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불어온다

- 가을에 담긴 마음

by 갈대의 철학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 가을에 담긴 마음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봄에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을 맡겨보니

나는 봄을 타는 아지랑이에
버거워하는 나비보다
더 가벼운 남자가 된다

여름날에 불어오는 바람에
온 몸을 맡겨보니
금세 내리는 소낙비보다

더 거칠고
더 거세고
더 많은 땀방울을 적시며

그래서
더 부드러워진 남자가 된다

가을에 불어오는 바람에
두 팔 벌려
가슴을 쓸어안을 수 있는

너를 위해 마지막 포옹을 위해
마지막 온정의
여력을 남겨두고 떠나는

나는 이 가을을 기다리는
마지막 가을 남자가 된다

차가운 겨울바람 불어오기 전에
금세 사라지고 빼앗길지 모를
너의 마음을 위로하며 감싸주고

찬바람 불어오는
남쪽으로
발길 떠나는 나그네가 된다

겨울에 불어오는 바람을
피하지 말고 부딪혀 보자

설렁,
다가올 찬서리 내릴
바람 불어 시린 가슴이 오더라도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빙벽의 마음들을 위해

내 마음 곳곳에 구멍을 내어
새어 나온 숨소리가

풀피리 삐리리 삐리리 삘리리리
들리는 소리에
마음 건네주는 바람은
나의 바람이 아니다

그 바람에 맞설
대항마를 키우는 것도 아니며


아직도
내 강심장은 뚫지를 못한다

어떠한 외풍이 불어와도
어떠한 내풍이 불어오더라도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따라가는
갈대의 마음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한 때에 지녔던
내 마음의 동화 속 이야기가
의미 없는 너에 대한 환상을

이듬해 피어날
잠자고 있는 내 코 끝을
살며시 간지럼을 태우는 아지랑이에
기침을 하며 동면에서 깨어난다



2020.8.27 태풍 오던 날(화시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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