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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칸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 말을 건넸었다. 


'난 삶 속 모든 순간을 온 몸으로 느껴 매번 소름이 돋았으면 좋겠어. 

기억들은 또렷하지만, 현재는 항상 내게 아득하거든.'


언제까지일지 모를 내 삶과 시간, 그리고 지금의 젊음이 나는 벌써 그리웠다. 그래서 짤막한 삶의 궤적이 모두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백은 무의미하며, 모든 순간들은 그 빛과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잠시 혼자 시간을 가졌던 지난 달의 북해도 여행에서 나는 나와 주변과 지난 관계와, 잊혀진 사람들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꼭 차 있는 관계도 달처럼 그 정도가 변하고, 결국에 여백이 생기기 마련이거늘 나는 왜 보름달같이 꼭 들어찬 감정에만 몰두했을까, 어찌하여 그것이 그리도 간절했던가 생각했다. 내가 보름달일 때 너는 초승달, 혹은 다른 모양의 달일 수 있었고, 초승달인 네가 보름달이 되기까진 밤 하늘을 우러러보며 긴 기다림이 필요할텐데.


읽어 이해하고 마음을 내킬 수 있을 정도의 빈 칸, 그리고 우리의 시간 안에 상대가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두기에는 얼마만큼의 거리와 시간이 필요한지 고민한다. 소중한 관계라면 어디에서건 여백이 필요하고, 그것을 건너뛸 경우 훨씬 공허한 빈 칸이 언제건 관계 속에 놓여지게 되더라-그것이 한 쪽에게 아픈 시간일 때, 상처가 되고 극적인 마지막을 만들기도 한다. 


사람을 만나고, 다리가 되어 양쪽을 설득하고 꾀어 나가는 일을 하면서 내게 관계는 더욱 심각한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 관계는 늘 어렵고 복잡하다. 누구든 내게는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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