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이렇게 기다리게 하소서

- 가을의 바램

by 갈대의 철학

가을엔 이렇게 기다리게 하소서
- 가을의 바램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하늘이 높아 보인다고
가을이 성큼
그대 발아래 다가왔다고 말아주소서

하늘이 높아 보이는 것은
단지,
그대 마음이 이미 가을로 접어들어
그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있어서라고 말해주세요

십리 먼 산이 가까이 보인 다고
가을이 그대 눈 앞에
다가섰다고 말하지 마소서

먼 산들이 가까이 보이는 것은
그대의 마음에 갇혔던
지난 탁한 마음들이
눈에 걷혀가서입니다

지난여름에 막혀있던
청허(晴虛)한 울림이 들려온다고
가을이 바로
턱 밑에 다다랐다고 말하지 말아 주소서

가을은 그대의 가을은
그대가 기다린다고
그대가 머뭇거린다고
그대의 그리움이 되어간다고 하여

가을은
언제나 미완성의 퇴고이며
가을은
언제나 채우지 못할 미련으로 남으니까요

나의 가을은
그대의 가을은
이미 시간 속을 배회하고 있어요

가을이 그대 귓가에
들러온다고 말하지 마소서

귀뚜라미 울음 풀벌레 소리는
지난여름에
이미 예고된 가을이
준비되어 왔었다는 것을요

머릿결 부스스 한 마음이
차분히 내려앉는 마음이고
여름 내내 길게 내쉰 숨소리가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온다 하여
가을이라 불러보면

다가올 가을에
갑자기 냉기 서리며
단풍이 물들어 가기 전에 눈이 내리고

겨울 채비도 없이 추위가 오는 것이
진정 그대의 가을인가 묻고 싶어요


2020.9.5 치악산 자락 트래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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