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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Jul 18. 2024

배롱꽃의 마음

-  유리병 밀알

배롱꽃의 마음

-  리병 밀알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한잎 두잎 따다 모아둔

우리 어머 시집갈 때 

백년해로 꽃신 신고 떠나와


님 떠나 가시는

그 발길 위에

올망졸망 그립던 얼굴은


올 때는 땅의 짚신을 신고

떠날 때는 꽃비 내리듯

배롱나무 꽃잎 따다 가시는 발길

버선발이 꽃잎 인장되어

낙관落款의 사랑했던 마음들


사랑의 길이

그토록 어려워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 되어

먼 길 가시는 길

배 떠나는 선착장엔

시집올 때 신주 모시듯

세월의 손에 의지도 못하고

꺼내신 지도 못한 채 남겨둔


뽀얀 먼지 속의 고깔 속

꽃신의 하얀 마음이

안개 낀 강을 건너는  

음이었으랴


그래

자연은 쉼 없이 변화하고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이라도 치는데 말이다


하물며 사람의 바람의 끝은

유리병 속 밀알로 가득 채우고

또 채워가는 마음을


속세의 때를 씻어내지 못한

그해 흰 겨울 눈이 내리던 날

가득 찬 거울에 

안개 드리우듯 걷어낸

나의 또 다른 전라의 분신들


나는 이윽고

우리들 욕심의 거울에

허덕이고 배고파하는

나의 잃어버린

또 다른 자화상을 발견하고 말았네


2024.7.17 청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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