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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가족보다 가족같은 여자 둘의 망원동 공생기

나오긴 쉽지만 다시 들어갈 순 없을 것. 수도권이나 서울에 본가를 두고 서울 등지에서 혼자 살고 있는 자취인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봄직 하다. 왜? 다시 본가로 들어갈 수 있다는 선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가족은 좋을 땐 '역시 가족'이지만, 나쁠 땐 남보다 못한 때도 부지기수다. 일례로, 내가 자취를 결심한 이유는 머리가 긴 내가 샤워 후 화장실 벽에 조금(많이) 튀긴 물 자국에 버럭 짜증을 낸 아빠와 크게 다툰 일이었다. 아빠와 세심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나는 튄 물을 조신하게 닦고 아부지가 편하게 욕실을 이용할 수 있게 배려했겠으나, 생활 방식이 다른 개인의 삶을 부드럽게 녹여내지 못한다는 우리 아빠의 집 안에서 나는 편히 숨 쉴 곳을 찾지 못했다. 이후로 5년 여의 자취를 이어가는 나는 그렇다. 


자취 1년차는 마냥 설레임, 2년차는 생활 설계, 3년차는 안정, 4년차부터는 은근한 외로움이 빼곡 고개를 든다. 친구들을 초대했다가 모두가 떠나버리면 빈 자리가 그리 클 수가 없다. 자취중인 다른 이들과 셰어 하우스로 같이 살아볼까 생각도 하지만 누군가와 같이 일상을 나누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빠와의 욕실 대첩을 거친 나는 바로 그 생각을 고이 고이 접는다. 게다가 이미 견고하게 자리잡은 나만의 생활에 누군가를 포함한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이 힘들다. 샤워 타올의 거친 정도부터 설거지와 걸레질의 빈도, 생수의 종류 등 생각보다 개인의 작은 취향은 생활에서 그 발자욱이 짙다. 하물며 하루 이틀 묵고 가는 연인과의 일상으로도 나의 생활은 너무나도 크게 달라지는데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건 적응에 얼마나 큰 힘이 들어갈까.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통상적인 연인 둘의 동거 스토리가 아닌 인간 둘로서 서로에게 느낀 매력과 함께 살게 된 계기, 각기 다른 성격과 면면을 한 아젠다로서 어떤 시선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가를 두 작가가 돌아가며 쓴 수필집. 연인의 업 특성상 데이트보다도 함께 '생활'을 나누는 나의 현재 상황에서는 특히나 공감할만한 앵글이 많았다. 누군가가 무엇을 못하면 잘하는 누군가가 보완해주는 서로 다른 성격이 이끌어내는 상호 보완 시스템. 취향의 일치가 이끌어내는 소프트웨어적 장점! 싸우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두 작가가 만들어내는 가히 완벽에 가까운 삶의 조화는 혼자 살면서 외로움은 드럽게 많이 타는(나와 같은) 1인 가구 동지여러분에겐 가히 동경에 가까운 일상일 것. 40대 유명 작가와 주류 매거진의 피쳐 디렉터 둘이 망원동의 다소 비싼(!) 아파트에서 시작해 주변의 흔치 않은 아티스트, 프리랜서 지인들과 나누는 일상이라는 배경이라는 통상적이지 않은 이 '소설적 요소'는 이 책의 매력을 한껏 고조시킨다.


40대의 멋스러운 미혼 여성 둘이 이루는 더블 라이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떤 가족>처럼 점점 더 세분화되는 현대 사회의 가족 구성과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사회가 권하는 일반적 가족 구성원이 무조건 행복과 닿아있거나 옳은 무언가가 아니며, 개인 단위의 필요로부터 일궈진 통상적이지 않은 형태의 공동체가 일반적인 가족보다 더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춘다. 책의 초반부터 중반부까지는 일상의 매력적인 면면을 보여주다 후반부로 향하며 서로가 느낀 '가족'적 요소와 그 유대감으로 깊이있게 집중하는 플로우는 이 책의 완결성을 더욱 높여준 가장 큰 요소일 것. (예측컨대 흔히 '대작가의 실력에 반하지 않으면 아무리 연륜이 깊어도 될 수 없다'는 매거진 피쳐 디렉터를 지낸 황선우 작가의 능력이 큰 빛을 발하진 않았을까)


어쩌면 가까이에 결혼을 둘 수도 있고, 친근한 누군가와 삶을 같이 할 수도 있는 30대 초반 나의 나이에는 고작 1~2년 후의 내 생활은 어떤 모양일까 상상하기가 다소 어렵다. 특히 나도 모르게 홀로인 생활에 익숙해지는 자취 5년차 무렵, 함께 생활을 나누는 '가족'의 관계적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이 책과의 시간은 꽤나 유의미하다. 쓸데 없는 생각이지만, 만일 대학 시절의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욕실에 물이 많이 튀었다며 역정을 낸 우리 아빠에게 난 어떤 마음이었고 어떤 말을 했을까 돌이켜보게 된다. (물론 집은 나왔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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