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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Oct 21. 2019

큰 스님(홍천 수타사 가는 길에)

- 낙엽의 퇴적

홍천 수타사 용담

 스님(홍천 수타사 가는 길에)

- 낙엽의 퇴적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큰 스님 계실까

찾아 나서는 이 길에

밤샘을 지키던 사천왕의 위엄도

짙은 안개에 잠을 청하고


새벽을 깨우는

목어의 힘찬 기상나팔 소리도

깊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에 잠기어 간다


큰 스님 깨실까 

일주문 다다르다 문득 귀 기울이며

새벽 참선의 목탁 소리도

안갯속에 묻히며 사라지고


이곳에 마음은 늘 경건하여

일찍 새벽을 여는 마음도

들려오는 경전의 독송 소리도


어느새 침묵의 묵언 수행만이 

이곳이  마음임을

간간히 비추는 햇살이 말해준다


암자를 돌아서 가면

큰 스님 머물던 반야의 자리에 올라앉아

안개에 모든 것을 맡긴 채


나는 안개가 건네준  기억을 말하고 

큰 스님의 말씀에

다시 시간 속을 배회하고 만다


고요한 산사에 발길을 여는 것도

내 발길에 묻어난

속세의 발거음이라

때가 묻어난 발길을 덮기에는

지나온 내 마음이 벌써 뒤따라와 버렸네


이들 조차 힘겹게 만들고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게 하였으니

안개에 소리마저 감추고

나를 진정 깨우는 것이 바로 너였나니


굽이쳐 흘러가는

귕소에 멱을 감기에는

내 몸 단장을 하기 보담도

차라리 용담의 이무기가 되는 것

계곡의 달을 가르게 할 것이며


공작산에 드리운 네 풍광에 날갯짓하여

해를 띄우니 깊은 수심의 마음도

어느새 머물던 수행의 고행은

한 낱 저 햇살에 감추기에도

미더운 존재가 되어가더라


수타계곡에 떠내려온 낙엽 한 장에

주눅이 들었다

괜스레 서글픈 마음 앞서지만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이 고요하고 적막한 산사에 들려줄 이야기에

곧 불어닥칠 풍랑의 기세는

오히려 독이 될까

누가 될까 염려되더이다


낙엽 따라 떠내려가는 마음

낙엽 따라 돌아가는 발거음


가는 길목마다 멈추고

다시 떨어지는 낙엽이

그 위에 무게를 더하고 휩싸인 채

멈추어 버린 마음들은 

늘 지나온 발길을 더욱 무겁게 만들고

  

안개는 이들로 인하여

곧 태동이 움직임을 볼 것이고

그럼 난

가슴을 조이며 지나오는 마음에


나의 발길도 그들을 벗 삼아 

어느새 그곳을 지나는 낙엽 따라

흘러가는 초동의 마음을 지니게 한다


2019.10.20  홍천 수타사 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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