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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없는 자 Jan 03. 2022

2021년 간단 결산

스벤 빈케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거 울티마 7에서는 되던건데 왜 구현 못 해?" 발더스 게이트 3를 개발하던 스벤 빈케가 동료 개발자에게 던진 한 마디다. 빈케는 30년 전 울티마에서 구현되고 완성되었던 문제해결의 자유라는 기조를 결코 잊지 않았고, 그 철학을 게임 속에서 지독하게 구현해낸 장인이었다. 최대한 다양한 상호작용 요소를 통해 플레이어 각자의 내러티브를 만들 수 있도록 게임을 디자인한 이유다. 발더스 게이트 3 얼리 억세스에서 보여준 신발 던지기는 빈케의 철학을 상징하는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신발을 던지는 행위 자체가 크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장면의 의미는 상호작용의 디테일에 있다. 그만큼 디양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함으로써 극한의 문제해결의 자유를 추구할 수 있다는 무언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스벤 빈케의 게임들은 현세대 게임과 비교해봤을 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과거 고전적인 CRPG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게임 내 흩뿌려진 단서를 통해 해답을 추론하는 퀘스트 구조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울티마가 갖고 있던 문제해결의 자유라는 철학 기조 역시도 유지한다. 하지만 스벤 빈케는 단순히 과거를 계승하는 점에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현대적인 요소를 섞고, 고전적인 요소와 조화시키려 했다. 지금 개발중인 발더스 게이트 3뿐만이 아니다. 이미 다양한 상호작용의 기초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에서 대부분 세워놓았다. 더 발전시키고 있을 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개성을 갖춘 캐릭터 간 상호작용, 장엄한 판타지 플롯 등을 게임 내에 녹이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


필자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절묘한 절충법 중 하나로 커스텀 캐릭터와 오리진 캐릭터의 분화를 꼽고 싶다. RPG와 어드벤처를 비롯한 과거의 게임들에서 끊임없이 개발자를 괴롭혔던 딜레마는 바로 캐릭터성과 플레이어의 주체성 사이의 충돌이었다. 내러티브 게임의 시초라 불리우는 TRPG를 생각해보자. 마스터가 하나의 메인 시나리오는 준비해올 지언정, 시나리오를 어떻게 진행할지, 특정 상황에서 캐릭터가 내뱉는 대사는 무엇인지 등은 마스터가 하는 역할이 아니었다. 만약 마스터가 전부 정해주는 대사만 외칠 수 있고 정해주는 스킬만 사용하여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는 식으로 게임을 '스크립트'화 시킨다면 해당 캐릭터는 마스터의 캐릭터일뿐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나가는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들어낸 타협이 플레이어의 캐릭터(커스텀 캐릭터)와 디자이너의 캐릭터(오리진 캐릭터)를 분화하는 방식이다. 물론 의도는 좋았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제법 있는데, 이는 차후 발더스 게이트 3에서 고쳐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플레이어의 주체성과 드라마틱한 플롯을 조화시키기 위해 캐릭터를 두 가지로 나눴던 스벤 빈케의 게임처럼, 필자 역시도 둘 사이의 절충점을 찾아서 글을 쓰고자 했다. 그래서 사용한 개념이 고정된 내러티브와 플레이어가 만들어 나가는 내러티브 사이의 분화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필자의 작업이 성공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중간에 필자의 잘못으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간 점도 있었고 여러모로 2021년은 실패의 해로 기록될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잘못을 안 하고 살수는 없고 실패를 경험하지 않을 수도 없다. 필자는 2021년의 실패를 통해 배웠고 학습했다. 2022년은 좀 더 나은 해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존 디비니티 시리즈의 실패를 통해 배운 스벤 빈케가 결국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으로 성공했듯이.


앞으로도 게임계는 점점 고전적인 플레이어와 신규 플레이어 간의 간극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에 경험이 많은 고전적인 플레이어는 점점 더 어렵고 복잡한 게임을 원하는 반면, 신규 플레이어는 게임의 기본적인 조작법조차 익숙하지 않아 헤맬 것이기 때문이다. 모바일 게임을 '진정한 게임이 아니다'라고 폄하하는 고전적 플레이어와 '스팀 게임은 오타쿠나 하는 무언가'로 치부하는 신규 플레이어가 존재한다. 둘이 원하는 게임들은 점점 평행선을 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둘의 간극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다리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과거의 위대한 게임과 플레이어들을 잊지 않으면서도, 현대의 신규 플레이어들을 고려하는 글들. 필자가 쓰고자 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써야 하는 글은 그런 글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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