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어民魚

- 추억의 한 소절

by 갈대의 철학
천사의 섬 임자도. 장지우

민어民魚

- 추억의 한 소절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한여름

임자도 뱃길 따라 떠나와

뱃고동 소리에 놀라

긴 꼬리 치며 내쳐 날아오르듯

은빛 민어가 햇살에 윤슬 되어

날아오른다


민어가 춤추는 하우리 항구에

저녁 석양빛에 물드는 갯벌 항구는

노을이 잿빛 수를 놓고


배 떠날 채비에

항구에 서로 경쟁하듯

즐비하게 정박해 있는 어부들의

초심은 늘

만선의 부푼 꿈을 안은채

수평선을 향해 나아간다


동이 트기 전

물때에 맞춰 하나 가득 채워 떠나가는

조그마한 이 항구에

가슴이 웅장해질 수 있는 용기가

어느새 나의 마음도 따라 떠나가고


파도가 들이칠 때 떠날 수 있는

저 망망대해로 향한

힘찬 뱃고동 소리와 함께


출항하는 갈매기떼들의

아우성치는 울음소리는

이미 벌써 마음은 만선이 된다


물결을 헤치며 바람을 가르고

저 뱃머리에 펄럭이는 깃발에

만선 되어 떠나올 때 마음은

고향을 품은 엄마의 바다가

함께 춤을 출 때


자 들어보라

노스탤지어의 향수에 취해 돌아오는

뱃사공의 어부들의 힘찬

고래 심줄의 목소리를


이 드넓은

바다의 숨결을 진정으로

호흡하며 느껴보라


나의 심장은

당신의 처녀시절

순수한 사랑에 밤잠을 설치며

나의 강심장을 뛰게 만든 첫 마음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


자 느지막이 하우리 항구에

태양의 웃음은

은빛 바다를 반짝이게 한다


갓 잡아 올라와 춤추며 뛰노는

내 청춘에 민어의 꼬리 떼들이

파도의 잔 물결과 만나


내 지난 소리 없는 아우성이

바다에 목청껏 소리 내어 지를 때마다

바다는 언제나 고요의 평정심을 감싸고

잔잔한 파도에 성을 던져버린다


그물을 건져 올리는 어부의 힘찬 목소리

그곳에 먹잇감을 얻으려는

갈매기 떼들의 힘찬 사투와

은빛 햇살을 가르며 발버둥 치는

민어의 힘겨운 필사의 몸부림이

한데 어울러


합창이 떼창 되어 모이고

한 목소리 들려오는

저 민중의 함성의 소리들처럼

함께 울부짖어 보아라


이곳에서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민어의 처절한 소리들을

함께 들어보지 않겠는가?


이 얼마나

숭고한 숨고름에

한 접시의 기대감 속에 떠오른

추억 속 애환의 한입이 주는

그리움의 사랑이 묻어난 그 맛을


우리 함께 이곳에서 다시 만나

지난 사랑의 애틋함을

곱절하지 않겠는가?


하얀 은접시 위 소반에 올려진

갓 시집온 새색시의 옷고름이

애처로워라


어디서부터 풀어헤쳐야 할까나?

머리에 씌운 족두리에

사랑을 먼저 벗어볼까?

민어의 회를 먼저 빚어줄까?


옷 저고리 숨고름에 가슴 동여맨

옷고름 먼저 풀어헤칠까?


아니면.

바짓저고리 옷매무시

옷매듭이 애처로워

먼저 풀어 젖혀볼까나?


민어회 한 젓가락에

그대 입속에 노 젓듯 노니는

휘감아 도는 이 감칠맛을

어디 누구에게 하소연할까나?


삼지창도 아니어도

나는 좋네라


젓가락 두 개에 건져 올린 사랑은

민어회 사랑

당신의 사랑


슬라이시한

얇디얇은 민어회 한 소절

살결을 담아


은빛 접시에 누운 민어회는

과연 누구를 위한
말없이 떠나온 계절을 말하려 함인가?


그대의 사랑보다 가깝고도 먼

이국적인 정감 어린 정취에
젓가락 끝에 닿은


그 투명한 생의 살결은
과연 소금보다도 소중한

맛의 인연으로 되어가지 아니하던가?


당신에게서 그 맛이

머무는 시간보다
떠나온 지나온 세월의 시간에

민어회 한 입에 걸쳐 녹아드는

시간들이 애석하고 통곡스럽다


빈속에 소주 한잔의 마음이

너와 나의

갸륵한 동병상련이 되어가도

나는 좋다네


너의 눈빛에 젖어드는 슬픔은

이 뜨거운

여름날 대미의 피날레에

팡파르가 울러 퍼지면


한 입 두 입 들어가는 식감을

대신하듯

나는 그대의 옷고름을

천천히 하나둘씩 풀어헤쳐 볼 거다

그대의 첫 입맞춤에 녹아드는

나의 무쇠덩이 마음이

그대의 첫사랑에 녹아내린 것처럼


임자도에 녹아드는

민어회 한 소절의 입맛이

어찌 입 안에서 노니는

당신의 입맞춤과 비교가 되리이까?


내 지난

두 사랑이 겹치는
기억의 파문이 일 때면


어릴 적 어머니 손에 이끌려

풍물장날 떠나올 때
시장 한편에서 맛본 그 맛이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

솥뚜껑을 열면 신선을 만나듯

갓 쪄낸 찐빵의 역사는

그 한 점이 주는 묘미가

특별했음을

바로 이맛의 초심 아니었던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노을빛에 홍취 되듯

점점 무르익어가는

여름날의 고요 밤바다에

민어의 맛은 기름진 당신의 살결


살짝 들리듯 내음 사이로

소주 한잔 한잔에 피어오르는

홍조 띤 그대의 얼굴에

사랑의 불꽃들이 피어날 때


사랑의 술잔에 기울어져

붉게 물든 노을빛에 녹아 퍼지는

감칠맛의 사랑은

너와 나의 운명의 장난질에
한 점 한 점 입안에 감도는 여운은


한 사랑에 민어 한 점

또 한 사랑에 민어 한점 먹을 때마다

피어오르는 우리의 사랑도

제철 따라 흘러 흘러 흐르다


어느새 짙어지는

바닷가 여름 밤하늘에

은하수의 잔 물결은


너와 나의 사랑도 씹고
바다의 마음도 함께 씹을 때

수평선 끝자락에 별 하나 아스라이

스쳐 지나간다


2025.8.4 신안 임자도 하우리 항구에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네모와 세모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