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또 Apr 14. 2017

이어질 수 없던 것들을 잇다

<나의 사랑 그리스>를 보고 

** 스포일러가 될 내용이 존재합니다. 

** 브런치 무비 패스로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영화입니다.



세상에는 이어질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주위만 둘러보아도 그렇다. 불과 물은 서로 가까이 공존할 수 없으며 재벌가와 홈리스가 절친해지기는 쉽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나라, 같은 땅, 같은 지구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들은 우리 사이를 갈래갈래 찢어놓고 만날 수 없게 한다. 

<나의 사랑 그리스>는 바로 그러한 '벽'에 대한 이야기다. 벽을 세운 자, 벽을 넘지 못한 자, 결국 벽을 무너뜨린 자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서사시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는 '사랑'으로 출발해서 '사랑'으로 끝난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어떤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고 흥미를 가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로 '일상적이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가 매일같이 하는 행위, 예를 들어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기에 우리의 시간은 소중하다. 둘째로 '그럼에도 있을 법 한 이야기'여야 한다. 소위 있을 법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에게 우리는 '허세', '사기꾼', '공상가', '헛소리나 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가. 이런 조건들에 비춰보자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사랑 이야기나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의 불륜 이야기가 왜 그리도 흥미로운지 알 수 있다.

<나의 사랑 그리스> 역시 이 두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이야기다. 영화의 감독이자 두 번째 파트의 주인공으로 열연한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는 '그리스'라는 로맨틱한 장소에서 '사랑'이라는 뻔한 주제를 절대로 뻔하지 않게, 오히려 냉철한 현실적인 눈으로 그려냈다. 보는 내내 이게 사랑에 대한 영화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마음 졸이고 답답했다. 사랑이란 것이 정치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 앞에만 서면 이렇게도 가냘프고 나약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사랑의 힘은 대단하지만, 현실의 문제를 극복했던 극복 하지 못했던 그 결과는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사랑을 가로막는 경제, 사회, 정치적 벽이 있었다. 심지어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리스인들을 제외하면 모두 시리아에서, 스웨덴에서, 독일에서 온 이방인들이다. 하지만 그 벽 뒤에 남도록 결심하거나 혹은 벽을 깨도록 한 힘은 모두 사랑이었다. 첫 번째 단편 <부메랑> 속의 젊은 커플은 난민 문제라는 벽을 넘어 사랑했고, 두 번째 단편 <로제프트 50mg> 속 안정적인 직장인 두 명은 뜨거운 사랑을 나눴으나 결국 우울증 약을 집어삼키며 현실로 억지로 돌아왔으며, 마지막 단편 <세컨드 찬스> 속 노인 커플은 제목처럼 두 번째 기회를 맞이하고 서로를 보듬어 안는다. 


세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준 것 역시 사랑이라는 주제였다. 영화 내내 은근히 관객들에게 던져주는 '프시케와 큐피드'의 이야기는 바로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로서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삶에 날아들어와 사랑을 가르쳐주지만 결국 사랑(에로스)만으로는 완전히 채울 수 없는 사람의 마음(프시케)때문에 위기를 겪고 돌아서거나, 죽음을 맞거나, 떠났다가 다시 만난다. 


그리고 결국 세 단편의 주인공들은 서로 가족임이 뒤늦게 밝혀지는데, 이때 드는 섬뜻했던 감정은 차마 설명할 수 없다. 영화 속 사랑을 계속해서 방해하는 요소들은 결국 '가족'이었던 것이다. 사랑의 결과물인 가족이 사랑을 방해한다는 이 섬칫한, 하지만 있을법한 이야기는 관객들의 마음을 꽤나 불편하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감독의 파격적인 행보를 보아왔을 때(부모의 서로 다른 출신 지역, 어렸을 때 부모의 이혼, 연기자 및 감독으로서 활동하며 그리스 최초로 남성 간의 키스 장면 촬영) 왜 이런 설정을 그다지 아무렇지 않게 영화에 옮겨 담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결국 영화가 은근히 내비친 이야기의 목적은 마지막 단편 <세컨드 찬스>가 아닐까 싶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감독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를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그리스가 마주한 수많은 위기와 갈등들, 이 갈등들을 이어가면 맞게 될 것이 분명한 참혹한 사건들, 하지만 만약, 사랑이라면, 사랑으로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과 희망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려 노력했음이 분명하다. 


프시케를 포함하여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하지만 삶에는 한 번의 기회만 오는 것도, 한 번의 절망으로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두 번째 기회가 있다. 그것은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사랑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것일 수도 있으며, 경제적 정치적 위기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회는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직접 손을 들어 잡아야만 진짜 기회가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적극적인가 싶을 정도로 마리아를 향해 달려들었던 세바스찬처럼, 자신을 괴롭히며 삶을 고되게 만들었던 남편의 얼굴에 침을 뱉었던 마리아처럼, 삶과 사랑에 있어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 용기가, 선택지를 기회로 만드는 결정적인 힘이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옥과 싸운 악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