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후에 오는 것들 (1)

by 늘연

잠시 우울이 나를 덮쳤었다. 다행히 DSM-5 주요우울장애 진단 기준에서 명시하는 2주를 채우지는 않았다. 몇 번 째인지 모를 이번 우울에 대해 기록해 본다.




조용해야 할 기다림이 매달림으로 변했을 때


어지간한 일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밑바닥까지 나를 무너뜨리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번 우울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작년부터 임신을 시도하고 있어서 월경주기에 맞춰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했던 날이었다. 임신테스트기 포장을 다달이 뜯어 쓰면서 어느 순간부터 임신은 나와 먼 이야기라고 여기게 됐을 즈음이었다. 4주 전 그날도 잠에서 덜 깨 눈이 떠지지 않은 채로 화장실에 가서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했다. 어기적 어기적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조금 더 누워 있었다.


시간이 돼서 보니 선명한 분홍빛 2줄인 게 아닌가! 생전 처음으로 보는 임신테스트기 2줄이었다. 그때의 기분은 정말, 와,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임신을 확인한 날, 출근해서 틈날 때마다 초기 임신부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검색하고 목록을 만들었다. 근처 분만이 가능한 병원도 알아봤다. 그날 하루 머릿속에서 이미 출산도 하고 산후조리원까지 갔다 왔다며 남편에게 농담까지 했더랬다.


하지만 착상 초기에 기뻐하기는 이르다. 임신테스트기를 통해 충분히 hCG호르몬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하고 산부인과에 가야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날 임신테스트기에 아침 첫 소변을 묻히고 남편과 5분을 기다렸다. 분홍색 선이 바로 나타나지 않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연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1줄만 볼 수 있었다. 그러고는 며칠이 지나서 생리가 시작되고 말았다. 정말이지 그대로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