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그 울림은 퍼져 나가지만 돌아오지 않는다.
온종일 내 안에서만 맴돈다.
처음은 가벼웠다.
눈길 하나에 마음이 움직였다.
미소 하나에 온 하루가 밝아졌다.
설렘은 작은 진동으로 시작된다.
그 진동은 멈추지 않는다.
바람이 생긴다.
그 작은 흐름이 더 큰 파동을 만든다.
돌아오는 파동이 없다.
아무도 모른다.
진폭은 내 안에서만 커진다.
감정은 파동이다.
흔들리고, 울리고, 전파된다.
짝사랑의 파동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흘러간 감정은 반응을 바라지만,
돌아오지 않는다.
내 안에만 남는다.
내 안에서만 증폭된다.
처음에는 설렘이었다.
곧 흔들림이 되고,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한다.
어떤 날은 스쳐 지나는 말 한마디에 환해진다.
어떤 날은 차가운 시선 하나에 암흑이 된다.
감정의 진폭은 커지고,
내부에 쌓인 에너지는 방향을 잃는다.
돌아오지 않는 감정은 내부를 맴돈다.
파동은 증폭되고, 감쇠되고, 다시 증폭하기를 반복한다.
시간과 함께 그 흐름은 길어지고,
멀어질수록 더 깊고 느리게 흔들린다.
기대는 실망이 되고,
실망은 체념이 된다.
그렇다고, 소멸되지는 않는다.
작은 변화에도 다시 설렘은 일어난다.
그 반복. 그 파동.
짝사랑은 비대칭장이다.
에너지의 순환을 거스른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파동은
시들거나, 사라진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대칭장의 에너지가 내부에서 응축되듯,
감정으로, 사유로, 침묵으로,
형태를 바꾼다.
그리고, 침묵은 감정의 가장 정제된 형태다.
말로 태어나지 못한 감정은,
내부의 구조를 더 세밀하게 만든다.
파열되기도 하고, 다시 구성되기도 한다.
비대칭장 속에서의 존재는 변환된다.
외부로 순환하지 못하는 파동은,
자기 변환을 촉진한다.
짝사랑은 관계의 사건이 아니다.
존재의 변환을 위한 사건이다.
반응이 없는 구조 속에서, 존재는 스스로의 울림을 확인한다.
고통을 느낀다.
잉여 에너지는 새로운 구조를 만든다.
예술은 잉여에서 태어난다.
완전하게 순환되는 감정은 언어로 태어나지 못한다.
순환되지 못해 고여 있는 감정이 새로운 언어로 태어난다.
짝사랑은 언어의 근원이다.
존재는 언제나 반응을 희망한다.
돌아오는 파동이 없으면,
존재는 서서히 에너지를 흘려보낸다.
울림은 서서히 감쇠하고, 어느 순간 고요 속으로 사라진다.
소멸의 과정이 슬픔이 되고, 여운이 된다.
비대칭성은 존재의 조건이다.
완전한 대칭은 정지해 있다.
살아 있음은 미세한 비대칭이다.
짝사랑은 비대칭성의 한 조각이다.
돌아오지 않는 파동은
존재의 결핍이 아닌,
새로운 리듬의 시작이다.
고요히 남아 있는 울림은 희미해져 간다.
완결되지 못한 감정은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져 간다.
짝사랑은 존재의 여백을 만들고,
그 여백은 사유의 공간이 되고,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 된다.
모든 파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감쇠되고, 굴절되고, 때로는 새로운 파형으로 재구성된다.
비대칭장의 자연스러움은, 고통을 새로운 언어로 바꾼다.
비대칭장은 부재가 아닌, 존재의 또 다른 질서다.
그 질서 속에서, 존재는 여전히 진동한다.
응답 없는 파동은 천천히 소멸되고, 닿지 않기에 슬프다.
그 울림은 사라지고, 그 여운은 삶이 된다.
짝사랑은 존재가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보내는 메시지다.
발산은 멈추지 않는다.
그 진동이 존재의 증거다.
완결되지 않아 아름답다.
돌아오지 않아 애틋하다.
멈추지 않아 씩씩하다.
이 모든 것이 삶이다.
짝사랑도 이 삶의 일부다.
오늘도 세상의 흐름 속에서 존재는 계속 울린다.
그리고 그 울림으로 존재의 살아있음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