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잔류자기

by 늘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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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마음이, 너무 심하게 아프다.

마음이, 나 돌아갈래를 외친다.


끝났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아직도, 그 방향을 향한다.

나침반이 자북을 가리키듯, 마음은 여전히 그곳을 향한다.

이미 사라진 곳을.


자기장이나 전류가 사라진 후에도 남아 있는 자성,

잔류자기.


강한 자기장에 의한 원자 스핀의 정렬.

정렬된 스핀은 외부 자기장이 완전히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다.

방향성을 띠며 남는다.

물질의 기억이다.


마음도 그렇다.

관계가 사라져도,

감정은 정렬 상태를 유지한다.

그때의 방향으로.

그때의 강도로.

혼자서.


미련은 시간의 착각이다.

과거는 떠났는데,

마음은 그 시간을 잡아놓는다.


하이데거의 '존재의 시간성'에서의 비극. 미련.

현재를 살지 못한다.

미래에서 멀어진다.

존재하지 않는 과거에 사로잡혀,

흘러간 공허한 시간에 표류한다.


존재의 부정합성.

미련은 욕망의 잔재다.

결핍에 기반한 라캉의 욕망이다.


그 사람을 통해 채우려 했던 나의 결핍.

그 관계를 통해 완성하려 했던 나의 불완전함.

상대방이 사라져도 결핍은 여전히 남는다.


미련은 그 사람을 향한 감정이 아니다.

나 자신의 결핍을 향한 집착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으려는 의지.

미련은 부정의 에너지다.

현실을 거부한다.


모든 존재가 자신을 보존하려 한다는

스피노자의 코나투스에서 충동이 왜곡된다.

관계는 끝났지만,

관계의 흔적만이라도 보존하려는 절망적인 생명력.


사랑이 아닌 그저 욕망.

상상 속에서 내가 만든 상대방의 이미지를 놓치지 않으려는 집착.

진짜가 아닌 욕망이 투사된 환상.

미련은 고독하다.


일방적인 나만의 감정.

대상 없는 사랑.

응답 없는 부름.

잔류 자기의 일방적인 에너지.


강한 역방향 자기장과 충분한 열은

잔류 자기를 없앤다.


감정도 그렇다.

시간과 새로운 경험이 미련을 지운다.


내 심장에 느껴지는 이 통증이

그리움일까.

미련일까.


판단해야 한다.

그리움인지, 미련인지.


그것을 알고 나면, 미련은 조금씩 약해진다.


'망각은 행복의 조건이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가끔은 망각의 선물을 받기 위한 준비를 한다.


망각은 의지로 되지 않는다.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내 안의 잔류 자기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알고 마주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그 방향성을 바꾸는 힘을 얻는다.


미련은 존재의 관성이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충분한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힘은 인식에서 온다.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미련이 나를 향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도 많은 잔류 자기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조금씩 방향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사라진 과거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향해.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을 향해.

미련과 화해하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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