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 나신裸身 (지리산 반야봉般若峰)

- 새벽의 아침은 그리 부산스럽지 아니하였다(백두대간 종주길에서)

by 갈대의 철학

[ 2017.8.26. 지리산 반야봉 종주길에서 ]


반야 나신裸身(지리산 반야봉般若峰)

- 새벽의 아침은 그리 부산스럽지 아니하였다(백두대간 종주길에서)


시. 갈대의 철학[蒹葭]


새벽이 그리 엄습하지 않는 것은

새벽이 그리 길지 않은

나의 마음에

여력이 아직 남아 있어서이다


한치 대오 정렬의 부끄러움도 없어라

떠나온 시간만큼

도착의 시작은 또 다른 포문의 결정체

그대의 몫으로 남기련다


미련도 두지 않고 떠나왔으니

그곳에 대한 머무를 집착도 없었다

다만 그곳에 가면

왠지 서성거리고 있을

그대의 뒷그림자 밟아가고

왠지 아련한 옛사랑의 기다림이 묻어날까


태양아 저 햇살을 즐기는

장막의 그림자 앞서는 너의 마음이 있다

위용을 자랑타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의 대오 앞은 한치의 흐트럼도 없는

다가올 역사의 순간이다


자 장막을 걷어가다오

너의 땀의 농도는 곧 당도로 바꿔

담도의 위대함 앞에 그날의 두려움은 사라지리


그대 앞에 서면

부끄러움도

창피함은

오히려 당대함을 품었다


문정마을 다다랐을 때

밤하늘 동이 틀 무렵의 마음은

누구든지 수문을 열어주고 싶은

나만의 수문장이 되어

그대에게 빗장이 되어간다


새벽에 떠도는 영혼을 달래고자

위로함도 되지 못함은

아직까지 나의 청춘이 남아있어서 일지

안타까운 마음은

동이 트고

나는 그 햇살을 아무런 이유도

거리낌 없이 아주 덤덤히 받아들인 것이다


이곳에 예전에 마음이

아직까지 남아있어서일까

돌아서서 남이 되어

헤어짐의 아픈 때문이었을까


밤하늘 별들과 함께한 그 자리에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어 돌아오건만

떠나간 내 사랑은 만나면 무너질지 모를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 마중 나갈 마음인가


겨울철 대표적인 별자리가

가을을 마중나욌다

동쪽에 오리온 별자리가 움을 틀었다


새벽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 틈바구니 속에 한 별이 되어 떠나는 나그네

저 밤하늘 어느 누군가의 별이 떨어질까

저 떠도는 수많은 별들 중에

떠도는 나의 영혼은 어느 별에서 왔을까


그대의 별은 어디요

그렇게 많고 많았던 뜨겁던 여름날의 별자리는

그중에 어느 한별이 여름철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을까


그 별을 찾으러 이곳 그 먼 곳까지

그 먼길을 따라왔건만

이제는 그대의 밤하늘 별자리는

그 뜨겁던 여름 장마철의 소낙비에 가리어

더 이상 빛을 내주지 않았네


숨은 그림 찾기의 별자리

그대 마음 머물던 곳엔

어느새 이제는

가을의 별자리들이 수북이 쌓여

다가올 가을 채비에 여백의 미를 남겨주기 위함일지 모른다

[ 2017.8.26. 지리산 삼도봉에서 바라보며 ]


지리산에 가면

못다 한 사랑도 이루어지고

밤하늘 별빛이 떨어지면

나는 그대의 별이 되어간다


그대의 별자리는

그해 천왕봉의 오리온 별자리였을까

나는 그곳에 여기에 온 이유를 묻어두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별자리를 캐려 떠나왔다


떠나온 능선이 어디인지

어느새 뒤돌아서서 바라보는 뒤안길은

걸어온 것에 대한 회한이 묻어나고

떠나온 것에 진한 너의 향수를 느껴본다

어딘지 모르지만

[ 반야봉般若峰 ]


문정마을~연하천대피소~명선봉~토끼봉~화개재~삼도봉~노루목~반야봉~임걸령~피아골삼거리~돼지령~노고단~노고단대피소~성삼재


삼도봉 지나 어디메쯤 더 가야 하나

갈림길 떠나야 할 길에 이정표를 묻고

떠나온 발자취에 가야 할 길에 묻는다


연하천 옹달샘에 목 축이고

토끼봉 지났을 때

님 마중하러 토끼 걸음 이면

한달음 박질 달려가 포옹할 것을


더디 가는 발걸음에 이내 마음이

저 한가로이 흘러가는 뜬구름만 못하고

발만 재촉하니 앞서가는 마음도 미덥지 못하네


화개재에 올랐을 때

악양 들녘에 하루 쉬어

섬진 강변에 한가로이 노니는

섬진강 뱃길따라 구비구비 흘러서 가는

노 젓는 뱃사공과 노래를 부르자꾸나


한참을 배회하던 마음도

어느새 삼도봉에 도착하니

길길 잃어 헤매던 마음이

조금씩 누그려져 가고

반야 나신裸身 전라 앞에 우뚝 서버렸다

[ 반야 타령가 ]


반야의 시작은 어디요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낙조 된 마음이

그대 사랑의 시작 이련가


열반의 끝은 어디요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구름 속 운해가

감추어진 그대 마음의 전부 이련가


해탈의 안식처는 어디요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일출된 마음이

떠오르다 지는 그 어머니 품속 이련가


반야봉에 올라서 보시오

이곳에선 모든 것들이

정지된 상태가 된다오


사랑도

우정도

미움도

그리움도

그동안에 쌓아왔던 정도


이곳에 머물면

정지된 시간 속을 배회하다 멈추고

예정된 시간 속에 가끔은

무얼 그리 해야만 하는지를 알게 되니 말이오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그대 마음이

한쪽은 그대 눈을 닮았으니

멀리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기르며


다른 한쪽은 그대 가슴을 품었으니

그곳에 서면 곧 그대 마음이 나의 마음이요

마음은 그대의 잉태가 되어가리다

[ 2017.8.26~27.무박 지리산 백두대간 종주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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