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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Apr 20. 2020

[일상첨화#6] 계단으로 흘러넘친 우리들의 삶

매일 18계단을 오르며

*일상첨화 [日常添] : 사진을 더한 일상을 매일 기록하는 개인 프로젝트입니다.  것은 아니고, 하루에 가장 인상 깊은 사진 하나를 골라 주절주절 쓰는 일기장입니다.

요즘 매일 같이 계단을 오른다. 재택근무의 장기화로 일명 ‘확찐자’가 되어버린 몸뚱이를 보며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집이 18층 아파트의 꼭대기층이라는 점이 아니다. 아파트 단지 자체가 지대가 높아 아파트로 올라가는 것조차도 약 두층 정도 높이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계단을 오르면서 만나는 이야기들이 진짜 주인공이다.


꼭대기 층까지 계단을 오른다는 것은, 결국 아파트의 모든 층에 사는 사람들이 도무지 집 안에는 둘 수 없어 꺼내놓은 살림살이들을 모두 지나쳐야 한다는 뜻과 같다. 사실 처음 18층을 오를 때는 이런 것들을 살펴볼 정신조차 나지 않았다. 가파오르는 들숨 날숨을 다잡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한 계단 위로, 위로, 올려다 놓는 것에도 진이 빠졌다.  하지만 며칠 지나고 나니 이제는 보이기 시작한다. 집 밖에 무엇을 두었는지, 어떤 문구로 흡연자들을 겁박하는지, 집에는 아이들이 몇이며 몇 살 정도인지, 게으른지 부지런한지, 어떤 우유를 마시며 쿠팡을 얼마나 많이 시키는지 같은 것들이 말이다. (염탐하려는 것은 아니었음을)


이런 모습들이 어찌나 정겨운 지 모른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차가운 돌층계들에 유일하게 변주가 되어준다. 점차 층 수를 보지 않아도, ‘이 자전거! 7층이군’ ‘이 전광판을 보니 이제 12층이군’ 하는 식이다. (왜 전광판이 거기 있는지 모를 노릇이다) 이런 방법으로 이웃들을 만나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물론 긴급 상황에서 대피로가 되기에는 이보다 위험할 수가 없겠다. 그걸 알고 관리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계단에 둔 물건을 치워라고 방송을 거듭 반복한다.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는 걸. 삶이란 몇 평 몇 평 하는 아파트 한 채로 다 담아내기엔 너무 거대한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아들의 방, 가족의 거실에는 다 담기지 못했던 자전거와 잡동사니들이 결국 현관을 흘러넘쳐 계단으로까지 닿은 것일 뿐.


홍콩 골목골목마다 시선을 사로잡는 널어놓은 빨래들이나 베트남에서 마주쳤던 파란 플라스틱 의자 위의 사람들에게서 만났던 ‘삶’. 우리나라의 사람 냄새, 삶의 향기는 집 앞 몇 뼘 안 되는 쿰쿰한 공간에서 아무도 모르게 스멀스멀 나고 있었다. 언젠가는 유명한 어떤 사진전에 대한민국의 모습이란 제목으로 우리 아파트 계단 어디쯤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피식 웃음이 나는 망상을 뒤로하고 오늘의 일상첨화는 여기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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