을 넘어서면 5월, 희망으로 푸른 시간들이 펼쳐질 것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우츠키가 만날 푸른 5월에는 야마자키 선배와의 관계도 푸르지 않을까?   [영화가 맛있다 / 강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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