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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사계

- 겨울잠 자는 나무

by 갈대의 철학

나무의 사계

- 겨울잠 자는 나무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하늘은 나무의 아버지

늘 바람과 구름을 몰고 다니며

하늘의 기운으로

대지에 비를 내리며 젖시우고

바다에 비를 거둔다


대지는 나무의 어머니

하늘에서 내려준 비로

땅의 기운을 받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며

추운 겨울 오랜 산고를 치른 후에

봄에 온 산천이 떠나갈 듯이 포효하는

대지의 지축을 움직이게 하고

따뜻한 햇살에 새 생명을 비추 운다


[겨울잠 자는 나무]


나무야 겨울잠 자는 나무야

점점 추운 찬바람 불어오는데

너는 사람처럼 옷을 입지를 않는구나


내 몸에 붙어 있는 마음마저 벗어버리고

홑이불 걸 치우듯 모두 벗어버리고 나면

봄이 오기 전에 너를 깨어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눈 내리는 허허벌판을

내 친구 인양 벗하며 하얗게 수놓고

넓은 아량의 마음으로 대신하는 너는

눈 덮인 산야에

진정으로 벗어버려야

나의 삶이 되어가야 하는 나무의 일생을 지녔구나


떨어지는 낙엽 위를 밟고 지나가며

내 아닌 다른 마음을 지키려는

너의 숭고한 마음이 있음을

봄 햇살에 움을 터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익히 몰랐었다구나


그 긴 겨울에

대지의 마음을 깊이 간직하고

이듬해 아지랑이 피어날 때

봄에 새 옷을 꺼내 입고

더운 여름날에

푸른 옷으로 네 몸을 가리는

너의 수줍은 모습을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의 마음을 담고

시집온 새색시의 마음에

가을바람 불어오는 소식에 낙엽 떨어 떨구고

붉게 물든 낙엽 주워 담아

부끄러움 얼굴 숨길 세라 연지곤지 얼굴 붉히네


청사초롱 불빛 아래

어슴프레 긴 밤 지새울 겨를도 없이

초롱 등잔불 아래

점점 깊어만 가는 가을 녘을 바라볼 때의 마음이

가을 달밤 창살에 비친

떨어지는 낙엽의 마음을 닮았더구나


새벽이 밝아올 쯤에

만추 되어가는 가을에

정한 수 한 그릇에 색동옷 곱게 갈아입을

너는 님 마중 나갈 채비를 서두르고


겨울에는 앙상한 전라가 되어가는 것이

진정 내 삶의 일부분이자

네 일생이 되어가는

앙상한 볼모의 마음을

평생 네 곁에 두었을지도 모르겠더구나


2019.10.27 짙은 안개 드리운 금대 트래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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