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집 다른 우주(2)

2부 행복이의 시선-ESFP 강아지 행복이

by 늘람

나는 아직 계단을 내려가지 못한다.

발을 걸치면 미끄러질 것 같고,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그 아래가 조금 무섭다.

아빠도 "안돼, 위험해!"라고 말하고,

내 발은 그 첫 번째 계단 앞에서 멈춘다.


계단 아래와 위는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하루 세 번, 라떼 언니가 위층으로 올라온다.


말도 없이, 소리도 없이.

마치 구름이 계단 위로 스며들듯, 조용히.

언니는 내가 내려가지 못하는 그 길을 아무렇지 않게 오르내린다.

그게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그 순간, 내 심장은 더 빨리 뛴다.

나는 늘 그렇듯 먼저 다가간다.

꼬리를 흔들며, 코끝을 들이밀며.

매번 언니를 만나면 마음이 먼저 반응하고,

몸이 그 뒤를 따라간다.


냄새부터 맡아본다.

언니 몸에는 아래층의 햇빛 냄새와,

조용한 오후의 냄새가 묻어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언니는 휘익 앞발을 휘둘렀다.

가끔은 눈 위가 따끔하고, 마음이 살짝 멍해진다.


처음엔 서운했다.

왜 나랑 놀지 않을까? 왜 내가 다가가면 피할까?

그런데 이제는 안다.

그건 공격이 아니라 '신호'라는 걸.


고양이의 언어는 공기 중 파장처럼 퍼지는 것이라서,

한 번의 휘두름 속에도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지금은 아니야", "조금만 기다려", "너무 가까이 오지 마"— 그런 뜻들이.


나는 그래서 한 발 물러선다.

그리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다린다.

언니가 마음의 준비를 할 때까지.

가끔은 그 기다림이 길어서 지루하기도 하지만,

언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배우는 기분이다.


나는 살아 있다는 걸 움직이며 느낀다.

냄새, 소리, 바람, 햇살— 모든 것이 나를 통해 흘러가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감정을 배운다.


테라스에서 뛰어놀 때면 온 세상이 내 것 같다.

바람이 내 털을 스치고, 햇빛이 등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하지만 라떼 언니를 만날 때면,

내 속도가 너무 빠른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언니는 조심스럽고 느리다.

시간이 파동이라면, 언니는 나보다 훨씬 긴 주기를 가진 존재다.


나는 1초에 백 번도 더 꼬리를 흔들 수 있지만,

언니는 한 번 움직이는 데도 긴 생각이 필요한 것 같다.


우리는 같은 집에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산다.

내 시간은 빠르고 경쾌해서 모든 순간이 새롭다.

하지만 언니의 시간은 깊고 무거운 것 같다.

마치 호수의 깊은 곳처럼, 표면의 파도와는 다른 흐름이 있는.


가끔 언니가 창가에 앉아 테라스를 바라볼 때가 있다.

그 눈빛이 뭔가 그리워하는 것 같아서,

나는 테라스 문을 열어달라고 아빠에게 졸라 보기도 한다.

언니도 이 바람을 맞고, 이 햇살을 느끼면 좋을 텐데.


그래서 나는 기다림도 배운다.

햇살이 거실 바닥을 한 바퀴 돌 듯,

언니도 언젠가 내 쪽으로 조금 더 다가와 줄 거라 믿는다.

아니면 내가 더 천천히,

더 조용히 다가가는 법을 배울 지도 모른다.


때로는 언니와 내가 동시에 같은 곳을 바라볼 때가 있다.

창밖의 새, 햇빛 속의 먼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나는 여전히 위층에 있다.

라떼 언니는 가끔 올라온다.

계단은 내가 아직 내려가지 못하는 길이지만,

그 위에 앉아 언니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우린 어쩌면 같은 우주에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내가 계단을 내려갈 수 있을 거고,

언니는 테라스까지 올라올 수 있을 거다.


그때까지는 이렇게,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알아가면 된다.


오늘도 언니가 올라온다.

나는 꼬리를 한 번만 살짝 흔들고,

조금 더 멀리서 기다려본다.

언니의 시간에 맞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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