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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Aug 16. 2016

픽션 못지않은 다큐영화

추천 다큐영화 3종-더 픽사 스토리, 퍼스트포지션, 얀겔의 위대한 실험

흔히 적절하지 않은 시점에 지나치게 진지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친구들에게 우리는 '야 혼자 다큐 찍냐'라고 비웃고는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영화라는 장르를 접함에 있어서 스스로도 모르는 새에 '픽션' 혹은 '팩션(팩트+ 픽션)'을 기대한다. 그래선지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기지 않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이라고 다큐멘터리 장르를 아주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다. 여전히 재미있어 보이는 SF와 다큐멘터리 영화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SF 영화를 집어 들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우리가 그러리라고 기대한 것처럼, 딱-히 재밌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지는 가치와, 특유의 매력은 무시할 수 없다. 왓챠플레이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이런저런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에게 맞다며 추천되는 바람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호기심에 몇몇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접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진짜 자기 이름을 달고 자기 자신으로서 스크린 앞에 선다는 점, 픽션 영화들처럼 재밌고 복잡한 스토리로 에둘러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지만 그만큼 담백하고 명확한 알맹이를 가지고 있다는 점들은 보통의 영화들에서는 보기 힘든 매력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다큐 영화 3종을 추천하려고 한다. 주관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동을 줬던 <퍼스트 포지션>, 픽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픽사 설립과 영화 제작 과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더 픽사 스토리>, 마지막으로 도시와 자동차 그리고 진짜 인간을 위한 환경에 대해 심도 있는 화두를 던져준 <얀겔의 위대한 실험>이 그것들이다. 이밖에도 많은 다큐 영화들이 픽션 영화들 뒤에서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재미는 보장하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세상 어딘가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을 스크린으로나마 접해보는 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이다.


퍼스트 포지션(First Position, 2011)


발레는 일반인들에게는 별로 익숙하지는 않은 예술 분야이다. 직접 해보기는커녕, 발레 공연 관람조차도 손에 꼽을 정도다. 요즘에서야 발레 스트레칭 등을 통해 발레의 'ㅂ'정도를 좀 건드려보나 하는 시대지만, 피아노나 태권도, 수영만큼 보편적이라고 판단하기는 아직은 성급하다 싶다. 유명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발 사진 등으로 미루어보아, 아주 힘들고 체중 조절을 잘해야 하며 잔혹할 정도의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만 지레짐작할 뿐이다.

영화는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라는 대회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어린 발레 댄서들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주어지는 이 대회에, 세계 각지의 서로 다른 모습을 한 6명의 지망생들이 도전장을 내민다. 모두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발레를 시작했고 여전히 발레를 지속하는 데에 겪는 어려움의 정도도 다르지만, 무대 위에서 모든 댄서들에게는 5분의 시간이 똑같이 주어지며 그 시간만큼은 무대는 온전히 그들의 것이 된다.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며 무대에 선 6명의 댄서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결말은 직접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퍼스트 포지션이란 발레의 기본 첫 자세를 뜻한다고 한다. 진짜 프로 댄서가 되기 위해 첫걸음을 힘겹게 디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처음에 대해서 그리고 그 처음을 맞이했던 자세와 노력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정말 이 어린 친구들의 노력을 보면, 보는 이들 역시 힘이 안 날수가 없다. 


더 픽사 스토리(The Pixar Story, 2007)


 개인적으로 픽사의 영화 하나하나는 모두 내 기억 속에 걸작으로 남아있다. 토이 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벅스 라이프, 업(Up), 인크레더블, 니모를 찾아서, 인사이드 아웃 등등의 영화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추억들과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며 나를 울게 했었다.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어떤 실사 영화들 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픽사 덕분에 3D 애니메이션이라는, 이름만 보면 기술만 덕지덕지 붙어있을 것 같은 애니메이션 장르가, 가장 사람들에게 인기 있고 사랑받는 영화들로 자리 잡았다. 

이런 픽사 덕후이기에, 픽사 영화들이 만들어진 과정, 아니 그 훨씬 전으로 돌아가 픽사라는 회사가 어떻게 설립됐는지를 알게 되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웠다. 사실 픽사의 결과물인 영화만 접했었는데,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들과 감독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어보니, 마치 함께 작업한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으니 웃기는 일이다. 그러면서 픽사의 성공은 단순한 우연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운 작업 문화나 따뜻한 비판 문화 등을 보며, 픽사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오히려 실패하기가 더 어렵겠구나라고까지 생각하게 됐다. 


픽사의 기업 문화나 독특한 업무 방식은 많은 회사들이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대상이 되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픽사의 기업 문화는 픽사의 영화들만큼이나 '역사'를 지닌 것들이다. 하나하나 의미가 있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모양새만 따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언제나 자만하지 않고 작업해야 하는 요구 사항이 있어 자연스레 생긴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픽사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만큼이나 회사 역시 생동감이 넘친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진짜 기업의 철학과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각자의 개성을 지니게 됐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기원했다. 


얀겔의 위대한 실험(The Human Scale, 2012)



 얀겔의 위대한 실험의 영어 제목은 The Human Scale 즉 인간 척도이다. 인간 척도란, 도시나 주거 공간 설계에 있어 '인간을 중심으로'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단순히 사이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이 본디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터라, 사람들이 서로 쉽게 소통하고 모이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더욱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간 척도의 핵심이다.


언뜻 들으면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가 또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도시는 인간 척도가 아닌 '자동차 척도'로 설계됐다는 걸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차를 위한 도로는 보행자들이 걸을 공간을 더욱더 좁혀가며 보행자들의 숨통을 틀어막고, 여유 공간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아닌 더 넓은 도로나 주차장 공간으로 사용된다. 아파트들은 다닥다닥 붙어 사람들이 서로 모여 살면서도 서로에 대해 신경 쓰지 않게 만든다. 인간이 설계한 도시는 다시 방향을 바꿔 인간의 삶에 영향을 준다. 사람들은 점차 자동차에 밀리고 피신처 같은 아파트에 숨어 있는 삶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점차 도시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게 되며 생명력을 잃어간다.


추천하는 3개의 다큐멘터리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영화가 바로 이 얀겔의 위대한 실험이다. (개인적으로는 제목을 인간 척도로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세계 각 도시들의 모습을 통해 도시가 인간 척도로 변하고 아니고에 따라 얼마나 그 도시의 생명력이 되살아나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는 이 '실험'들의 분명한 결과물들을 보며, 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들과 차도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서울임에도 사람들을 위한 공간보다는 차를 위한 공간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몇몇 외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자면 대부분은 '거리'나 '공원'이 생각이 난다. 도시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걸어가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걷고 골목 카페에 앉아 쉬다가 공원에서 청년들의 춤 공연을 보기도 했던 그런 기억들 말이다. 인간의 본성은, 어쨌든 공동체에 있을 때 더 행복감을 느끼는지라, 층간 소음이니 뭐니 하며 이 좁은 아파트들에서 일어나는 싸움들도 아쉽고, 서울에서 돌아다닐 때면 안전하게 걸으며 사람 구경하고 거리 구경하며 여행할 구석이 없다는 것도 많이 아쉽다. 인간 척도가 너무나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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