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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 없는 자 Mar 02. 2022

마음대로 골라보는 GOTY 2021

메트로이드 드레드(Metroid Dread) 분석 및 감상

실기 플레이 난이도 - 노멀(1회차), 하드(2회차)

아이템 수집률 100%


2022년 2월 10일에 DLC로 업데이트된 드레드 모드는 아직 클리어하지 못했습니다. 잠깐 언급은 하겠지만 주로 하드 난이도를 기준으로 삼은 글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처음에는 비평을 해보려 했지만 써놓고 보니 비평이라기보다는 디자인 분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분석 및 감상으로 바꿨습니다.

앞으로 올해의 게임 분석은 3월 초쯤 올라올 거 같습니다. 12~1월에 쓰기에는 게임을 충분히 플레이해보고 분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연말에 발매되는 게임도 있으니까요.

이 글 이후로는 하반기 메인 콘텐츠를 시작하기 전까지 한동안 짧은 글 위주로 쓸 것 같습니다.


메트로바니아는 왜 인기가 있는가?


남녀노소 누구나 게임을 하는 시대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71.3%가 게임을 하는 추세이며, 남녀 간 게임 이용자 수의 비중도 50.7/49.3%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연령대별 비중으로 보았을 때 여전히 10~30대가 제일 많이 하는 추세이기는 하나, 50대 게임 이용자 수의 비중도 57.1%를 차지하는 등 무시 못할 이용률을 보인다. 이제 게임은 전국민적인 취미가 되었으며, 더 이상 마이너 문화가 아니다.


하지만 플랫폼별 플레이어의 비중은 다소 편중된 측면이 있다. 우선 전체 플레이어 중 모바일 게임 플레이어의 비중이 90.9%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PC는 57.6%, 콘솔은 21.0%에 그쳤다(모바일/PC 복수 체크가 가능한 형식이므로 이런 결과가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선호하는 게임 판매 형식을 보면, 특정 플랫폼에 편중된 비중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무료로 제공되고, 아이템을 유료로 파는 형식을 선호하는 플레이어의 비중이 60.7%인 반면에, 게임 소프트웨어는 유료로 제공되고, 아이템은 유료로 제공하지 않는 방식을 선호하는 플레이어의 비중은 17.7%에 그쳤다. 이러한 통계가 말해주는 것은,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상당수가 부분 유료 방식의 모바일 내지는 PVP/온라인 게임 플레이어라는 뜻이다. PC든 콘솔이든 유료로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야 하는 패키지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비중은 여전히 많지 않다. 한국만 이런 게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전체 게임 산업 수익(industry’s total revenue)은 Free to Play라는 부분 유료 게임에서 무려 85%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데다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비디오 게임 5개가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 GTA 5, 원신, 콜 오브 듀티:워존으로, 모바일이거나 전부 온라인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들이다. 비디오 게임의 주류는 명백히 온라인/PVP/모바일 게임이지, 패키지 게임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결정적인 근거다.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려고 콘솔이나 컴퓨터를 따로 구입하는 사람인 순간, 소수자에 속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패키지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수가 여전히 소수자적 취미라는 사실을 감안하자. 그럼에도 대중에게 꾸준히 어필하는 게임들이 있다. 락스타의 <레드 데드 리뎀션> 시리즈처럼 AAA 게임에서 유행하는 영화 같은 게임들이라든지, 광대한 월드 속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다양한 상호작용을 즐길 수 있는 베데스다의 <엘더스크롤>, 플랫포밍 게임의 영원한 고전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2010년도에 도전의 가치를 되살린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 소울> 시리즈 등 여러 명작 게임들은 '상대적' 소수에 불과한 패키지 시장에서도 수천만장 이상을 거뜬히 팔아치우며 대중적인 게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온라인/PVP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패키지 게임 특유의 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 시장의 대세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방하고 있다고 하겠다.


메트로이드바니아, 줄여서 메트로바니아각1)라는 장르도 패키지 게임 내에서 마니악해 보이면서도 나름의 위치를 공고히 한 장르 중 하나다. 패키지 게임 중에서도 미로처럼 꼬인 레벨 디자인으로 인해 길 찾기에 어려움을 겪는 플레이어에게 어필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고 있으나, 반대로 이만큼 탐색의 맛을 잘 살린 게임도 드물기 때문이다. 장르적 특성으로 인해 던전 크롤러(던전 크롤러 중에서도 로그라이크 장르 같은 절차적 생성을 도입한 게임들은 제외한다. 위저드리 같은 고정된 레벨의 디자인을 가진 게임으로 한정)와 더불어 그 어떤 게임들보다도 심혈을 기울인 레벨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레벨 속에서 게임을 진행함에 따라 새로운 능력을 얻고, 해금된 능력으로 인해 이전에는 갈 수 없었던 새로운 지역을 탐험할 수 있는 재미도 인기를 얻는 요인 중 하나다. 처음에는 막막하지만 얽힌 길들을 천천히 찾아가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머릿속에 밝혀지는 광명은 장르의 팬들이 게임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다. 현세대 게임들 중에서 미지의 공간을 탐색한다는 측면에서 이 장르를 따라올만한 게임 장르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거기에 더해서 다양한 플랫포밍과 액션 게임으로서의 특성도 더해진다. 그래서 장르의 원류를 만들어낸 닌텐도나 코나미에서는 메트로바니아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탐색형 액션 게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메트로바니아라는 장르는 두 가지 중심축을 갖는다. 탐험과 액션이다. 본 글에서도 주로 분석하고 평가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 두 가지 요소다. 다른 영역도 언급을 하기는 하겠지만, 위 장르의 핵심 요소라고 보기에는 어려우므로 그다지 비중을 둘 생각은 없다. 본문은 주로 비교분석의 방법을 택하고자 한다. 작품이 성취한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기존에 이 장르에서 추구하던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이는 기존 작품과의 비교분석을 통해서 전달하는 게 용이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 장르의 창시자이자 메트로바니아 팬들의 영원한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슈퍼 메트로이드(1994)>(이하 슈퍼), 이번 분석의 대상인 <메트로이드 드레드(2021)>(이하 드레드)의 개발사가 만들었던 바로 이전의 작품, <메트로이드 사무스 리턴즈(2017)>(이하 리턴즈)를 주 비교 대상으로 삼되, 다른 작품도 조금씩은 언급해볼 생각이다. 비교분석을 통해 이 장르에서 추구하는 두 가지 가치를 드레드가 얼마나 잘 구축해놓았는지 분석하는 게 본 글의 목표다.


비선형 속의 선형, 선형 속의 비선형


메트로바니아에는 한 가지 딜레마가 있다. 길 찾기라는 딜레마다. 메트로바니아는 던전을 탐험하는 게임이고 던전은 미로(maze)다. 미로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플레이어는 미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경로 중 어떤 경로로 들어가야 미로를 탈출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탐색을 하다가 자신의 경로가 잘못되었거나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탈출할 수 없다는 걸 안다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서 재차 경로를 선택해야 한다. 이 행위를 '백트래킹'이라고 부른다.


백트래킹은 비선형적 경로 탐색을 추구하는 게임이라면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장르적 특성이다. 하지만 해당 장르의 팬이나 마니아들을 제외하면 왔던 길을 재차 반복하여 왔다 갔다 하는 경험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백트래킹을 통한 맵 밝히기, 길 헤매는 과정을 콘텐츠로 인식할 수 있고,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길을 찾는 행위가 탐색이 아니라 그저 플레이 타임 늘리기용 노동의 과정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탐험할 수 있는 던전의 넓이가 넓어질수록 백트래킹의 과정은 점차 늘어난다. 이 딜레마도 점점 커진다. 백트래킹이 장르의 특성인 동시에 입문자들을 가로막는 진입장벽으로서의 역할을 해온 이유다.


이 장르의 원조이자 맏형인 드레드 역시도 이 딜레마를 마주하고 있었다. 메트로바니아라는 장르의 입문자들을 고려하면서도, 기존 장르 팬들이 원하는 탐험 요소 역시도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난제다. 이 둘 사이에서 얼마나 줄타기를 잘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메트로이드 드레드의 전체 지도


드레드의 던전은 거대하다. 역대 메트로이드 시리즈 전부와 비교해도 최고 수준이다. 광대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던전은 플레이어에게 끊임없는 비선형적 탐험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메트로이드 퓨전(2002)>처럼 아담이 어디로 가라고 지시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가끔 있기는 하다), <메트로이드 제로 미션(2004)>처럼 대놓고 마커를 찍어주지도 않는다. 던전의 크기는 넓고 알려주는 정보는 적으니 언뜻 비선형 탐색 게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도에서 드러나는 모습과 달리 플레이어가 다닐 수 있는 경로는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방금 지나간 길인데 특정 능력이 없으면 다시 지나갈 수 없게 막아버린다든지, 깊은 물속에 빠뜨려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게 만든다든지와 같은 식이다. 드레드는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플레이어를 던전 내부의 아주 한정된 공간 안에 가둔다. 플레이어를 완전히 풀어주고 자유로운 탐험을 가능케 하는 시기는 최종 보스의 바로 전에 해당하는 보스인 황금 조인족 병사 직전이다.


한랭화 현상 이후 플레이어가 '일반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전체 던전의 범위.


한랭화 현상 이후 아르타리아 지역에서 탐험 가능한 범위


한랭화 현상 이후 카타리스 지역에서 탐험 가능한 범위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보자. 게임 중후반부쯤 들어서면 행성 ZDR이 한랭화 현상으로 인해 던전 곳곳이 얼어붙는 경우가 생긴다. 아담이 플레이어에게 월드 내부 한랭화 현상의 원인에는 카타리스 안에 있는 강력한 'X'가 존재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 녀석을 처리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아담의 지령 이후에 플레이어가 탐험할 수 있는 월드는 전체 던전에서 위의 사진과 같이 표기된 범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다른 장소는 갈 수 없게 플레이어의 경로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드레드가 비선형적으로 던전을 탐험하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극히 선형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던전 자체의 크기는 넓지만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플레이할 때 실제로 탐험할 수 있는 범위는 개발사가 정해준 범위 내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이는 내러티브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택의 환상'과 유사한 효과를 갖는다각4). 게임 내에서 수많은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의미 있는 선택지는 주지 않고 한 가지 정해진 시나리오로 흘러가는 것처럼, 드레드의 던전 역시도 디자이너가 의도한 하나의 길만 갈 수 있게 만든다. 비선형 속의 선형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러한 드레드의 레벨 디자인은 메트로바니아라는 장르의 입문자들을 위한 디자인이다. 메트로바니아라는 장르 특성상 백트래킹을 반복하다 보면 이동의 거리가 매우 길어지고 길 찾기가 난해해지기 마련이지만, 처음부터 탐험할 수 있는 공간을 한정시켜 놓음으로써 인위적으로 백트래킹을 막아버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한 각종 숏컷(지름길), 텔레포트 존 등을 플레이어의 경로 곳곳에 설치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덕분에 드레드는 시리즈 전체에서 손꼽힐 만큼 길 찾기가 쉬운 게임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레벨 디자인은 미지의 공간을 스스로의 힘으로 탐색하며 자신만의 루트를 만들어내는 비선형적 탐험을 바랐던 기존 장르 팬들에게는 마이너스가 된다. 드레드를 접한 일부 메트로바니아 플레이어들이 '메트로이드는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라고 들었는데 드레드는 아니었다'는 식의 볼멘소리가 종종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드레드가 그저 디자이너가 배치해둔 선형적 경로만 따라가는 게임이었다면 지금만큼 고평가를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머큐리 스팀은 장르 팬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장르 입문자들을 위해 타협을 했을지언정 이 장르를 파고드는 팬들에게도 메리트를 주고자 노력했다. 여기서 시퀀스 브레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시퀀스 브레이크란, 게임 내에서 정해진 순서를 플레이어의 역량에 따라 일부 스킵하거나 우회하는 테크닉을 뜻한다. 메트로이드 드레드는 게임 구조적으로 시퀀스 브레이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가령 카타리스의 보스 크레이드를 상대할 때, 디자이너가 고안해놓은 일반적인 루트대로라면 '봄'어빌리티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크레이드를 상대하게 되지만, 숨겨진 루트를 찾아내어 그래플 빔과 봄 어빌리티를 얻으면 크레이드와의 보스전 2 페이즈를 통째로 스킵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전용 컷신까지 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보스를 스킵하는 경우도 다수다. 현 스피드러너들의 플레이 동영상을 보다 보면, 크레이드뿐만 아니라 드로기가, 실험체 Z-57 같은 메인 보스들마저 다수 패스하는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구석진 곳에 숨겨진 경로가 있다. 샤인 스파크+모프볼 상태에서 조그마한 틈새로 들어갈 수 있다
숨겨진 경로를 찾아낸 이후 스크류 어택을 얻기까지의 경로. 플레이어의 탐색 범위가 기존보다 훨씬 늘어난 상태다.


아까 행성 ZDR의 한랭화 현상으로 인해 던전의 다수 구역이 막혀버렸으며, 디자이너가 정해놓은 매우 한정된 경로만을 이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제작사가 숨겨놓은 루트가 있는데, 위 사진에서 나타나듯 동그라미로 표기된 숨겨진 경로를 찾아내면, 한랭화 현상 속에서도 기존보다 탐색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며 스크류 어택이라는 어빌리티를 더 빠르게 얻어낼 수 있다. 숨겨진 경로를 찾아내고 스크류 어택을 얻고 나면 위에 표기된 부분 이외에 던전 내부의 다른 영역에도 갈 수 있으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탐색 가능한 범위가 늘어난다. 기본적인 게임의 진행 자체는 선형적이되 플레이어의 관찰력과 컨트롤이 뛰어나다면 얼마든지 던전을 비선형적으로 탐색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보상도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드레드의 탐색 범위는 어떤 의미에서는 난관을 넘어 우수한 플레이어에게 주는 보상적 성격도 띤다. 남들이 찾지 못한 루트를 찾아냈으니 특정 보스를 넘겨버리거나 내지는 일반적인 진행에서 볼 수 없었던 시퀀스 브레이크 전용 컷신 등으로 보상해주기 때문이다. 선형 속의 비선형이다.


사실 이 구조는 이 장르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슈퍼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인터넷의 일부 플레이어들이 슈퍼를 무슨 완전한 비선형 게임인 것처럼 주장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사실 슈퍼도 처음부터 완전한 비선형 게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적어도 본문을 쓰기 직전 필자가 플레이해본 바로는 그랬다. 첫 번째 메인 보스인 크레이드를 사냥할 때까지만 해도 이미 지나간 길을 게임 내에서 인위적으로 막아버리거나 특정 능력이 해금되지 않으면 갈 수 없게 막아버리는 등 플레이어의 경로를 제한하곤 한다. 플레이어를 자유롭게 놔주고 비선형적 탐험을 가능하게 한 시기는 파워 봄 아이템을 얻게 되는 시기이며, 이쯤 되면 이미 게임의 중반부에 달한다. 그럼에도 게임 내에서 벽 점프나 샤인 스파크, 목볼(mockball) 등 일정 수준 이상의 시퀀스 브레이크 테크닉과 숨겨진 루트를 찾아낼 관찰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사실상 보스를 잡는 순서가 강제된다. 자유롭게 탐험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다소 선형적인 측면도 있었던 것이다.


리들리가 있는 로어 노르페어의 입구. 그래비티 슈트와 스페이스 점프가 없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갈 수 없다.


가령 슈퍼는 최종 보스인 마더 브레인에게 가기 위해 4마리의 메인 보스를 잡도록 강제한다. 일반적인 진행 순서에 따른다면 크레이드 -> 펜툰 -> 드레이곤 -> 리들리 순서로 잡게 된다. 우선 펜툰을 잡아야 그래비티 슈트를 얻을 수 있다. 그래비티 슈트를 얻은 후에야 부서진 함선 내부에 깔려있는 수중 지역을 뚫고 드레이곤이 있는 마리디아로 가기가 용이해질 뿐만 아니라 로어 노르페어로 들어가기 전 깔려있는 용암 지역을 뚫고 지나갈 수 있다. 그다음 마리디아에서 드레이곤을 잡은 후에 스페이스 점프 어빌리티까지 얻어야 비로소 리들리가 있는 로어 노르페어로 (일반적으로는) 갈 수 있다. 이는 슈퍼가 정립해놓은 메트로바니아의 장르적 특징이자 기초다. 기존에는 갈 수 없었던 장소를 특정 능력을 해금하고 나서야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구조 말이다. 이 순서를 무시하고 리들리를 먼저 잡기 위해서는 벽 점프라는 시퀀스 브레이크용 테크닉을 익혀야 한다. 상당한 수준의 고수가 아니라면 리들리는 항상 마더 브레인 직전에나 잡을 수 있다.


즉, 슈퍼도 기본적인 진행 순서는 다소 선형적이되 플레이어의 실력 여하에 따라 시퀀스 브레이크를 활용하여 순서를 뛰어넘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구조는 드레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드레드만큼 다음 진행 순서로 가기 위해 플레이어의 경로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덜할 뿐이다. 앞서 분석했다시피 이러한 디자인은 어디까지나 메트로바니아 장르의 입문자를 위한 디자인으로서,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므로 퇴화했다고 보기는 조금 어렵다. 물론 경로 탐색에서 플레이어의 개입 여부를 차단하고 완전히 선형적으로 게임을 디자인했다면 던전 탐색의 의미가 사라지게 되므로 슈퍼보다 훨씬 퇴화하고 열등한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드레드 역시도 실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순서를 스킵할 수 있는 데다가 테크닉에 따른 보상도 주어지기 때문에 드레드의 기본적인 진행이 선형적이라 해서 점수를 깎는 건 다소 잘못된 평가라고 생각한다. 엄밀히 구분하자면 이 장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슈퍼 때부터 그랬기 때문이다. 그저 입문자들을 위해 조금 타협했을 뿐이다.


슈퍼에서는 이런 식으로 눈에 띄는 오브젝트를 배치하여 다음 진행을 위한 힌트로 사용한다. 드레드에서는 없는 디자인이다.


다만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 눈에 띄는 오브젝트나 콘셉트를 가진 구역이 없다는 것은 단점이 될 수 있다. 슈퍼에서는 브린스타, 노르페어, 크라테리아, 난파선, 마리디아 등 지역마다 명확하게 다른 콘셉트를 지니고 있으며, 던전 곳곳에 확연히 눈에 띄는 오브젝트를 배치하여 플레이어에게 다음으로 진행해야 할 지역에 대한 힌트를 주곤 한다. 그 점에서 드레드는 아쉽다. 아르타리아에서 시작하여 각 지역마다 자신만의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 지역은 없다. 화산 지대는 카타리스 뿐만 아니라 던전 곳곳에서 나온다. 수중 지역도 버레니아가 조금 더 많을 뿐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콘셉트도 겹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탐색의 자유로움 뿐만 아니라 콘셉트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슈퍼보다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다수 플레이어들이 드레드에서 탐험하는 재미가 떨어진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레벨 디자인 곳곳에서 드러나는 배려, 아쉬움도 있다


지금까지는 탐험 측면에서 게임을 분석했다면, 이번에는 액션 측면에서 게임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드레드의 전투는 크게 필드 전투와 보스전으로 나뉠 수 있으며, 보스전은 E.M.M.I라는 특수 기믹의 보스와 일반적인 보스로 나뉜다. 필자는 필드 전투 -> E.M.M.I -> 일반 보스 순서로 분석해볼 생각이다. 우선 필드 전투를 분석하기 전에 드레드 내부에 존재하는 몇 가지 규칙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메트로이드 드레드의 규칙


- 플레이어의 체력이 0이 되면 게임에서 패배한다.

- 몬스터를 잡으면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에너지 구슬(?)과 미사일이 나온다.

- 레벨 곳곳에 존재하는 스테이션에서 플레이어의 체력과 미사일을 회복시켜준다.

-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죽었을 시 체크포인트(세이브포인트)에서 부활한다(예외 : 보스와의 전투에서는 보스방 바로 앞에서 살아난다).



난이도는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난이도의 높낮이를 함부로 주장하기에는 조금 조심스럽지만, 감안하더라도 드레드의 필드 전투 난이도는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체크포인트가 여유로운 편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레벨 곳곳에서 플레이어의 체력과 미사일을 채워주는 곳이 너무나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우선 버레니아의 전체 지도를 보면, 체크 포인트의 개수는 6개, 미사일과 체력을 채워주는 스테이션이 각각 2개씩 비치되어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렇게까지 많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드레드는 몬스터를 잡으면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에너지 구슬과 미사일이 나온다는 규칙이 있다. 이 규칙을 상기한 채 다시 레벨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두 종류의 몬스터를 발견할 수 있다.


반복 구간 몬스터 1


반복 구간 몬스터 2


반복 구간 몬스터를 포함한 지도. 던전의 거의 절반 가까운 구역에서 안정적으로 체력 회복과 미사일 보충 수단을 제공한다.


이 몬스터들은 고정된 위치만을 반복해서 움직이며 절대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원거리 공격도 하지 않는다. 어떤 몬스터들은 무한히 리스폰되기도 한다. 즉, 몬스터가 움직이는 구간에서 멀리 떨어져서 빔을 쏘면 안전하게 미사일과 체력을 채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몬스터들은 던전의 난관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체력 회복과 휴식의 수단으로 제공된다. 그리고 지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런 종류의 몬스터들이 무려 전체 레벨의 절반 가까이 깔려있다. 던전의 절반이 체력 포션을 제공해주는 셈이나 다름없다. 가령 플레이어의 체력이 1이고 미사일이 하나도 없더라도 저 노란색으로 표기된 지역에만 가게 되면 안정적으로 체력과 미사일을 가득 채울 수 있다는 뜻이다. 입문자들을 배려한 디자인이겠지만, 리스크와 리워드 사이의 균형이라는 자원 관리의 측면에서 봤을 때 드레드는 너무나 플레이어에게 관대한 덕분에 필드 전투의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하락한다. 일정 거리 이상 벌린 상태에서 빔을 쏘기만 해도 플레이어는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고 체력과 미사일을 수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숙련자라면 필드 전투에서 한 번 죽기도 어려울 정도다. 넘쳐나는 체력 회복과 미사일 보충 수단으로 인해 던전의 필드 전투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던전은 그저 지나다니는 통로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어렵다고 평가받는 사례도 대부분 보스전일뿐, 필드 전투가 어렵다는 평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필드 전투의 난이도를 올리고 던전의 위협도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에너지 구슬과 미사일의 양을 조절하든지, 체크포인트의 개수를 줄이든지 등등 게임 규칙 내지는 레벨 디자인의 수정이 필요하나, 자원 관리라는 명목 하에 에너지 구슬과 미사일의 양을 조절한다는 것은 품이 많이 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몬스터를 잡으면 에너지 구슬과 미사일이 나온다는 기존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전통과 같은 규칙을 건드리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가령 무한히 리스폰되는 몬스터를 잡았을 때 미사일이나 에너지 구슬이 나오지 않는다고 규칙을 수정해버리면 게임 규칙의 일관성이 깨져버리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상당한 난제였으나 머큐리 스팀은 매우 손쉬운 방법으로 이 난제를 해결했다. 바로 몬스터에게 한 대만 맞으면 플레이어가 사망해버리는 노히트런 모드(드레드 모드)를 추가한 것이다. 아무리 플레이어의 체력이 많다고 한들 한 대만 맞아도 죽어버리기 때문에 수많은 체력 회복 수단이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던전은 더욱 강력하게 플레이어를 압박할 수 있게 된다. 드레드 모드의 추가로 인해 스피드러너 등 상당히 숙련된 플레이어라도 수십 번의 죽음은 각오한 채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게 됐다. 노히트런 모드로 문제를 해결하고 던전의 필드 전투가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이나 개인적으로는 너무 쉬운 방법을 택한 건 아닌가 싶은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따라서 하드까지는 필드 전투의 난이도에 제대로 된 난관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이 게임의 난관은 대부분 보스전에서 나온다. 우선 E.M.M.I라는 특수 기믹의 보스를 분석해보면, 난이도 곡선에 따라 매우 깔끔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본작에서 가장 잘 만든 파트다. 괜히 머큐리 스팀 측에서 E.M.M.I를 드레드의 상징적인 빌런으로 보여준 게 아니다. 처음 만나는 튜토리얼 성 E.M.M.I에서부터 게임을 진행할 때마다 E.M.M.I는 새로운 능력을 추가한다. 구르기와 벽 타기 능력에서부터, 빠르게 달리기, 얼음 광선, 마비 광선에 투시 능력까지 추가되며 게임이 진행될수록 E.M.M.I의 압박감은 커진다. AI도 좋은 편이라 따돌리기도 쉽지 않다.


하늘색 E.M.M.I 존의 일부.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가 상당히 좁아서 E.M.M.I에게 벗어나기가 제법 어렵다.


보라색 E.M.M.I존의 일부, 레벨의 상당 부분이 수중 공간이라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제약이 크다.


특히 후반부 가보란이나 페레니아에서 만나는 E.M.M.I들은 나름대로 다양하게 도구의 활용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가보란의 블루 E.M.M.I는 얼음 광선으로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막을 뿐만 아니라 E.M.M.I존의 레벨 디자인이 다른 E.M.M.I 전에 비해 좁기 때문에 압박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페레니아의 보라색 E.M.M.I는 E.M.M.I존의 절반 이상이 수중 공간이라 단순 달리기 만으로는 도저히 E.M.M.I의 추격을 뿌리칠 수 없다. 일반적인 진행 루트대로라면 그래비티 슈트를 얻기 전에 이 두 마리 E.M.M.I를 만나기 때문에 E.M.M.I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팬텀 클로크와 모프볼, 그래플 빔, 스파이더 마그넷, 플래시 시프트 등과 같은 게임 내에서 주어지는 도구를 전략적으로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한다.


오메가 캐논을 주는 센트럴 유닛. 드레드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보스


잘 만든 E.M.M.I 전에 비해 대 E.M.M.I용 오메가 캐논을 주는 센트럴 유닛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아니, 허술한 걸 넘어서 그냥 첫 E.M.M.I 전부터 전부 복붙이다. 주변 캐논에서 쏘는 미사일이 조금 더 많이 나올 뿐 패턴도 전부 같다. 항상 E.M.M.I에게 쫓기면서 센트럴 유닛 룸에 들어와야 한다는 어려움으로 인해 이렇게 디자인 한 모양이지만, 감안하더라도 왜 이렇게 무성의한 디자인이 나온 건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E.M.M.I에게 쫓기는 게 힘들다면 차라리 다른 보스전처럼 센트럴 유닛에게 죽으면 센트럴 유닛 룸 바로 앞에서 재시작을 하되 센트럴 유닛의 패턴을 다양하게 가져오는 게 훨씬 나았을 것이다. 게임 내부의 다른 디자인들은 나름의 의도성을 가지고 디자인한 게 보이므로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평가를 해줄 여지가 있겠으나, 센트럴 유닛만큼은 도저히 좋게 평가해줄 만한 부분이 없다. 드레드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파트다.


메인 보스전은 이전작이었던 리턴즈에 비해 전반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리턴즈에서 볼 수 있었던 멜레이 카운터 활용과 전용 컷신 연출은 드레드에서도 그대로 가져오되, 더 빠르고 다양한 패턴들이 다수 나온다. 난이도 측면에서도 '정직'하다. 모든 게임이 그렇듯이 누군가에게는 쉬울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난이도라고 볼 수 있지만, 보스 각자가 다른 콘셉트와 패턴을 가지고 나오되, 여러 번 관찰하고 리트라이를 하다 보면 패턴이 고정되어 있어서 누구나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의 절묘한 난이도로 만들어졌다. 페이즈가 지나갈 때마다 컷신으로 특정 부위를 강조하여 보스 공략에 대한 힌트를 주기도 한다. 다른 게임에서 흔히 보여주는 감상용 컷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리턴즈의 최종 보스 프로테우스 리들리(좌)와 드레드의 최종 보스 레이븐 비크(우)


리턴즈의 최종 보스인 프로테우스 리들리와 드레드의 최종 보스인 레이븐 비크 전을 비교해보면 드레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둘은 겉모습은 전혀 다르나 직접 플레이를 해보면 의외로 공유하는 패턴들이 제법 있다. 앞으로 전진하면서 3번의 기본 공격을 하는 패턴부터, 바닥으로 내려찍는 공격 패턴(리들리는 투사체를 뿌리는 반면, 레이븐 비크는 직접 몸으로 내려찍는다는 게 다르나, 패턴 자체는 유사하다), 공중에서 돌진하는 패턴 등 유사한 측면을 제법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레이븐 비크 측이 훨씬 다양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우선 레이븐 비크의 1 페이즈는 패링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공격을 해도 대미지가 들어가지 않는 특수 기믹을 갖고 있으며, 1 페이즈의 검은색 유도탄, 2 페이즈의 전방위 투사체 패턴 등 리들리가 구사하는 패턴보다 훨씬 빠르고 다양한 패턴들을 가지고 있으며 난이도도 드레드 쪽이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보스들이 주어진 도구의 활용을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그래플 빔으로 양측을 왔다 갔다 하는 걸 강제하는 드로기가 전, 다대일 보스전이라 빡빡한 딜 타임에 최대한 딜을 넣기 위해 스톰 미사일을 권장하는 로봇 조인족 병사 2인 전 정도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보스전이 플래시 시프트와 미사일, 스페이스 점프, 멜레이 카운터 만으로도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스피드 부스터/샤인 스파크 같은 능력은 모든 보스전을 전부 통틀어서 단 한 번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모프볼/봄 역시도 시퀀스 브레이크 루트를 활용할 게 아니라면 보스전에서 쓸 이유가 없다. 컨트롤만 잘하고 패턴을 외우면 얼마든지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의 보스들만 나온다.


모프볼 상태에서 디거노트의 팔에 붙어 공격해야 한다.


청소기(?) 패턴에 봄을 넣어야만 디거노트에게 대미지를 줄 수 있다.


디거노트의 마지막 페이즈, 얼굴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때 저 3방향에 봄을 설치하여 대미지를 줘야 한다.


예시로 리턴즈에서는 특정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난관을 풀어내는 보스전이 하나 있다. 디거노트 전이다. 이 보스는 공격 패턴 자체는 피하기 어렵지 않으나, 대처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어 일종의 퍼즐형 보스전의 형태를 띤다.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디거노트에게 어느 정도 대미지를 주면 디거노트가 엎드린 상태에서 양팔을 내미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직접적으로 힌트를 주지 않다 보니 처음에는 미사일만 쏘다가 공격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면 디거노트의 팔에 달려있는 위쪽으로 향하는 화살표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모프볼 상태에서 화살표에 붙으면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양팔을 모프볼 상태의 봄으로 부수고 나면 새로운 페이즈에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도 처음에는 플레이어에게 전혀 보스 공격 타이밍을 주지 않기 때문에 헤매게 되나, 유심히 관찰하고 미사일을 쏘다 보면 사진 속에 보이는 청소기 패턴에 투사체를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대미지를 주고 나면 드디어 디거노트가 얼굴을 드러낸다. 여기서도 플레이어는 다소 헤맬 수밖에 없게 되는데,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전혀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얼굴만 드러내니 처음에는 공격 타이밍을 날려먹게 된다. 그렇게 몇 번의 시도를 하며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각종 도구를 전부 사용하다 보면 디거노트의 얼굴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모프볼로 붙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프볼 상태에서 사진 상에 보이는 3방향에 봄을 설치하여 대미지를 주면 그제야 보스전이 마무리된다.


리턴즈의 디거노트 보스전이 갖는 의의는 다른 보스전처럼 단순히 액션 능력만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프볼 상태에서 양팔에 기어 올라가 봄을 터뜨리는 과정, 청소기 패턴에 봄을 집어넣는 과정, 모프볼로 얼굴에 붙어 3방향에 봄을 설치하는 과정은 그저 반사신경이 좋다거나 리듬감, 패턴 암기 만으로는 결코 풀어낼 수 없는 훌륭한 퍼즐이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왜 디거노트에게 대미지를 줄 수 없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각해보게 되고,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여러 도구를 전부 사용해가며 퍼즐의 해결 방안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제한 시간 내에 파해법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 페이즈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리스크도 주어진다. 정답은 정해져 있을지 몰라도 정답을 이끌어 내기 위해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각종 도구를 전부 사용해가며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훌륭하게 도구의 활용을 이끌어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일종의 귀납적 추론을 통해 보스에게 대미지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충분히 사고(思考)해야만 클리어가 가능하도록 디자인된 우수한 보스다. 이러한 기믹 때문에 리턴즈를 플레이해볼 다수의 플레이어들은 디거노트전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평이 많았지만, 다른 보스와 대처법이 다른 특수 기믹을 갖고 있기 때문일 뿐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리턴즈에서 최고의 보스전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드레드의 보스전에서는 이러한 특수 기믹을 가진 보스를 찾기가 어려웠다. 대부분 액션 능력과 패턴 암기만을 요구한다. 그나마 최종 보스인 레이븐 비크의 1 페이즈 무적 기믹 정도가 있었으나, 이 또한 그저 다가가서 멜레이 카운터를 하면 바로 풀려버리는 기믹이기에 디거노트만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마도 리턴즈에서 디거노트전이 어렵다는 평가를 들은 이후로 머큐리 스팀 측에서 이런 특수 기믹을 넣은 보스를 의도적으로 빼버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감안하더라도 최후반 보스 하나 정도는 이러한 기믹을 활용하여 플레이어의 사고력과 더불어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도록 디자인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드레드의 보스전은 전반적으로 우수하며 크게 단점으로 지적할 부분이 없으나, 굳이 지적하고자 한다면 이런 부분일 것이다.


아이템 수집 퍼즐에서 드러나는 머큐리 스팀의 고민


드레드에서 아이템은 굳이 다 모을 필요가 없다. 특히 100%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그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필자는 아이템 수집에 대해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템 수집을 진행하다 보면 정규 루트에서는 보기 드문 괜찮은 퍼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여기서 필자는 던전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예시가 아이템을 수집할 때만 볼 수 있는 스피드 부스터/샤인 스파크 퍼즐이다. 필자는 이 퍼즐들을 풀면서 머큐리 스팀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사례로 버레니아의 스피드 부스터 퍼즐이 있다. 드레드에서 상당히 어려운 퍼즐에 속한다. 우선 스피드 부스터를 충전하기 위한 루트도 짧은 데다가 경사면에 샤인 스파크를 쓰면 스피드 부스터가 재충전된다는 기능을 활용해야 이 퍼즐을 풀 수 있다. 스피드 부스터 퍼즐까지 경로를 구상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타이밍이 상당히 빡빡한 편이라 컨트롤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러 번 시도를 해봐야 간신히 풀어낼 수 있다.


노란색 원은 스피드 부스터 퍼즐, 빨간색 원은 그린 텔레포트 존, 짙은 빨간색은 그래비티 슈트의 위치다. 퍼즐 근처에 텔레포트 존과 슈트가 설치되어 있다.


이 퍼즐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두 가지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하나는 퍼즐 바로 위쪽에 그린 텔레포트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루트가 흔히 사용하는 그래비티 슈트 시퀀스 브레이크 루트와 이어져있다는 점이다. 우선 탐험 파트의 디자인 분석에서 드레드가 갖고 있는 중요한 레벨 디자인의 특징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개발사가 탐험의 루트를 매우 한정된 공간으로 제한하고, 다음 진행 장소로 가기 위해 숏컷 및 텔레포트를 설치하여 플레이어의 진행을 돕는 식으로 디자인하는 게 드레드가 지니고 있는 정규 루트 디자인의 특징이다. 기묘하게도 이 퍼즐 루트는 정규 루트의 디자인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갖는다. 퍼즐을 통과하여 아이템을 얻은 후에 바로 그래비티 슈트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바로 근처에 그린 텔레포트 존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필자는 여기서 머큐리 스팀의 타협을 보았다. 이 퍼즐 루트의 레벨 디자인을 분석해봤을 때, 이 루트는 원래 시퀀스 브레이크 루트가 아니라 정규 루트로 디자인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루트처럼 자칫 고난도의 스피드 부스터 퍼즐을 설치했다가는 입문자 플레이어에게 상당한 난관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루트를 만들어 놓고도 따로 더 쉬운 정규 루트를 만들어서 이 루트는 시퀀스 브레이크용 루트로 따로 빼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필자가 머큐리 스팀 개발자는 아니므로 근거는 없다. 그저 심증만이 있을 뿐이다.


시퀀스 브레이크를 활용하여 스피드런을 진행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스피드 부스터/샤인 스파크를 게임 내에서 요구하는 경우는 아이템 수집이 거의 전부다. 아마도 샤인 스파크 퍼즐은 캐주얼 플레이어에게 너무나 고난도의 난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내부적 타협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규 루트에서 빼버린 대신에 탐험/수집에 관심이 있는 숙련자 플레이어를 위한 일종의 보상으로 빼둔 것이다.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는 디자인이기에 단점으로 지적하기엔 조심스러우나 적어도 샤인 스파크 퍼즐 중에서도 일부 쉬운 퍼즐들은 정규 루트에 넣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임 내에 여전히 존재하는 성 상품화 요소, 하지만...


서사 측면에서 드레드를 분석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 이 게임의 고정된 서사는 말 그대로 '장식'에 가까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일단락을 짓는 스토리라고는 하지만, 그저 존재만 하는 수준일 뿐이다. 이 게임에서 고정된 서사라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목표를 부여하고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사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사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슈퍼 메트로이드 클리어 시간이 3시간 이상일 경우 나오는 사무스의 복장, 슈트를 그대로 입고 나온다.


3시간 이내로 슈퍼 메트로이드를 클리어했을 시에 나오는 사무스의 복장. 슈트를 벗고 비키니 차림의 여성이 나온다. 명백한 성 상품화 트로피.


그나마 할만한 얘기가 있다면 사무스 아란이라는 캐릭터의 여성 서사일 것이다. 인터넷의 일부 플레이어들이 사무스 아란을 남성인 줄 알았더니 실제로는 여성이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전복 서사를 보여준다거나, 강인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페미니즘 여성 캐릭터계의 시조 격으로 여기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 시리즈를 플레이해본 사람들이라면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장 슈퍼 때만 해도 클리어 타임이 3시간을 넘기면 사무스 아란이 기존 슈트를 그대로 입고 나오지만, 3시간 이내로 슈퍼 메트로이드를 클리어했을 시에는 비키니를 입은 사무스 아란의 모습이 나온다. 명백한 성상품화다.


하드 모드 4시간 클리어를 비롯하여 모든 엔딩 갤러리 수집에 성공했을 시에 나오는 갤러리.


이 전통은 드레드에서도 유사하게 이어진다. 하드 모드로 4시간 이내 드레드 클리어에 성공하고, 모든 엔딩 갤러리를 수집하면 이번에도 사무스는 기존에 입던 슈트를 벗고 제로 슈트를 입은 사무스의 모습이 나온다. 짧은 시간 내에 클리어했을 시에 굳이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제로 슈트 사무스의 모습을 넣었다는 것은, 전작들처럼 살갗이 직접 드러나는 모습은 아니기에 수위는 줄어들었을지언정 성 상품화 트로피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사무스 아란은 성 상품화 캐릭터였고 페미니즘 서사와는 완전히 거리가 먼 캐릭터라고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사무스 아란이 성 상품화든,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캐릭터든 간에 그런 사소한 요소로 게임의 가치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애초에 사무스 아란의 성별 때문에 메트로이드를 플레이한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기 때문이다. 메트로이드가 장르의 원류가 된 것은 모든 메트로바니아 게임에게 귀감이 될만한 레벨 디자인과 더불어 장르의 형식을 규정한 규칙들에 있지, 사무스 아란이라는 캐릭터의 성별은 처음부터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무스 아란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촉수가 달린 괴물이든, 강철로 만든 로봇이든 그게 무엇이 중요할까. 세상에는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절묘하게 찾아낸 절충점


드레드는 완벽한 게임이 아니다. 앞서 분석한 바와 같이 게임의 디자인을 세밀하게 분석해보면 아쉬운 구석도 몇 가지 존재한다(물론 아쉬운 점 역시도 대부분 의도가 보이는 디자인이기에 단점으로 뽑기에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참신한 게임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드레드라는 게임을 이루는 기본 구조는 이미 27년 전에 슈퍼에서 정립한 개념들이고 이전 시리즈에서 만들어온 게임적 요소들을 잘 섞어내고 다듬은 게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 게임이 잘한 점이자 가장 큰 의의는, 수십 년 동안 시리즈를 이어오면서 형성된 팬덤과, 신규 유저 사이에서 절충점을 절묘하게 찾아냈다는 점이다. 후반부가 다소 맹탕이었던 잇 테잌스 투와 달리, 최후반까지도 꾸준히 게임의 밀도를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게임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올해 초에 필자는 과거의 위대한 게임과 플레이어들을 잊지 않으면서도, 신규 플레이어들을 고려하는 글을 쓰겠다고 했다. 적어도 필자가 작년에 했던 게임들 중에서 드레드만큼 그 기준에 부합하는 게임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켜준 게임은 아닐지 몰라도(애초에 불가능한 도전이기도 하다), 머큐리 스팀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봐도 좋았다. 성과로도 나타났다. 2022년 2월 3일에 올라온 닌텐도의 발표에 따르면, 드레드의 21년 4분기 판매량은 274만 장이다. 고작 1분기 만에 시리즈 중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284만 장의 메트로이드 프라임에 이은 2위를 달성했다. 시리즈 최고 판매량 경신은 따놓은 당상이다.


몇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게임을 2021년 최고의 게임으로 뽑고자 한다. 메트로이드의 새로운 적자는 다시 한번 그들이 왜 이 장르의 원조가 되었는지를 증명했다. 기본적인 진행은 선형적이되 플레이어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비선형적인 탐험이 가능하도록 철저하게 깎아낸 레벨 디자인과 난이도, 게임의 진행 방식은 앞으로 나올 수많은 메트로바니아 게임의 귀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2D 메트로바니아 팬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이자, 시리즈의 일단락에 어울리는 마무리였다.


각1) 메트로이드+캐슬바니아의 합성어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메트로이드의 영향력이 더욱 크기에 이런 줄임말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여기서는 그저 편의상 줄인 말이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마음대로 골라보는 Game Of The Year 2021


                               <메트로이드 드레드(Metroid D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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