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드는 삶의 파도 속에서
아이를 향한 걱정 어린 말들이 꼭 엄마를 향하는 화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상처가 있으면 걱정이 우수수 쏟아진다.
모기 물린 상처, 넘어진 상처, 친구랑 있다가 갑작스럽게 생긴 불상사(?)로 깨물린 상처 등 작은 아이 몸에 상처는 더 돋보이기 마련이다.
"엄마는 그때 뭐 했어?"
예전의 나는 누군가 나를 오해하거나 몰라줄 때 억울함을 참지 못했다.
감정을 삭이지 못해 울거나, 반대로 감정 표현을 아예 닫아버리곤 했다.
그런데 그날,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상대의 감정을 먼저 떠올렸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이쁘실 텐데 그만큼 걱정도 크시겠지.'
'아마 자녀의 잘못을 모두 당신 탓으로 여기신 경험이 있으시기에 그러시지 않을까'
'나를 탓하려는 마음보다는 걱정이 앞서신 거야'
그때 처음으로 타인의 말 너머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한 것 같다.
나만의 감정에서 머물기보다는 상황을 보다 넓은 시각에서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더 이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대견하다고 느꼈다.
예전에는 '좋은 엄마, '좋은 며느리',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늘 타인의 기대에 맞춰 나를 조율했다.
그러다 보니 항상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려 노력해야 했고, 피곤함과 섭섭함은 자연스럽게 밀려들어와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에서 맥없이 밀려나고 쓰러지고 상처 입었다.
역설적이게도 나를 지키려고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는 이기적인 생각은 저절로 이타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나를 성장시켰다.
나를 지키는 연습은 곧 관계를 지키는 연습이었다.
모든 에너지를 밖으로만 주던 사람에서 안으로 향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하자 밖으로 뻗는 에너지도 더 따뜻해졌다.
신체 노동 육아의 시기가 지나면 훈육을 기반으로 하는 정신노동 육아의 시기가 와서 빈틈없이 나의 성장을 시험한다.
여전히 손주 제일주의의 시댁 분위기에 소외감을 느낄 때도 있고, 우리 딸 제일주의인 친정 분위기에 부담을 느끼기도 하며,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괜히 작아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모든 순간을 정면으로 바라볼 힘이 생겼다.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보고
탈 것인가 기다릴 것인가 판단하는 서퍼처럼.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나,
그 나를 기반으로 변화해 가는 관계들.
나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전보다 더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덜 억울해하는 법도 배웠다.
그게 내가 누리고 있는 조용하고도 확실한 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