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폭탄, <박열>

조선의 개새끼 박열과 일본의 또라이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

시사회 소식을 듣기 전부터, 왠지 모르게 <박열>은 나의 보고 싶은 영화 목록에서 꽤나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었다. 평범하고 예측 가능한 이야기들에 권태를 느끼고 있었던 터라, 영화 <박열>의 포스터 속의 이제훈의 표정만으로도 '이 영화는 뭔가 신선한 것이 있겠구나'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됐다. 

박열이란 인물 자체에 대해 알고 있었던 정보가 없었던 것도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좋게 평가하고 있었던 원인 중에 하나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정보, 새로운 감정,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갖게 해주는 것 역시 영화의 책임 중 하나다.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이야기의 조합. 거기다가 '실화'의 매력. 극장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이보다 완벽한 영화 관람 이유가 또 있을까. 

영화를 보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박열>의 포인트는 '신선함'에 있다고 본다. 항일운동, 일제강점기라고 하면 우리가 대부분 떠올릴 법한 장소는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영화 <박열>의 배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이다. 즉, 관객들은 기대했던 장소와 전혀 다른 곳에서 영화를 만나게 된다. 광복 전에 일본에서 살고 있던 조선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 역시 <박열>의 매력 중 하나다. 

박열과 그의 동지/연인 가네코 후미코

게다가 영화 속 박열은, 우리가 알던 독립운동가들과는 꽤나 다른 모습, 다른 성격을 지닌 '폭탄 같은 인물'이다. 영화 속에는 심지어 일제강점기 영화를 떠올리면 당연히 떠오를만한 요소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박열은 핍박받거나 고문당하고 눈물을 흘리고 한 맺힌 그런 인물이 아니다. 무리일까 싶은 것들도 모두 요구해서 가지고야마는 담력을 가진 인물이며, 자신의 적이 일본 민중이 아닌 일본 황제와 황태자라는 것을 아는 인물이며, 상대와의 거래에서 언제나 고지를 먼저 점령해내는 민첩하고 똑똑한 인물이다. 

그래선지, 영화를 보는 내내 어째 '이상하게 가볍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억울하고 화가 나는 사건들에 대해서 문제를 척척 해결해나가는 혹은 해결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그의 자신감이 관람객들에게 믿음을 줬다. 당하기만 하던 우리의 과거사와 다르게 일본 사법부, 일본 핵심 인물들에게 한 방 펀치를 날려준 박열의 이야기는 의심스럽지만 실화였다.

영화 <박열>은 오프닝 크레디트부터 당당했다. 보통 실화 기반의 영화와는 다르게, 자신감 넘치게 말한다.

이 영화는 실화 고증을 마친 영화이며,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존 인물이라고 자부한다. 그 뒤에 보이는 박열이라는 인물은 이 사람이 정말 실존했을까 싶을 정도로 '인간 폭탄'이었지만, 그 폭탄이 향해진 곳은 부당하고 악한 곳이었으며, 그와 그의 연인은 해피 엔딩을 맞지는 못했지만 충분한 반향을 가져와 이준익 감독의 손을 통해 오늘날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