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들녘

- 퇴색된 마음

by 갈대의 철학

텅 빈 들녘

- 퇴색된 마음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봄바람 따라오다

자작나무 숲 속 길을

나 홀로 걸었네


불어오는 바람에

자작자작 거리는 소리 따라

걸어오던 길은 님 부르는 소리


이리저리 치이는

그대의 봄 치마가

안쓰럽게 나풀거릴 때가 좋았더구나


봄바람에 이고 지며

덩실덩실 어깨춤에 흥얼흥얼 거리던

치마바위 능선 사이 사잇길을 걸을 때면


깃발처럼 펄럭 펄럭이며

나풀거리는 그대의 머릿결에 묻어난

어여쁘게 피어난

순수 소녀의 마음이 보고팠다


또다시 불어오는

예사롭지 않은 바람에도

네 마음을 넘지 못한 높새바람에 걸린

내 마음만을 탓하지도 못한 마음이

흘러가는 구름보다

더 얄밉게 다가서고 말았더구나


텅 빈 가을 하늘 바라보면

황금 들녘을 바라보며

걸어왔던 때가 언제였던가

이 길을 걷노라니


발길에 이리저리 치이던 낙엽이

안쓰럽고 내 지나온 옛길에 물어 물어

변해버리다 잊혀버린

옛 마음 찾아 나선 기억 저편에는


단둘이 사랑을 나누었던

보리밭 숲길을 거닐던

그대와 단둘이

숨바꼭질하던 때가 그리웠어라


내 지나온 어릴 적 뛰놀던

이곳에 다시 올라서니

다시 찾아오는 발길에 묻어난 것은

지나간 발자국에 짓눌러 밟혀버린

한 청춘이 지나간 흔적이 되었지만


아직도 달려보지 못할

이 황야의 들녘에 남겨질

어느 발바닥에

매달려 끝내 떨어지지 않은

이름 모를 낙엽 하나는

숲이 되어 남는다


2021.11.6 섬강 들녘을 거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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