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과 보름달

-양력 2016년 10월 15일 = 음력 2016년 9월 15일

by 갈대의 철학

땅콩과 보름달

- 양력 2016년 10월 15일 =음력 2016년 9월 15일


시. 갈대의 철학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에 있었던 일


신도 붙지도 안았고

하늘도

우주도

지구도

그냥 평온하였다


아침에 안개에 파 묻히고

안갯속을 뚫고 안개 걷힌 산으로 올랐다


땅콩을 깠다

봄에 씨 뿌려 봄 여름 가을 지나

땅콩을 수확하고

창가에 볕이 좋은 곳에

몇 날 며칠을 두고 바짝 말렸다


그리고 대망의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커다란 대소쿠리에

광주리 한 가득

신문지를 펼치고

말린 땅콩 껍질을 깠다


땅콩 껍질이

오랜 창가 햇살에 오지게 드리운 채

곰팡이가 서려있을까

염려하였지만


매번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굴려주니

골고루 아주 잘 말렸다.


볕에 잘 말린 덕에

촉촉히 젖셔져 있던

땅콩 껍질은 점점 팽창 단단하여


양손의 껍질 까기가

여간 순조롭지 못한 것이

비단 엄지에 물집이라는

작은 포망이 안겨다 주는 쾌감만이 아니다


물집이라는 이유없는 반항이 생겨서

잠시 휴전 상태인 것이 천만 다행이다


너무 잘 말린 탓에

땅콩의 껍질은 더욱더 희게 되고

단단하게 그들만의 압착 밀폐 공간을 만들었다


마치 소라게 껍질처럼

또 하나의 집단체를 형성해 가면서


속에 들어있는 땅콩 한 개를 까 보니

수줍은 그녀의 홍조띤 볼살을 닮았다


그동안의 수확과 노력의 결실을 보듯

굵고 천연된녀만의 가을햇살에

녹아 내린 그을린 피부색을 또 닮았다


땅콩 색과 특유의 비릿한

그리고 밤꽃 향기 같은

냄새가 입과 코를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볶지 않고 그냥 먹은 것과

쇠 달구에 볶은 땅콩의 맛은

천연히 다르다.


땅콩을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할 수 있다고

변비도 생길 수 있다면서


그러나


너무 많이 먹지만 않으면

부족함의 미덕을 덜 채워갈 수 있을텐데


부족함과 단단함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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