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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십분의 일을 냅니다>

뿌리는 단단하게 컨셉은 애자일하게

요즘 일을 하면서 스토리를 품지 못한 브랜드는 돈을 쏟지 않으면 쉽게 좌초된다는 점을 크게 느낀다. 역사가 없는데 역사적이라고 하거나, 소비자에게 워킹할 RTB보다 크게 매력적이지 않은 USP에 집착하며 멋진 브랜딩이라고 위시하거나. 마케터와 사업기획이 쉽게 범하는 실수다. 새로 만들어지는 브랜드는 기업이 원하는 방향과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이 접점을 만나면서 윤곽이 잡힌다. 내가 브랜드라고 해도 고객은 브랜드라고 인지하지 못하거나, 고객은 원하나 브랜딩이 그 속도나 방향을 따라가지 못한다거나. 연애부터 사업까지 타이밍의 문제는 아주 집요하고 중요하다. 


와인바 십분의 일은 사업의 방향이 명확하다. 통상 오프라인 업장에서 와인의 바틀 가격이 쓸데없이 비싼 우리 나라에서 와인의 맛과 분위기를 사랑해 마시고픈 소비자들이 잔술로 마셔 가격을 가성비있게 만들겠다는 접근이었다. 유통은 오프라인, 제품은 와인, 가격은 싸게, 프로모션은 을지로의 인스타그래머블한 플레이스. 이보다 명쾌할 수 없는 접근이다. 


모든 비즈니스 요소를 심플하게 다듬어둔 토대에서 필자와 함께 의기투합(?)한 이들 무리는 '망해도 폭삭 망했다고 느끼지 않을' 비용을 운영자금으로 모은다. 각 월급의 1/10, 비로소 10분의 1이라는 이름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힙이 물든 을지로 위 십분의 일은 올드스쿨과 빈티지, 모던이 짬뽕으로 뒤섞인 독특한 고유의 컨셉의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그 공간은 점차 전례없이 성장한다. 매번 퇴근길에 들러도 긴 줄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그 정도의 높은 인기. 


신사업의 마케터로 일하는 건 작은 스타트업의 사업을 기획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마케팅 활동을 통해 취합된 소비자의 보이스는 추후 사업방향의 지표가 되기도 하고 근간을 흔드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시시각각 바뀌는 는 세상에서 브랜드의 중심에는 흔들리지 않는 핵심 가치가 필요하다. 소비자가 원하는 무언가를 어떻게 제공하겠다는 것. 공급자 사이드가 아니라 소비자가 느끼는 빈 공간이나 +의 영역을 채워줄 재화와 서비스나 플랫폼이나 뭔가를 공급해어떤 베네핏을 느끼게 하겠다. 멋진 언어나 쓸데없는 컨셉은 쉽게 핵심을 가린다. 브랜딩의 본질은 안 멋진 몇가지 단어로 정리되고, 별로 안 멋지고 안 힙한 그 단어들은 사업에 속한 무리가 오해하지 않도록 묶어줄 단단한 고리가 된다는 것. <십분의 일을 냅니다>를 읽은 감상과 리브랜딩으로 일이 많아 삭신이 다 쑤신 요즘의 푸념이 적절히 얽혀 만들어낸 결론이다. 




(*) 완전 사족 : 업무를 보면서 정말 수만가지 직종의 사람들을 만나는데, 확실히 PD출신으로 무언가를 하는 이들은 시각의 너비나 통찰력이 아주 남다르다. 아니나다를까 십분의일 사장님 또한 PD 출신이다. (이렇게 특정 직종에 대한 편견이 생기고 있다!) 매번 줄 서다 실패해 무척 짜증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꼭 가보고싶은 참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진 업장이다. #나따위가뭐라고평가좀하자면


(*) 완전 사족2 : 나도 자영업으로 가성비 위스키바 하고싶다고 남자친구에게 말했더니, 남자친구가 눈에 불을켜고 반대한다. 니가 그 술 다 먹을거 아니냐며. 솔직히 그 마음이 가장 크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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