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고 싶을 때, 우울할 때, 우울하기 싫을 때 위로되는 우울한 노래
아는 사람은 안다. 우울할 때 밝은 노래가 얼마나 산통 깨는지. 듣는 나는 우울해 죽겠다는데, 새로운 사랑의 시작에 흥겨워 노래 부르는 그 목소리들이 얼마나 미운지. 자주 우울감이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우울한 노래야말로 진짜 위로가 되는 날들이 있다.
우연한 기회로 리차드파커스의 라이브 영상과 음악들을 접하면서 이 보컬의 무한 매력에 빠져버렸다. 소년 같으면서도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아마 동요를 불러도 이별 노래같이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애절하다. 1989년 생이라는 리차드파커스는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가수는 아니지만, 종종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하고 비스트의 양요섭과 콜라보레이션 하기도 하며 꾸준히 활동하는 듯하다. 인터뷰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라이브 영상도 많지 않아서 팬이지만 아는 것이 거의 없어 슬프다. 아쉽게도 '위로'는 youtube 영상 등이 존재하지 않아서 공유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Streaming 서비스에서 들을 수 있으므로 검색해서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위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 우울한 구석이 없다. 위로를 해주는 입장의 노래가 아니라, 위로를 간절히 바라는 죽기 직전인 사람의 노래다. 하룻밤도 못 잘 정도로 그리움에 사무친 가사가 리차드파커스의 목소리와 너무 잘 어울린다.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무한 반복 모드로 듣곤 하는데, 멍하니 몇 번을 듣다 보면 왠지 실컷 울고났을 때의 개운함 비슷한 기분이 든다.
언젠간 겪게 될 일이면
빨리 겪는 게 낫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라면 싫어
버릴만한 기억 고르고 골라 봐도
좋았던 것들뿐인데
깨끗이 지워야 하는 게 내 몫이라면
나 혼자서는 안돼 안돼 난 안돼
날 위로해줘 다 잊게 해줘
내일이면 괜찮아진다고 해줘
단 하룻밤만이라도
마음 편안히 잘 수 있게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가시 같은 추억들
다 남김없이 잊게 잊게
- '위로' 중
우울한 노래 추천하다 보니 '위로'를 추천했지만, 리차드파커스의 대부분의 노래들이 우울하고 애절하고 그러면서도 중독성이 강해서 무한 반복하기 십상이다. '자러 간다', '밖에는 비가 내려' 등도 아주 좋아한다. 아쉬운 대로 '자러 간다'의 라이브 영상만이라도 공유한다.
조원선은 그룹 롤러코스터의 멤버로 보컬 겸 키보드를 맡고 있다. 롤러코스터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다면, 일단 기타로 이상순이 속해있는 걸로도 들어본 분들이 몇 있을 거라 생각한다. 롤러코스터는 1999년 1집을 냈고 타이틀 곡인 '습관'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그룹이다. 제목은 어색해도, 들어보면 바로 '아 이 노래!'할 정도로 인기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노래다. 물론 습관 말고도 다른 곡들도 아주 좋다.
아, 아프다 견딜 수 없다
멍든 가슴을 움켜쥐고서 숨을 참는다
두 눈 꼭 감고 죽은 듯이
제풀에 식어 버릴 철없는 사랑에
나는 왜 생각 없이 전부를 걸었나
나는 왜 바보처럼 전부를 걸었나
- '아무도, 아무것도' 중
롤러코스터 속의 조원선의 목소리도 밝은 톤만은 아니라서 묘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아무도, 아무것도'는 우울한 매력의 극단에 있다. 높은 음정 자체도 거의 없고, 그래서인지 부르는 조원선도 아주 편안하고 꼭 맞는 목소리로 노래한다. 보통 보컬도 고음을 지르면서 사람들에게 쾌감을 주는 보컬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심장을 울리는 저음으로 눈물 나게 하는 보컬도 있는가 보다 한다.
이 노래의 또 다른 공신은 현악기들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조원선의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와 어울려 울림을 더해주는 첼로부터 곡의 흐름에서 하이라이트를 차지하는 바이올린까지, 이 곡의 클래식함을 더해줬다. 그래서 노래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젊고 예쁜 여자의 눈물 나는 이별보다는 중년의 우아한 여성이 남몰래 되짚어보는 이별 같은 느낌이다. 침착하게 서두르지 않고, 감정 하나하나 꾹꾹 눌러 담은 듯한 노래다.
사실 이 노래는 온전히 내 능력(?)으로 알게 된 노래는 아니지만, 나와 노래 취향이 가장 잘 맞는 친구가 추천해줬던 노래고, 듣자마자 한 번에 홀려버렸다. 원래 캐스커를 좋아하지만, 이 노래는 왠지 특유의 우울함 때문에 짙은이 부른 버전이 훨씬 좋다. 캐스커 버전을 들어보면 알 수 있지만, 상당히 가볍고 비교적 빠른 템포라서 그런지, 왠지 짙은의 버전에서 느껴지는 '찌질한 우울감'같은 건 없다. 분명 같은 멜로디고 같은 가사인데, 짙은 버전을 듣다가 캐스커 버전을 들으면 왠지 모를 상쾌함이나 깔끔함이 느껴질 정도다. 캐스커의 보컬이 여성인 것도 느낌의 차이를 만든 데 한몫했을 것이다.
특히 짙은의 '향'은(쓰다 보니 뭐가 곡명이고 뭐가 아티스트인지 헷갈린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곡의 초반부터 중간중간 깔리는 베이스 소리와 여린 피아노 소리가 일품이다. 우울하고 무거운 곡 분위기 속에서 피아노 소리는 더 약하고 여리게 들린다. 이런 대조가 더 우울한 느낌을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한다. 또한 곡의 시작부터, 중요할 때마다 나와서 곡을 든든히 받혀주는 베이스(혹은 그 비슷한) 소리는 짙은 버전의 '향'을 캐스커 버전과는 아예 다른 노선에 태우며 가장 강한 개성을 부여했다.
말을 하려 했지만 떼어지지 않던 입술을
안아보려 했지만 내밀 수가 없던 두 손을 알아주길
지독히도 어리석은 나였음을 하지만
옷자락에 스쳐간 지워지지 않을 향기에
무너져 내린 마음 무너져 내린 이 내 한숨을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너에게
- '향' 중
짙은의 라이브를 찾아봤지만 아무래도 기타 한대를 들고 나와서 부르는 라이브가 많았기에, 알찬 곡의 구성을 듣기 위해서는, 이 곡만큼은 라이브가 아닌 버전을 듣는 게 나아 보였다. 통기타 라이브도 듣기 좋지만, 아무래도 가슴 후벼 파는 베이스 소리나 기타 효과들이 없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라이브가 이 곡의 느낌을 충분히 전달하기에는 아쉬웠지 않나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안 사실은, 실제로 네이버 뮤직 기준으로 캐스커의 '향'보다 짙은의 '향'이 인기가 더 높다는 것이다.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