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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Apr 19. 2020

[일상첨화#4] 온 세상 맑음

나의 사랑들도, 나의 세상들도 

*일상첨화 [日常添畫] : 사진을 더한 일상을 매일 기록하는 개인 프로젝트입니다. 별 것은 아니고, 하루에 가장 인상 깊은 사진 하나를 골라 주절주절 쓰는 일기장입니다.

장소

아파트 정문으로 향하는 길


시간

2020년 4월 18일 오후 5시 


날씨

공기 너무 좋고 하늘은 너무 맑고



어제는 그렇게 매섭고 축축하고 어둡게 온 세상을 덮었던 하늘인데, 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반짝이고 깨끗한 하루였다. 어제의 하늘이 진흙탕이었다면, 오늘은 산꼭대기에서나 만날 법한 깨끗하고 시원한 계곡물 같은 하늘. 날씨뿐만이 아니라 나와 가족들의 마음 상태, 몸 상태도 올해 들어 가장 반짝였다.


일단 나의 강아지 가족 뭉치가 지난주에 중성화 수술을 한 이후로 세 가족이 나란히 산책한 지 거의 이 주 만이었다. 처음에 중성화 수술을 결정하고 나서, 답답하긴 하겠지만 깔때기 일주일만 하고 있으면 되지 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졌다. 심지어 내가 겪는 일도 아닌데도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 정작 깔때기를 하고 너무나 답답해하는 뭉치의 모습을 보니 내가 아주 큰 걸 놓쳤구나 싶었다. 이제는 정말 아들 같고 동생 같은 관계가 되어버린 것을 잠시 잊어버렸었나 보다. 뭉치가 말로 답답하다고 하는 것도 아닌데, 흡사 내가 깔때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몸이 근질거렸다. 결국 예정보다 하루 먼저 병원에 가서 실밥을 풀고 오늘부터 깔때기 빼고 목욕할 수 있다는 말에,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뭉치 깔때기를 벗기고 목욕을 시켜줬다. 목욕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뭉치지만, 거의 3주 만에 하는 목욕에 조금은 시원해하는 눈치였다. 


그 외에도, 물론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될 일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퍼졌던 동네 사람들 간의 불안함이 다소 휘발된 것 같았다.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있고, 마스크를 끼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현격하게 많아졌다. 자주 가던 단골 식당 사장님도 이제야 손님들이 다시 늘고 있어 조금 살 것 같다고 다행스러운 미소를 보이신다. 뭐랄까.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어깨에 지고 있던 무거운 숙제가 드디어 끝날 실마리가 보인달까. 오랜만에 마주한 맑고 깨끗한 하늘처럼,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과 기분조차도 한결 가벼워 보인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진 만큼, 산책하는 내 기분도 같이 밝고 맑아졌다. 예전에는 그렇게 쉬웠던 우리 세 가족의 산책마저 오늘은 왠지 참 감사한 하루였다. 떠있는 태양, 푸른 하늘, 건강한 뭉치와 남편과 나의 몸, 모두 모두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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