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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Jan 16. 2017

<너의 이름은> 후기 2편

무스비, 이름, 그리고 시간 

결국 이 영화를 3번이야 보고야 말았다. 


이제는 빨간 끈이나 아침햇살만 봐도 미츠하와 쿠치카미사케가 떠오르고, 이 영화를 여러 번 본 다른 친구들과는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들로 장난을 치는 것도 즐겁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반복되던 모티브들과 아름다운 장면들은 쉽게 기억에서 사라질 것들은 아닌 듯싶다. 


* 후기 1편 : https://brunch.co.kr/@netsgo0319/81 


[모티프 3]  무스비

엉키고 끊어지고 이어지다.


영화의 모든 이야기는 아무래도 '무스비'라는 단어에 모두 함축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늙은 할머니를 업고 신사에 쿠치카미사케를 바치러 가는 길에, 관객들은 무스비에 대한 막연한 하지만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가르침들을 얻는다.

또하나의 중요한 소재였던 미야미즈 신사의 매듭짓기

무스비란, 이어지고 끊어지고 다시 연결되고 엉키는 '연결'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시간'이다. 두 번째 볼 때까지는 그저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던 할머니의 말들이, 세 번째 들어보니 거의 스포일러 급이다. 무스비를 설명하면서 계속해서 '시간'을 언급하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고, 이어지고 끊어지고 연결되는 무스비의 의미 자체가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이다. (심지어 몸과 영혼이 이어지는 것도 무스비라는 이야기를 했다.) 


영화 내내 미츠하와 타키는 온갖 것들에 얽히고 연결된다. 서로의 몸과 영혼이 뒤바뀜은 물론이고 나중에 보니 둘은 3년이라는 시간까지 뛰어넘어 연결되어 있었다. 미츠하의 빨간 머리끈은 타키와 그녀를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어줬고, 결국 모든 기억을 잃고 나서조차 서로를 알아보는 중요한 소재로 사용된다. 이렇게 얽혔다가 끊긴 사이더라도 결국은 이어지는 미츠하와 타키의 관계 자체가 바로 '무스비'의 실사판이나 다름없다.


첫장면. 산발도 나름 이쁜 미츠하.

서양과 동양의 큰 차이라고 하면 바로 이 '사람 간의 이어짐'에 대한 내재된 믿음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주로 각각의 개성 강한 인물들이 각자의 독특한 능력, 힘을 통해 난항을 헤쳐나가는 것 혹은 그 개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서양 문학/영화의 큰 특징이라면, 동양 특히 일본의 문학/영화는 거의 정반대라고 봐도 된다.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인연, 관계, 사람들의 화학 작용,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들은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어 나간다. 그러고 보면 '무스비'는 단순히 이 영화의 주제에만 국한되었다기보다는, 일본산 이야기들의 대부분에 내재되어 있는 공통적인 소재, 감성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한 가지 더 귀여웠던 점은, 미츠하의 할머니도 미츠하와 똑같이 빨간 머리끈으로 항상 머리를 묶고 있었던 점이다.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장면이었는데 역시 세 번째 보다 보니 할머니의 빨간 머리끈이 보임과 동시에, 미츠하가 '어쩌면 오늘(혜성 떨어지는 날)을 위해 지금까지 우리 집안의 여자들이!'라는 대사를 쳐서 '이것도 무스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타키가 신사에서 발이 미끄러져 넘어질 때 보았던 미즈하의 탄생 역사를 봤던 장면도 인상 깊다. 타키는 빨간 머리끈을 손에 쥔 채, 마치 혜성이 정자가 된 모습으로 이토모리 마을로 떨어지면서 수정란이 되는, 그리고 미츠하가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해본 결과로는, 1200년 전에 떨어진 혜성으로 이토모리 마을이 생기고, 그 후로 대를 이어 미츠하의 집안을 통해 다시 지금의 혜성 사태를 막게 되는 미츠하가 탄생하게 된 또 다른 무스비가 아닐까 의견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전체 구성 역시 무스비이다. 영화의 처음에 마지막 부분의 독백 장면을 똑같이 삽입한 부분이 그렇다(실제로 시점도 똑같고). 억지라면 억지겠지만, 결국 먼 길을 돌지만 둘이 다시 만나게 된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하고 과도하게 추측해볼 따름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많다. 


1. 황천에서 다시 돌아올 때는 중요한 것을 바쳐야 한다는데, 타키가 자신의 몸으로 황천을 건넜다 오면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인 미츠하를 잊어버린 건 아닐까?

2. 혜성이 마을을 없애버리는 재앙은 일본인들에게 동일본 대지진의 기억을 살려주며, 당시의 가슴 아픈 결말과는 다르게 영화로나마 긍정적인 엔딩을 끌어내고자 한 감독의 의도가 보임

3. 혜성의 '갈라짐'(무스비의 반대)을 통해 미츠하와 타키의 고리가 끊어지지만 다시 둘 사이의 '매듭 끈(빨간 머리끈'을 통해 이어지는 것도 무스비

4. 편부모 가정의 자녀인 타키와,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집을 나가 할머니의 손에 길러진 미츠하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해피 엔딩을 맞는 것도 역시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불안전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아닐까?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지만, 분명한 것은 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독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길만큼 훌륭한 작품이었으며. 비록 동양권 밖에서는 큰 공감을 얻지 못할만한 소재더라도 자국민을 위해 희망적인 영화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선 손뼉 칠 만하다(특별상영회 때 들었던 이야기이다. 실제로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세 번까지는 아니더라도, 두 번쯤은 봐주면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눈에 귀에 들어올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미 본 관객들이라면 한 번 더, 아직 안 본 독자들이라면 한 번쯤 봐도 정말 시간 아깝지 않은 영화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비록 미츠하와 타키가 꿨던 꿈들은 그들의 기억 속에는 없지만, 관객들의 마음속에는 선명하게 남아 아름다운 혜성으로 반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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