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by 늘푸른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종필 감독, 2020년)을 재밌게 봤다. 영화 내용중에서 나와 비슷했던 부분으로 공감이 갔던 내용을 적어보려 한다.

삼진그룹의 8년차 동기인 말단 여직원들이 ‘영어 토익반’에 모인다. 진급 기준이 토익시험 600점이상 통과 시 대리 진급을 해 준다는 공고를 보고 나서다. 생산관리부의 직원‘이자영’, 마케팅부 직원‘정유나’, 회계부 직원‘심보람’은 각자의 꿈을 안고 매일 ‘영어 토익반’에 모여 공부를 한다.

1995년을 배경으로 한 이곳은 고졸 출신을 구별하기 위해서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커피를 타는 여직원들의 모습은 씁쓸하게 느껴진다.

나도 예전에 마트 사업부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던 때가 있었다. 전문대를 졸업한 나는 학력에 따라 면접, 교육 등이 줄이 달랐다. 계약직이긴 하나 직원이었는데, 유니폼이 아르바이트생들과 같아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정직원과 계약직 직원의 옷을 구별하는 것은 참 속상하고 씁쓸했었다. 나도 삼진그룹처럼 토익점수나 역량평가로 계약직 직원에서 정직원으로 전환하거나 진급의 기회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내가 일 하는 동안은 유니폼만 바꾸어 주었을 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담당으로 업무를 배우면서도 한 계단 더 오르지 못하는 좌절감이 컸었다. 일은 힘들면 참을 수 있었지만 목표가 없으니 상실감이 크고, 쉽게 포기하고 떠나는 동기들도 많았다. 나 또한 몇 년을 고비로 그 곳을 떠나고 말았다. 누군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아쉬움이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누군가가 와서 빈자리를 메운다. 그 것 뿐이었다.

삼진그룹 여직원들은 토익시험 600점을 넘으면서 대리로 진급했다. 유니폼도 벗고 원하던 일들 또한 이룬다. 생산관리부 이자영은 원하던 건조기 아이디어를 적극 밀어 붙이고, 마케팅부 정유나는 부서에서 ‘아이 러브 마이셀프’라는 슬로건을 낸다. 회계부 직원 심보람은 숫자로 장난칠 수 없도록 ‘회계 시스템’을 만든다. 여직원들은 각자의 꿈을 안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 좋았다.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학력에 따라 줄을 긋기 보다는 한 명 한 명의 역량을 보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간절함을 보고도 모른 척 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드라마 ‘스타트 업’(CP 유상원, 극본 박혜련, 2020년)에서 달미 할머니가 손녀 달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달미야, 넌 코스모스야. 아직 봄이잖아.

찬찬히 기다리면, 가을에 가장 예쁘게 필거야. 그러니까 너무 초조해하지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다보면 좋을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힘든 시간이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한 준비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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