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몰랐을 나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나를 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가장 가까운 나를 잘 몰랐다는 것.
육아는 그 몰랐던 '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예전의 나는 그야말로 예스맨이었다.
부모님의 말에도, 직장에서도, '예'하고 따르는 게 편했다.
불편한 점이 있어도 굳이 문제 삼지 않았고, 이의를 제기하거나 개선을 요구하는 일은 내 몫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훈육 방식에 대한 가족들과의 의견 충돌 속에서였다.
밥을 잘 안 먹는 아이를 두고, 나는 "안 먹으면 밥상을 치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른들은 "어떻게든 먹여야 한다"고 했다.
놀다 기분 좋을 때 한 숟갈 더 떠먹이면 조금이라도 더 먹는다는 식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따라다니면서 먹이는 건 안 돼요."
말을 뱉고 나서, 나 자신도 놀랐다.
'아, 내가 이런 말을 이렇게 또렷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이후에 '의사 말 다 듣고 아기 못 키운다'와 '그래도 최대한 노력 해야 한다'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고, 겉으론 따르는 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경험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나'를 마주하게 했다.
육아는 내 안의 낯선 자아를 조용히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또 하나 놀라운 발견은,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
나는 늘 외향적인 줄 알았다.
누군가와 함께하면 에너지가 넘쳤고, 무슨 활동이든 혼자 보다는 함께하는 것을 선호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롭고 지루하고 답답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엄마들끼리 모였을 때 "요즘 언제가 제일 행복했냐"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대답이 '혼자'있는 상황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째를 낳고 시부모님과 한 집 살이를 했던 1년, 여섯 식구가 함께 사는 집에서 완전히 혼자가 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얼마나 귀한지 매일 실감했다.
'자유부인'이라는 말이 왜 존재하는지 온몸으로 체득했다.
진짜 자유를 위해선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어느 날, 아기를 재우고 책을 읽고 있는데 이런 말을 들었다.
"차라리 잠을 자지, 책을 왜 읽어?"
그 말에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그날 이후, 완전히 혼자가 될 수 있는 새벽 시간이 나의 도피처가 되었다.
모두가 자고 있을 때, 그 고요 속에서 비로소 나는 눈치를 보지 않고 나답게 존재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은 나를 다시 사람답게 만들어주었다.
아이와 하루를 함께 보내는 엄마의 역할도,
나만의 공간에서 고요하게 깨어 있는 내 모습도,
모두 진짜 나였다.
사람은 태어나 처음 2년 동안 일생에서 가장 급격한 성장을 한다고 한다.
아기의 눈부신 성장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나도 함께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몰랐던 내 안의 단단함, 목소리, 취향, 에너지.
그 모든 것들이 아이 덕분에 드러나고 있었다.
아이의 눈부신 성장을 지켜보며, 나 역시 함께 자라난다.
이렇게 육아로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