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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배 Sep 08. 2019

죽음 앞의 정신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中에서   - 2016.12.21.



작년 가을 우연히 뇌종양을 발견하고 겨울에 수술을 했다. 그리고 친한 선배들의 잇달은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죽음이 멀리 떨어진 무엇이 아니며 우리 자신의 삶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 어느날 예기치 않게 느닷없이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      *      *


엊그제 1년 만에 주치의로부터 수술 경과에 대해 들었다. 나쁜 결과를 전해 듣게 되더라도 당황하지 않으려고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이왕이면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단다. 앞으로도 매년 1회씩 MRI 촬영해서 비교하면서 5년을 더 추적검사한 후 이상이 없어야 완치 판단이 내려진단다.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하며, 평생 술 담배를 금해야 한단다. 그렇게 긴 시간을 조신하게 보내야 한다. 그럼에도 첫 번째 검사 결과가 나쁘지 않다니 기분좋고 감사한 일이다. 


*      *      *


" 인간이 제거할 수 없는 장애물 가운데서도 최종적이고도 절대적인 것은 운명과 죽음입니다. 특히 죽음은 정신의 크기를 검증하는 마지막 장애물입니다. 고통스런 한계 앞에 마주서지 않을 때 정신은 얼마든지 허세를 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고통에 직면하면 오직 참으로 가치있는 것들만이 자기를 지킬 수 있습니다. 죽음은, 어떤 것을 지키기 위해 감당해야 할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켜야 할 만큼 가치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마지막 시금석입니다.


허약한 정신은 죽음 앞에 서면 그가 지녀왔던 모든 고귀한 가치들을 미련없이 팽개쳐버리겠지만, 참으로 위대한 정신은 바로 그 순간에 자기가 믿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차라리 하나뿐인 생명을 포기하는 것입니다......5.18 광주항쟁에서 마지막 순간에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의 총에 죽어갔던 사람들은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가 목숨보다 더 크고 소중한 것이었음을 죽음으로 증명했습니다.


*      *      *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수술을 받고, 1년을 기다려 의사로부터 첫 수술경과에 대해 듣고 난 소회를 쓰다보니 문득 이 대목이 생각났다. 올해 동네 부모독서모임 마지막 책, 김상봉 교수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얼마 전 읽었던 앙드레 말로의 <인간 조건>이란 소설 속 기요, 카토프, 첸과 같은 인물들도 생각났다.

그들은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에겐 어떤 것들이 내 목숨보다 더 크고 소중한 가치들일까? 죽음 앞에 섰을 때의 나의 정신적 크기는 얼마만큼 될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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