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후에 오는 것들 (3)

by 늘연


새로운 경험을 쉽게 봤다. 이게 오만이라는 걸까. 괜찮을 줄 알았다. 그리고 잘 될 줄 알았다.

과열되었다가 불이 꺼졌을 때

무력했다.

민망했다.

섭섭했다.


임신에 너무 연연했기 때문에 이렇게 무너진 것이다. 내가 집착하는 나쁜 사람 같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우울감이 심했던 기간 동안 가장 많이 관찰된 자동적 사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였다. 당연했다. 여성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임신의 과정이 눈에 보일리 만무하다. 의지에 따라 세포가 분화하는 것도 아니니 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없다. 하물며 삼신할머니가 점지한다고 까지 할까.


남편은 내가 이렇게 힘들어할 줄은 몰랐다며 함께 슬퍼했다. 실컷 울고 설 연휴에 시부모님 댁으로 내려가는 길, 붐비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려고 푸드코드 테이블을 잡았다. 테이블 옆자리에 갓 목을 가누기 시작한 아기와 함께인 한 부부가 우리에게 자리 있는 거냐고 질문했다. 아기는 유모차에 조용히 앉아있었고 칭얼대지도 않았다. 그 가족이 얼른 식사하고 떠난 자리에 아기를 안은 다른 부부가 앉아도 되는지 물어보고는 옆에서 식사를 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남편만 바라보면서 밥을 먹었다.


다시는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좌절하고 싶지 않으니까 고집을 부렸다. 남편은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려도 그렇게 하자며 나를 다독였다.


명절 연휴가 지나고 나서도 한동안 우울 증상은 지속됐다. 무기력하고 비관적이었지만 식욕은 평소와 비슷했고 다행히 수면패턴은 유지되었다. 약을 먹을 수 없는 지금,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타개하지 않으면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