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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Oct 05. 2016

담담함이 충만한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야기들

생각보다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크게 감정이 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마치 꿈쩍도 하지 않는 내 마음을 숨기려는 듯 감정을 더욱 강하게 표현하고는 한다. 웃기지 않은 일에도 소리 내 웃는 '리액션'을 하며, 텍스트로 전달되지 않는 (전달할 감정이 없음에도) 감정을 강조하기 위해 이모티콘과 스티커를 구매하고 마구 사용한다. 


이런 인위적인 반응의 교환들이 이루어지면서, 어느새 진짜 감정의 모양을 잊어왔다. 사실 감정이라는 건, 생각 외로 담담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화나면 소리 지르는 그런 단순한 등식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큰 돌을 던지든 작은 돌을 던지든 호수는 그저 잔잔하게 물결을 그릴뿐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에게 던져지는 수많은 감정들은 그저 조금씩 조금씩 온몸에 퍼져나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러한 '담담함'을 표현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일본 문학이나 일본 영화들 자체가 소박하고 일상적인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물론 아닌 작품들도 아주 많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거기에 수식어를 더 붙여,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담담함'을 영화로 표현해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렇게 생각하는 데도 나름의 까닭이 있다. 그의 영화는 포스터나 스틸컷만 봐도, 심지어 영화를 보고 있는 와중에도 그 잔잔하고 소박함에 되려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영화 속 인물들은 절대 담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길러온 아이가 남의 아이였다 거나, 아버지의 또 다른 딸과 함께 살아간다거나, 남자 친구도 있는 이혼녀가 전남편집에 머무른다거나,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떨어져 지내는 형제라거나.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그 일상은 더욱 특별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그럼 왜 나는 이 무미건조한 담담함에 끌릴까.


글쎄. 아무래도 같은 동양권에 속해있는 관람객으로서 이 담담함 뒤에 숨겨져 있는 무언가 들을 읽어내는 특유의 능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그냥 그 담백함이 좋은 것일 수도 있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당연히 등장했을 화려한 효과와 배경 음악들은 온데간데없고, 다만 사람 냄새나는 '시간'만이 영화를 채워나가니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인물들이 각자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가족으로서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기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모든 영화들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별 다를 것 없는 일상들이 우정이나 가족애와 같은 구수한 것들로 채워지는 과정에 흐뭇해지고는 했다. 


사실 그의 영화는 '매력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매력이라 함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인데, 그의 영화는 이러한 노력을 일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상을 차근차근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관객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하다. 거짓되지 않고, 과장되지도 않은 인물들의 반응과 말 한마디들에 그저 나도 모르게 동화될 뿐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스틸컷


일상이 위로가 되다


가장 힘들고 혼란스러울 때 위로가 되는 것은 '일상'이다. 전에 무한도전에서 윤태호 작가가 말했듯이, 일상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태풍이 몰아치는 날 잃어버린 복권을 찾겠다고 놀이터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태풍이 지나가고> 속 가족들의 모습이 바로 일상이었고, 매실에 이름을 새기며 매실주를 만들던 <바닷마을 다이어리> 속 4자매들은 각자의 삶의 버거움은 일상 속에서 까맣게 잊는다. 일상은 시간이 지나며 추억이 되고, 추억은 현재를 살아감에 있어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또한 우리 지친 학생들, 청년들, 어른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들이 아들에게, 아버지에게, 형제자매에게 건네는 말들이야말로 우리가 언제나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들이다. 영화의 일상 속 인물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가족 같은 존재로 다가와 위로의 말을 들려준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던 그는 사람과 일상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해 아주 적확하게 알고 있었나 보다.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야
- <태풍이 지나가고>

아이들한테 중요한 건 시간이에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셨어요.
-<바닷마을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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