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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 없는 자 Feb 09. 2022

게임 비평과 앞으로의 콘텐츠에 대한 고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1.


우선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명토 박아둘 점이 있다. 이전 소감에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필자는 2021년 올해의 게임에 대한 비평을 준비하고 있다. 비평을 자주 할 생각은 없다. 아직 플레이 경험도 일천하고 아는 것도 적다. 정기적으로 게임을 비평할 만한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수년 정도는 플레이 경험을 더 쌓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수준이 얄팍하더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쓸 수 없다. 연습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번 필자의 게임 비평은 일종의 이벤트 형식이자 연습용 글에 불과하다. 필자가 이 계정을 얼마나 오래 운영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동안 게임 비평은 올해의 게임으로만 한정한다. 1년에 한 번만 쓴다는 말이다. 메인 콘텐츠는 다른 형식의 글이 될 것이다.


2.


얼마 전 JTBC 드라마 <설강화>의 역사왜곡 논란이 있었다. 문제는 메시지였다. '운동권에 실제로 간첩이 있었다.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사람은 간첩이다.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사람은 간첩이므로 독재정권의 민주화 운동 탄압은 정당하다. 독재정권의 운동권 탄압을 미화하고 민주화 운동의 가치를 폄하했다.'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드라마나 역사 쪽에 해박하지 못해서 자세하게 평론할 역량까지는 없다. 하지만 이런 의문은 든다. 정녕 설강화의 역사왜곡이 일부 사실일지라도,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허구의 영역이며, 무엇보다 드라마라는 '매체(media)'가 추구하는 가치가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필자가 드라마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정도 상식은 있다. 모든 문화매체는 자신들만이 추구할 수 있는 특기라고 부를 만한 분야가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싶다면 관련 서적이나 논문을 읽으면 될 일이다. 따라서 설강화가 역사왜곡을 했든 안 했든, 드라마 내부에 존재하는 설정은 드라마의 '껍데기'이자 비(非) 드라마적 요소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필자의 게임 비평에 대한 고민도 위 논란과 결이 비슷하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는 플레이어와 게임 내부의 텍스트가 고정된 규칙 하에 서로 상호작용하며 특정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매체다. 따라서 어떤 게임을 비평한다는 것은 상호작용에 의미를 부여하는 규칙과 레벨 디자인에 가치를 매기는 작업이어야 한다. 그 작업에 다른 요소가 들어갈 여지는 없을지도 모른다. 가령 비디오 게임 내부의 어떤 설정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든지, 캐릭터에 성 상품화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든지, 아니면 페미니즘을 대변하는 캐릭터가 있다든지 이런 정치/사회적 요소는 비평의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 요소들은 게임이라는 매체적 본질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껍데기'이자 비(非) 게임적 요소에 불과한 무언가 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게임 근본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거다(문학으로 치면 형식주의 내지는 구조주의적 비평에 가까울 것 같다). 필자 역시도 이러한 관점이 틀렸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필자는 'PC가 묻어서 망한 게임이네', '페미니즘 때문에 여성 캐릭터가 못 생겨졌네',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성 상품화 요소가 들어가 있네'라는 식의 매우 지엽적인 요소만 가지고 게임을 평가하는 행위를 경멸하며,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아무리 게임 비평의 메인이 게임 기저에 존재하는 규칙과 레벨 디자인의 가치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게임 내부에 존재하는 특정 텍스트들이 게임의 매체적 본질과 거리가 먼 껍데기라고 할지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특히 워킹 시뮬레이터 같은 장르라든지, <디스코 엘리시움> 같은 게임은 게임 내부의 서사를 제외한다면 사실상 분석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서사에 많은 비중을 부여하기도 한다. 따라서 껍데기에 불과한 게임적 요소에 대해 윤리적 고민을 한다든지, 껍데기에 가치를 부여하는 비평들이 전연 무의미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껍데기에만 집중한 채 규칙과 게임 플레이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비평이 문제일 뿐이다. 게임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 단순히 원고지 낭비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은 다양한 게임 비평의 가능성을 너무나 폭력적으로 제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떤 문화 매체를 비평하든 간에 철저하게 하나의 작품을 내부적/구조적으로 분석하는 형식주의/구조주의적 비평도 있지만, 과거 동일 장르의 작품과 비교하여 역사적으로 해당 가치를 분석하는 경우도 많으며, 동시대의 사회, 정치, 문화적 상황과 비추어 보며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해당 작품의 가치를 분석하는 텍스트도 많다. 비평에는 여러 가지 방법론이 존재하며, 한 가지 방법론만이 절대적으로 옳을 수는 없다.


현재 필자는 철저하게 게임의 내부적 형식만을 구조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형식주의/구조주의적 시각과, 그럼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게임적 요소와 외부적 현상들을 인문학적으로 분석하는 게 가치가 없지 않다는 시각이 상충하고 있다. 무엇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차라리 하나의 게임을 1부와 2부로 나눠서 메커니즘의 분석과 인문/사회적인 분석을 나누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 모든 걸 합쳐서 포괄적으로 분석하거나. 하지만 비평의 형식을 1부와 2부로 나눠서 분석하든, 한 큐에 포괄적으로 작품을 분석하든 간에 이 모든 작업을 비평이라는 글 하나에 담는 게 가능할 만큼 필자의 역량이 대단치는 않다. 필자의 필력만으로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는 게 옳지 않을까.


3.


다음은 메인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다. 올해 필자는 크게 3가지의 메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었다(게으름+개인적인 업무로 인해 제대로 글을 쓰지는 못했다). 그 콘텐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게임 내러티브를 조립하는 기획이다. 작년에 썼었던 두 가지 내러티브의 연장선상에 있는 기획으로서, 하나의 게임 속에서 어떻게 플레이어가 내러티브를 조립할 수 있는지, 고정된 내러티브와 플레이어가 만들어 나가는 내러티브가 게임 내에서 어떻게 결합하는지 그 원리를 분석하는 기획이다. 작년에는 주로 포괄적이고 이론적인 분석에 그쳤다면, 이번 기획은 매편마다 게임 하나만을 다루고자 하는 기획이기에 이전보다 훨씬 구체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두 번째는 게이미피케이션 관점으로 비디오 게임을 분석해보는 것이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이미 수능 지문에서도 등장할 정도로 나름의 긍정적 효과를 인정받고 있지만, 의외로 게이미피케이션의 원류가 되는 비디오 게임을 게이미피케이션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정 게임의 메커니즘을 분석하여 일종의 두뇌 훈련이 가능하다는 식의 접근법도 무리한 접근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기획을 한다면 주로 퍼즐이나 추리, 전략 위주의 게임이 선정될 것이며(RPG나 어드벤처, 액션 같은 장르도 다루긴 하겠지만, 본 기획 취지상 다수를 차지하기에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 되도록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소재의 작품은 다루지 않으려 한다.


세 번째는 게임의 고고학이라는 기획이다. 과거 80~90년대의 고전 게임에서는 지니고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매우 단순화되거나 내지는 사라진 가치들이 제법 많다. 특히 플레이어가 스스로 생각하여 개발자가 내준 논리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더욱 그렇다. 고전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하면서 현세대 게임들이 잃어버린 가치를 찾아내고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이 작업을 한다면 현실적으로 가장 어려운 작업이 될 수도 있겠다. 소유하고 있는 클래식 기기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에뮬로 돌아가는 게임도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전 게임들은 대다수가 현대 게임들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클리어가 가능 할런지도 의문이다.


올해는 이 세 가지를 전부 써보는 걸 목표로 삼았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보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디오 게임은 수십~수백 시간에 달하는 플레이 타임으로 인해 분석하기 위해서는 다른 매체보다 품이 많이 든다. 영화처럼 2시간 시청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물론 영화도 각 잡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이것보다 훨씬 시간을 더 많이 써야 하지만). 필자도 먹고는 살아야 한다. 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느 기획을 선택하든 간에 아쉬움이 크게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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