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또 Jan 09. 2017

<너의 이름은> 후기 1편

꿈과 황혼. 너와 나의 모호한 경계가 엮이고 풀어지는 시간들. 

** 스포 많아요!! 


자주 언급하고 다니는 바이지만, 일본적 정서가 담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문학을 좋아하는 팬으로서, 정말 오랜만에 일본색 짙지만 대중성까지 겸비한 명작 애니메이션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바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너의 이름은>이다.

여러 버젼의 포스터 중에서도 가장 맘에 드는 풍경의 포스터. 

최근에 <라라 랜드>로 영화관을 찾는 많은 이들이 부쩍 늘었는데(심지어 서너 번 본 지인들도 꽤나 많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너의 이름은>의 행보 역시 심상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1월 4일에 개봉했지만, 이미 일본에서는 작년 여름즘에 개봉했고 영화의 배경 역시 주로 여름인 걸로 보아 우리나라 개봉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이미 <너의 이름은>은 일본 내에서 지브리 스튜디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애니메이션으로 랭크되며 많은 관객들의 감성을 마구 흔들어놓은 뒤다. 수익 면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지난주 기준 220억 엔을 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수익이 약 300억엔)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인생 애니메이션 영화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영화였다. 이미 그 증거로 브런치에도 많은 작가분들이 찬사 가득한 리뷰들을 올려주고 계시는데, 나 역시 그 흐름에 숟가락을 얹으려 한다. 


개봉 이후에 이미 두 번을 감상했고, 내일자로 세 번째 보게 될 예정이다. 처음 이 영화를 본 것은 지난주에 우연한 기회로 관람하게 된 특별상영회였다. 관람 직후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의 질의응답 시간까지 가졌는데, 질문과는 무관하게 이 작품이 신카이 마코토가 작정하고 만든 작품, 특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만든 작품임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여운, 희망적인 기운을 얻고 갈 수 있도록 짜인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입이 떡벌어질 정도로 수려한 혜성의 등장. 

개연성 면에서 까다로운 관객이거나 판타지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이라면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도 그러한 지인들의 반응이 별로 좋지 못함은 물론이고,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스토리의 촘촘한 개연성'이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물'을 통해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총체적인 분위기, 과장된 그렇지만 아름다운 연출을 통해 떨리는 감성, 구멍이 많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때울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엔딩 등은 상영관을 나서는 관객들의 등 뒤에 찜찜함이 아닌 안도감, 희망감 같은 것을 남긴다. 


특히나 <너의 이름은>에 대하여 가장 좋았던 것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황홀한 '다수의 모티프'들 덕분이었다. 하도 많아서, 두세 편의 글에 나누어서 적어보려고 한다. 이번 글에서는 타키와 미즈하 간의 '애매모호한 정체성'과 관련된 소재들을 먼저 끄적거려 본다. 제목 자체가 <너의 이름은>인 만큼, 둘의 몸이 서로 바뀌고 삶이 엮이는 데 있어 '이름'이나 '정체성'같은 것들은 아주 중요한 이야깃거리이기 때문이다. 


[모티프 1]  꿈 

둘 간의 모호한 경계. 기억나지 않는 당신의 이름.


가장 많이 비판을 받는 부분인 개연성 부분에서 영화의 편을 좀 들어주자면, 애초에 이 이야기의 소재와 이야기를 끌어가는 대부분의 소재들이 현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이유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대표적으로는, '꿈'이다. '꿈'은 이미 많은 영화들의 소재로 사용될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주제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는 과학적으로든 무슨 면으로든 꿈이라는 것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없다.


여러분은 꿈을 기억하는가?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다. 아름다운 꿈이든, 예지몽이든, 슬픈 꿈이든 꾸던 와중에 잠에서 깨고는 꿈을 기억하고 싶다고 노력하다가도 몇 시간만 지나면 그새 기억이 흐려지는 그런 경험 말이다. 꿈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흥미로운 소재가 되는 이유는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눈물을 흘리며 꿈에서 깨는데, 그 붓기가 얼굴에 남아있는 와중에도 이미 꿈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내가 왜 울고 있지? - <언어의 정원> 속 미즈하의 대사

주인공 타키와 미즈하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꿈을 꾸고 있는 느낌. 일어나면 다른 사람이 되었었던 것 같은 느낌. 눈물이 나지만 왜 우는지 모르겠는 경험. 분명히 누군가를 열심히 찾고 잊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애절함. 답답함. 


타키와 미즈하의 몸이 뒤바뀌는 경험은, 미즈하의 할머니가 계속 얘기하듯 꿈이나 마찬가지다. 당사자들 역시 처음에는 꿈일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지만 너무나 말이 안 되는 이 이야기는 '꿈'이라는 신비로운 포장지로 싸여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꿈이면서도 꿈이 아니었던 사건들 이후에, 이 둘은 꿈을 꿨던 것처럼 희미한 기억과 감정만을 갖고, 왠지 모를 답답함 속에 살아간다. 차마 확신이 없어, 미즈하의 뒷모습을 조금 좇아보던 타키는 금세 포기하고 다시 갈 길을 간다. 계속해서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느낌을 안고 말이다. 마침내, 우리가 꿈을 꾼 이후 데자뷔를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둘이 서로를 알아보고 만나고 눈물을 흘리며 첫 만남 아닌 첫 만남이 성사되고야 만다. 비로소 관객들은 아렸던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확실한 게 한 가지 있어. 우리는 만나면 분명히, 바로 알아볼 거야.
- <너의 이름은> 중 미즈하의 대사


[모티프 2]  황혼

경계를 허무는 시간.


<언어의 정원>을 본 사람들 중 일부는 <너의 이름은>에 등장하는 국어 선생님이 <언어의 정원>의 여주인공인 유키노 선생님이 아닐까? 하는 의문 혹은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실제로 <너의 이름은>의 엔딩 크레디트에 '유키짱 센세' 라는 이름으로 언어의 정원에서 선생님의 성우 배역을 맡았던 '하나자와 카나'의 이름이 등장한다.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팬이라면 재미를 느낄만한 장치였다. 

위가 <너의 이름은>, 아래가 <언어의 정원> (http://m.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4538&l=1442443)

하여튼 각설하고, 여고생과 남고생이 주인공인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영화에 등장하는 수업 내용 중에 하나가 바로 '황혼'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감이 온다. 황혼의 시간은 기적의 시간과도 같다. 황혼의 시간을 일본어로 읽으면 '타소가레'로, '게 뉘신지요'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날이 저물어 서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거기 뉘시오'하고 묻던 것이 어원이 된 것이다. 선생님 역시 영화 속에서 말하듯이, 모든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그런 시간이다. 


'게 뉘신지'하는, 이 황혼의 시간이야말로 영화의 중심축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시간이다. 제목인 <너의 이름은>과도 일맥상통하는 모티프이며, 실제로 황혼의 시간에 타키와 미즈하는 3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서로 만날 수 있었다. 타키와 미즈하가 꿈을 꾸지 않은 채로 유일하게 몸이 뒤바뀐 계기가 바로 이 황혼의 시간이기도 하다. 


거기 뉘시오?라고 저에게 묻지 마세요. 9월의 안개에 젖은 채 님을 기다리는 저인걸요.
- <너의 이름은>에 등장하는 만엽집의 시구


기적의 시간. 황혼의 시간. '거기 누구신지?' '너의 이름은?'


황혼은 앞서 언급한 '꿈'이라는 소재와도 많은 연관이 있다.  마유고로의 신사에 다녀온 후에 황혼의 시간을 맞게되자 할머니가 미츠하에게 '미츠하야 너 꿈을 꾸고 있구나'라고 말한 후에 타키는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다. 또한 타키와 미즈하가 마유고로 신사 앞에서 황혼의 기적을 통해 서로 만난 후 갑자기 꿈에서 깨듯 펜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것도 비슷한 계기라고 생각한다. (영화 중 유일하게 놀랐던 부분이다. 감상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 끝맺음도 없이 현실로 추락해버리는 그 순간 나를 비롯한 관객들이 갑자기 숨이 멎을 정도로 놀랐다.) 영화의 중요한 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티프 하나하나를 다루려다 보니 내용이 주제 없이 방대해지는 감이 있지만, 그만큼 이야깃거리도 곱씹어볼 소재들도 많았던 영화다. 영화를 보고 생각나는 것들과 흥미로운 것들을 적었더니 노트 한 바닥이 금세 꽉 차 버렸다. 한 편의 긴 글보다는 나눠서 여러 편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믿기에 일단 이 글에서는 두 가지 소재로만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