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한파가 2주일을 지나고 있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영하의 날씨에는 세탁기를 돌리지 말라고 방송을 한다. 저층의 배수관이 얼어서 위층에서 내려온 물들이 내려가지 못하고, 저층 세대 배수관에 역류한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집 빨래통에도 빨래가 쌓이고 급한 옷가지들은 손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쪼그리고 앉아 빨래를 빨고 헹굼까지는 어렵지 않았지만 물기를 짜는게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세탁기 탈수 기능이라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못하게 하니 있는 힘껏 손으로 짜고 미쳐 못 짜는 옷들은 베란다에 쭉 걸어놓았다. 그리고 물기가 어느 정도 빠지면 방 안의 건조대에 널었다. 그러고나니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세탁기로 빨래를 할 때는 옷가지 분류해서 세탁기에 넣고, 세탁이 완료되면 건조대에 널기 까지도 귀찮게 느껴졌는데, 막상 세탁기를 사용하지 못하니 그 동안 참 편안하게 살았구나 싶다.
사람들은 그렇다. 간절히 원하던 것들도 막상 영위하고 나면 소중함을 잃어버린다. 당연시 여기던 것들도 잃어봐야 절실함을 느끼는 것 같다. 꼭 갖고 싶었던 물건들도 얻고 나면, 처음에는 다 이룬 것 같이 좋지만, 그것 또한 내 손안에 들어오면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내 곁에 있던 사람들도 언제나 옆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등한시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심한 말을 해도 상대방은 다 이해해주고 옆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모르던 사이에 상대방을 서서히 멀어지게 만든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배수관 얼음이 녹아서 세탁기는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온 기분이다. 나는 지금껏 가지고 있는 것은 보지 못하고 더 나은 것만을 찾아 헤매며 살아 온 것 같다.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고 무엇인가 더 채우려고만 했던 삶은 항상 불만족이었다.
따뜻한 햇살이 환하게 비추어 주는 것, 맑은 공기를 마음 것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다. 내가 영위하고 있는 모든 것들로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들도 참 감사한 일이다. 외롭지 않게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내 자리가 있는 것이다.
얼음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녹는다.
얼었던 사람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녹을까?
다시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