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후에 오는 것들 (2)

by 늘연


그 주의 주말에 남편이 근무가 있어 집을 비웠고, 혼자 집에 남아서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의 반복되는 연락에 마지못해 냉장고 속 반찬을 꺼내 밥을 조금 먹은 것 말고는.


정신과에 근무하면서 대상자들을 통해 보고 들은 것부터 시작해 어지간한 일은 직간접적으로 겪어봤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에피소드가 흐르는 정신병동에서 마치 드라마 한 편을 본 듯한 과거력을 가진 대상자를 만나기도 했고, 급성기 증상이 심한 분들이 주로 입원하다 보니 공격적인 모습과 폭언은 너무 자주 접해서 아무렇지 않았고, 폭행도 여러 차례 당해보았다. 나만 보면 화를 내고 폭언을 하는 대상자라도 항상 같은 태도로 대하며 간호했다.


나라는 사람은 경험해 봐야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 겪어볼 것, 겪지 않을 것을 구분하기도 했다.


내 남편을 만나 임신과 출산을 겪어보기로 다짐했다. 나는 간호학과에 다닐 때 정말 운 좋게 분만실과 신생아실 실습지를 굉장히 바쁜 곳으로 배정받았었다. 당시에 실습을 가서도 출산을 한 번도 못 보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내 여성건강간호 실습은 출산이 많은 병원이라 바빴고, 신생아실도 아가들이 너무 많아 실습시간 내내 밥 주고 트림시키고, 기저귀를 가느라 손목이 아팠을 정도였다. 나름 임신과 출산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험이 있다고 여겼다. 아주 큰 실수였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도 보지도 못했다. 그냥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이 것은 유산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애초에 임신이 아니기 때문에 유실 정도이려나.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있는지 인터넷에 검색하다가 무기력감에 휩쓸려 손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종일 누워만 있었다. 다음 날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난 무기력한 모습으로 누워있었고 괜찮냐는 조심스러운 남편의 말에 엉엉 울고 말았다.


임신이라는 경험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 임신테스트기가 2줄이었다가 1줄로 변화하는 것을 경험한다는 건 여성건강간호학에서 배우지 못했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배우지만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