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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May 03. 2020

[일상첨화#7] 마음 아이를 키우는 법

마음은 떼나 쓰는 철부지인 ‘나’를 위하여



코로나로 인해 몇 달간 현상하지 못했던 필름들을 최근에야 겨우 현상하기 시작했다. 필름 카메라 느낌을 주는 다양한 카메라 앱들이 많지만, 역시 오리지널은 다르다. 조금은 흔들리고 초점이 나가도, 셔터를 눌렀던 그 순간의 기억이 사진 속에 같이 현상된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완벽한 사진들이 하나둘 발견되기라도 하면 과거의 나로부터 서프라이즈 선물이라도 받은 듯 기쁘다.



최근 들어 부쩍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몸까지 안 좋아졌었다. 갑자기 이유 없이 남편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밤에는 쓸데없는 자아비판과 자기 동정으로 자야 할 뇌를 괴롭혔다. 나조차도 나를 어찌해야 할지를 길을 몰랐다. 객관적으로 아무 문제없는 삶을 꼬집고 비틀어 괜히 스스로 못되게 굴었고, 그런 내가 미웠다. 마치 마음만은 철부지 떼쟁이 어린이가 되어 생떼를 피웠던 것이다. 더 사랑해달라고, 더 이쁨 받고 더 인정해달라고. 재택근무가 장기화되고 사회생활이 단절되면서 나도 모르게 우울감이 쌓였었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 역시 몸이 좋지 않았는데, 내가 마음의 짐을 한 더미 더 지운 것 같아 미안하다.


그런 어리고 철없는 나의 마음을 대면해보니, 차라리 운동해서 몸을 키우고 식단 조절하는 것이 훨씬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 원래도 이렇게 어리숙하고 제멋대로인 나였는데, 이번 기회에 진짜 나를 제대로 만나봤다 싶었다. 이성으로 눌려있던 감성적이고 어린 나의 마음 아이를.

이 아이를 어서 성숙하게 키우고 싶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정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감정 표현도 더 열심히 해보고, 믿을 수 있는 누군가와 진정한 대화를 나누며,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한다”라는 내 삶의 룰 리스트를 좀 더 줄여내고, 힘들고 괴로운 일은 그 원인과 면대면 마주해야 한다. 도망가고 괜찮은 척하고 내 마음보다 남 눈치를 더 보다 보니 내 마음속의 아이가 더 억울하고 악에 받쳐했던 걸 이제야 알겠다.


물론 최대한 친절한 사람으로, 웃으면서 살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우울감이 찾아올 때가 있다고 해도, 그래도 터놓고 이야기하면 잘 들어주는 남편이 있고, 그래도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괜히 와서 입술을 핥아주는 강아지가 있고, 그래도 운동으로 잡생각을 잠시 접어둘 수 있는 몸이 있고, 그래도 지친 몸과 마음을 곤히 재울 수 있는 침대가 있고, 그래도 좋은 기억을 영원히 담아둘 수 있는 카메라와 필름이 있다. 좋은 것들을 보고 읽고 들으면서 최대한 삶의 순간들에 집중하면서 살고 싶다.


삶의 밤이 찾아온다고 해도 나의 마음 아이가 울고 불며 방황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토닥토닥 달래서, 좀 더 성숙하게 마음을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는 멋진 어른의 마음이 되도록 안아줄 것이다. 건강한 어른의 마음으로 키울 것이다.



사진과는 뜬금없는 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마음이 힘든 시기에 가장 나에게 빛이 되어줬던 순간들과 가족들의 사진이기에 엮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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