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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Jun 15. 2016

내가 책을 읽는 법

책 읽기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웠어요

알라딘 가자


길가다가 알라딘을 보면 안 들어가고는 못 배긴다. 누군가가 이미 넘긴 책장들은 조금 구겨지고, 손때 묻고, 독특한 향기를 풍기지만 그 사이에 서있는 기분은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다. 심지어 그 저렴한 가격하며. 알라딘에 들어가서 맨 손으로 나온 적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예전에는 그 책들을 다 읽는 경우도 극히 드물었다.



그렇다. 나는, 글쎄, 엄청난 책벌레라고 하기는 부끄럽다. 그냥 평범하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책들을 읽어 해치우는 순간보다 책을 쌓아놓고 감상하는 순간이 더 행복할 때도 있고, 지루한 책을 만나면 읽어내겠다는 일념보다 스마트폰의 유혹에 자연스레 나를 내맡긴다. 서점에 있을 때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만, 그 책들을 또 다 읽으라고 내 앞에 쌓아두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낄 것이다. 누구나처럼 선반 위에 쌓인 책들을 보면 괜스레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책을 계속 놓지 못하는 건, 책의 매력을 눈곱만큼이라도 알기 때문일까. 마치 길가다 우연히 지나가는 어떤 여성의 좋은 향수 향기를 맡았을 때 같은 느낌이다. 왜 좋은지도 모르겠고, 무슨 향수인지는 모르겠는데, 괜히 계속 찾게 되고 기억나고 마냥 좋은 거다. 똑똑하지 못해서, 그 느낌을 분석하여 논리 정연한 보고서로 쓸 능력은 없지만, 책의 매력만은 분명히 경험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비록 읽지 않게 되더라도 버스나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읽을 책 두세 권씩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 자연스레 백팩만 매기 시작했다. 가끔 무거운 가방이 원수 같을 때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렴, 갑자기 여유 시간이 생겼는데 책이 없을 때의 당혹감보다는 백배 나을지어다.


책의 매력 : 느낌 공부


나는 보통 책을 읽으면 전체적인 느낌만 기억하는 편이다. 주인공의 이름이나 세세한 스토리는 거의 모두 잊는다. 물론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구절들은 가끔 일상생활 중에 노크 없이 나를 찾아오고는 한다. 츠지 히토나리의  <나를 사랑해주세요>에서 '힘내지 않아도 돼'라는 구절이라든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청소년용 책에서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사귀세요'라는 구절을 읽은 기억은 아직도 불쑥 머릿속에 나타나 깨달음을 준다. 하지만 여전히 나머지 내용들은 도무지 떠오르지를 않는다.


책들의 '느낌'은 활자들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책에서 지식이나 단어를 배우기보다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어떤 것들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으면서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내가 직접 겪을 수 없는 체르노빌 피해자들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낀 것도 그중 하나다. 그 속에 담긴 내용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과장이든지 간에, 내가 가진 공감능력을 사용하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껴본다는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도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살아가면서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삶은 길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인간의 모든 감정을 느껴보기는 힘들다.


우리 중 대다수는 지식이란 비인간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살면서 치러와야 했던 수많은 시험들이 이러한 잘못된 관념에 일조했으리라 생각한다. 지식은 앉아서 줄 치고 문제 풀면서 얻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주인공 이름을 모두 하나하나 써가며 벌어진 사건을 논리 정연하게 써 내려가는 것만이 좋은 독후감이 아니다. 그 복잡하고 힘든 이야기를 읽고 든 생각이 '배고프다. 짜장면 먹고 싶다'같은 것이라면 그것 또한 하나의 공부다. 영웅 같은 주인공이 얄밉고 재수 없다면 그것도 또 다른 지식이 될 수 있다.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을 수면 위로 올려보고, 경험해보고, 그럼으로써 공감할 준비를 해가는 것은 책을 읽는 묘미 중 하나다.



독서 규칙


밥을 먹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누군가는 시끌벅적한 맛집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하는 식사를 좋아할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연에 둘러싸인 조용한 한정식에서 차를 기울이며 풍경을 감상하는 식사를 좋아할 것이다. 너무 극단적인 예시였을 수도 있지만, 이 두 극단 사이에는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식사 환경 취향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음식이 맛있으면 다 무시될 수도 있지만.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꼭 도서관이나 카페에서만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이 두 장소는 바쁘디 바쁜 일상을 겨우 견뎌내고 있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거의 불가능한 독서 환경일 것이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하거나 좋아하는 영화 예매까지 취소하면서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요즘 책을 읽지 않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다음처럼 얘기한다.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어
-도서정가제로 책값이 비싸져서 못 읽어
-들고 다니기 무거워서 못 읽어
-그냥 읽기 싫어


사실 마지막 답변 빼고는 의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다. 정말 책이 너무나도 싫은 사람이라면, 뭐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도, 이미 마음이 배부른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책이 꼭 싫어하는 음식의 향기를 풍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 역시도 '시간이 없다'라는 이유로 한동안 책을 안 읽었다. 그러면서도, 역설적이게 네이버의 모든 기사를 꼼꼼히 섭렵하고, 친구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변경 사항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요즘 패션 트렌드가 어떤지 수십 개의 쇼핑몰을 통해 확인했다. 그래서 시간이 없었나 보다. 아니면 읽기가 싫어서 시간의 공백에 끊임없이 다른 것들을 채워 넣었나 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책을 읽고는 싶었다. 그래서 일단 책을 들고나 다녀보자라는 생각에 가방에 항상 책을 한 권 넣고 다녔다. 아무래도 눈 안에 들다 보니, 괜히 휴대폰을 하다가도 10분씩은 읽게 됐다. 서서히 내가 책을 읽기에 가장 편하고 적절한 시간과 장소를 찾아냈다. 출근과 퇴근을 하면서 꼭 타게 되는 버스에 앉아서 20분~30분 정도 읽는 책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책에 눈길만 잠깐 주면 되는 시간이다. 나에게도 그랬다. 만화 삼국지 한 권과 읽고 싶었던 소설을 한 권 가방에 넣고 올 때와 갈 때 서로 다른 책을 읽는 용기도 발휘했다. 생각보다 금방 책 여러 권을 끝까지 볼 수 있었다. 끈기는 먹는 건 줄 아는 나로서는 대단한 성과였다. 내친김에 공부하고 싶은 책으로도 시도해봤다. 역시 부담 없이 읽으며 공부하니 마지막 장을 넘기는 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뭐 꼭 모든 사람들이 버스에서 책을 하루에 한 시간씩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독서 규칙을 정했다고 해서 꼭 그것만을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스스로 책 읽는 모습이 뿌듯할 정도로만 읽기 시작해도 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책장 넘기는 촉감과 책이 든 가방의 무게 같은 것들이, 특유의 오묘한 매력 때문에 의외로 중독되기 십상이다. 읽지 않더라도 일단 들고라도 다녀보자. 어느 날 깜빡하고 책을 안 들고 나온 날에는, 괜스레 허전한 어깨가 어색하여 읽지도 않던 그 책이 보고 싶고 읽고 싶어 질지 누가 알까.


어떻게 읽을까


의외로 책을 읽는 방법도 다양하다. 다시 음식 얘기를 하자면, 책은 하나의 요릿감과도 같다. 대신 편식해도 탈이 안나는 요릿감이다. 역사를 좋아하면 역사만 읽어도 되고, 에세이가 좋으면 에세이만 읽어도 된다. 오히려 더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 속에서 숙성되고 쌓여서 더 깊은 풍미를 더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책들을, 어떻게 손질하고 어떻게 요리할 지도 모두 독자의 선택이다. 나는 기억력 부족으로 인하여, 어떤 책이든 마지막 장쯤 가면 첫 장의 이야기들은 너무 희미해진다. 그렇다고 다시 전체를 2 회독하는 일은.. 왠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은 '귀퉁이 접기'다. 좋았던 구절이나 중요한 이야기가 등장하면, 귀퉁이를 망설임 없이 접는다.

접자 접어

이렇게 접어둔 페이지들은 나중에 다시 책장을 후루룩 넘겨볼 때 좋은 길라잡이가 된다. 물론 알라딘이나 여타 중고 서점에 판매할 생각이라면, 이런 짓은 하면 안 된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접어놓은 귀퉁이로 인해 내가 편집한 책 한 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의 흔적이 묻어있는, 나를 위한 책이 완성된다.


요즘은 한창 인기 있었던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있다. 원래 인기 있다 싶은 책은 더 읽기 싫어하는 삐뚤어진 성격이지만, 오랜만에 공부하는 기분을 좀 내려고 구입했다. 이 책은 사실 들고 다니기에는 꽤나 도전적인 두께를 소유한 탓에, 들고 다니며 읽기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귀퉁이 접기도 할 수 없다. 페이지보다는 문단 기준으로 배울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어서 접기 시작했다가는 모든 페이지 귀퉁이를 앞뒤로 접어야 할 판이다. 그래서 약간은 다른 전략을 택했다. '메모하며 읽기'다. 챕터별로 나뉜 덕분에, 하루에 한 챕터씩 읽으면서 내용을 정리하면서 읽는다. 이런 책들은 너무 많은 내용이 담겨있어서 정리를 안 하다가는 머릿속에 아무것도 안남을 것 같아서, 두려움에 시작한 읽기 방법인데 꽤나 괜찮다. 어째 정리하고 보니 진짜 시험공부하듯이 정리가 돼있어서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하지만 가장 좋은 읽기는 아마 읽고 '이야기 나누기'인 것 같다. 토론일 필요는 없다. 책의 주인공을 데리고 헛소리를 하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읽은 내용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야 나에게 맞는 옷처럼 스며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시간이 자유로웠던 대학생 때가 가장 책을 안 읽었던 시기다. 교과서니 시험이니 하는 '억지 읽기'에 질린 것도 그 이유를 보탰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던 와중에 다시 책 읽기에 흥미를 느낀 것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선택교양 시간이었다. 마지막 학기쯤에 학점이나 채울 겸 들었던 그 수업이, 졸업하고 나니 손에 꼽을 정도로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줬던 듯 싶다. 그 어떤 형태도 정하지 않고 어떤 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주 즐겁고 풍요로운 경험이었다. 어느 날은 자신이 좋았던 구절을 공유하기도 했고, 같은 이야기를 서로 다르게 해석해보기도 했고, 어떤 캐릭터가 더 매력적인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날들 중 하루도 재밌지 않은 날이 없었다. (주인공의 흔들리는 사랑을 보고 어떤 한 학생이 다자간 연애에 대해 강력한 찬성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수업 하루하루가 다 배울 점이 있었다.





나는 전문 평론가도 아니고 책벌레라기엔 너무 책을 조금 읽는다. 그냥 책을 자주 들고 다니는 일반인이다. 이 글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책을 읽고 성장해야만 한다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이 바쁘고 힘든 삶에서 '책을 읽으며 자기계발을 멈추지 마라'라는 말은 또 하나의 폭력이자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책을 통해 삶의 호흡을 정리하고 '진짜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 우리의 어깨를 잠깐이나마 가볍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작은 목소리로나마 전하고 싶었다. 의외로 책 한 권을 가지고 내 삶을 이리저리 조작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쌓여있는 수백수천 권의 책들 속에서 내 맘에 드는 책을 고르는 일도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재미 중 하나다.


누구든 읽지 않은 책이 선반 위에 몇 권 쌓여있으리라 생각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한 번 매일 들고 다녀보자. 만나기로 한 친구는 삼십 분 뒤에야 도착한다는데 휴대폰 배터리는 0%를 향해 닳고 있을 때, 그 책 한 권이 당신의 시간을 구제해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이 책 읽기에 재미를 느끼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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