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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Jan 09. 2023

굴비의 인생

- 갈대의 인생

굴비의 인생

- 갈대의 인생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꺼벅 꺼벅 꺼벅이

꾸벅꾸벅 꾸벅 이

껌벅껌벅 껌벅이

깜박깜박 깜빡이


잡혀서 엄살도 부리지도 못한 채

두 눈도 감지 못하고

무엇이 그토록 비참하게

뚫어져라 바라보느냐


너는 속세를 떠나면

체면 구길 사이도 없이

만인의 밥상 위에 놓이거늘

그 무엇이 심통하다 못해

또 한 번 입을 벌리고

무슨 곡조가 그리 많은 게냐


내 심히 너를 아울러 보듬나니

어서 오라 굴비여

해풍에 노 젓는 뱃사공의 노래에

숨은 뜻은

너를 잡음으로써

내 새끼 굶기지 않고

나라님 밥상 위에 놓일 내 처지는

굴함도 아니니


그 맛의 영통함의 짭짤함은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가 되리오

하여 내 심히 너를 어여삐 여기어

하사하노니


굽이굽이 돌고 돌아  

어진이 밥상 위에 놓일  마음은

너는 오랜 세월에 해풍에 절인 몸이라

굽었지만


나는 굽신굽신하여 돼지처럼

하늘을 쳐다볼 수가 없기에

이 젊은 청춘에 등하리가 굽어

너처럼 닮아가니


우리는 한배요

한 마음이 되어가더구나


오 가엾어라 굴비의 인생아

나는 먹지 못하여도

사랑님 얼씨구나 지하자 맞장구치면서

진수성찬 보다 더 귀한 맛을 전해드리니

어이하여 너의 마음을 용왕님이

갑지 않게 대하리오


그러니 너무 염려 말거라

고등어 머리는 연탄불에라도 구워

모조리 한 잎에 사라지는데

너의 머리는 어두육미가 되지 않더냐


그 알량한 마지막 자존심은 지켰으니

지금에라도 나를 범상치 않게

용서해 주면 어떻겠느냐


2023.1.7 풍물장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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